[SPECIAL REPORT]
탄력받는 재개발·재건축
리모델링 열기가 가장 뜨거운 곳은 1기 신도시다. 분당, 평촌, 산본에 이어 일산신도시에서도 최근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조합이 꾸려졌다. 주엽동 문촌16단지뉴삼익으로, 추진위원회 측에 따르면 조합 설립을 위한 주민 동의율이 67%에 이른다.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내년 1월 조합 창립 총회를 열고 설립 인가를 받는 대로 안전진단을 신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1994년 준공돼 올해로 28년의 풍파를 견딘 이 아파트가 리모델링 조합 설립을 마치면 일산신도시에서는 첫 사례가 된다. 추진위 측에서는 리모델링을 통해 가구수를 현재 959가구에서 1099가구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일산신도시에서는 강선14단지도 리모델링조합 설립을 위한 주민 동의를 받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1기 신도시들은 이미 리모델링에 가속도가 붙은 상태다. 성남 분당신도시에서는 1기 신도시 가운데 최초로 리모델링 사업계획 승인을 받은 한솔마을5단지를 비롯해 느티마을 3·4단지, 매화마을 1·2단지 등이 리모델링을 추진 중이다. 안양 평촌신도시에서도 목련 2·3단지가 지난해 리모델링 건축 심의를 통과했고, 군포 산본신도시에서는 7단지 우륵 아파트가 조합 설립 인가를 받았다.
재건축이 아닌 리모델링을 택한 건 더 빠르게 주거환경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건축 연한이 도래한다 하더라도 넘어야 할 절차가 산적했기 때문이다. 안전진단과 사업시행·관리처분계획인가 등 이어지는 단계를 통과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예측하기 어렵다. 통상적으로 안전성검사와 안전진단 등에만 2년 이상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든 단계를 통과해 공사에 들어가더라도 건물을 완전히 허물고 다시 짓는 까닭에 사업 기간이 길다는 점이 부담이다. 반면 리모델링은 재건축과 달리 건물의 뼈대(골조)를 유지한 상태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사업기간이 짧다는 이점이 있다. 안전진단 요건도 B등급 이상으로 재건축에 비해 까다롭지 않다. 사업시행·관리처분계획인가 단계도 생략할 수 있다. 일산신도시에 사는 직장인 박진아(43)씨는 “재건축을 한다면 60세는 넘어야 새집에서 살 수 있을 것 같아 리모델링이 낫다고 생각한다”며 “주변에서도 조금이라도 젊을 때 삶의 질을 높이는 게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신도시는 사업개발 단계에서부터 쾌적한 환경을 제공할 목적으로 건폐율(건물 면적 대비 대지 면적 비율)에 여유를 둔 곳이 많아 리모델링에 유리한 측면도 있다. 분당신도시 매화마을 1단지만 하더라도 건폐율은 13%에 불과하고, 대다수 아파트들은 15~35% 수준이다. 동간 여유 공간이 많고 단지 내 공원이나 휴식공간 등이 넓게 조성돼 있다는 얘기다. 이 공간을 활용하면 꼭 수직증축이 아니라도 수평으로 가구수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은형 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재건축과 리모델링을 비교해서 뭐가 더 좋은지 따질 필요는 없으나 리모델링은 상대적으로 인허가 등이 용이하고 재건축보다 공사비가 덜 드는 점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리모델링 활성화에 단초가 될 내력벽 철거 완화가 여전히 깜깜 무소식이다. 내력벽 철거가 이뤄지면 오래된 2~3베이(Bay·발코니에 접한 거실·방의 수) 아파트를 3~4베이로 바꿀 수 있어 상품성을 대폭 향상시킬 수 있어 리모델링사업이 더 확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국토교통부는 2016년 1월 내력벽 일부 허용 방침을 발표했지만 같은 해 8월 이를 유보한 뒤 현재까지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 내력벽 철거가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긴 하지만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도 일부 철거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만큼 집값 과열을 우려한 정부의 정책적 지연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고양, 성남, 부천, 안양, 군포 등 지역들은 정부의 리모델링 등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공동 대응하겠다는 방침도 세웠다. 은수미 성남시장은 10일 “1기 신도시 곳곳에서 자체적으로 조합과 추진위원회를 결성해 리모델링과 재건축을 시도하고 있으나, 현재의 법 체계로는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