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40분이면 빵을 내놓습니다. 70개에서 100개 정도. 주로 카스텔라, 곰보빵, 크림빵입니다. 아침마다 빵을 구우니까, 조금 더 일찍 일어나서 조금 더 많이 구우면 됩니다. 아침 9시면 거의 다 없어져요. 두 개씩 가져가는 애들은 거의 없고, 주변 중학교나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도 많이 가져갑니다.”
행복 베이커리 김쌍식씨 나눔 1년
“배고픔 내가 잘 알아, 계속 줄 것”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빵을 내놨어요. 코로나 사태로 학교 대부분이 문 닫았던 1주일 정도 빼고. 요 며칠도 남해에서 확진자가 계속 나와 조심하고 있어요. 전날 장사하다 남은 빵 주는 거 아닙니다. 애들 먹이는 건데, 탈 나면 안 되잖아요.”
김씨는 어렸을 때 찢어지게 가난했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는 내내 아팠고, 어머니가 삼천포 쥐포 공장에서 온종일 일했다. 여덟 살 터울 누나부터 막내 김씨까지 6남매가 학교가 파하면 쥐포 공장으로 나가 어머니를 도왔다. 늘 배가 고팠다. 밥 못 먹고 학교 가는 날이 밥 먹고 가는 날보다 많았다. 김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제빵을 배웠다. 아마도 그때였을 게다. 빵 가게를 열면 학교 가는 아이들에게 빵을 나눠주겠다고 작정했던 게.
“아이들 보면서 저도 행복을 느껴요. 장애가 있는 초등학생이 있어요. 늘 엄마랑 같이 오는데, 언젠가 빵 갖고 가라고 했더니 제 손에 있던 ‘쫀드기’를 찢어서 주더라고요. 순간 울컥했어요. 아침마다 빵을 챙겨 가는 여중생도 있어요. 홀아버지 모시고 사는 아인데, 아버지 아침 해드리고 막상 자기는 밥을 못 먹고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평범한 아이들이 더 많지요. 빵 하나에 행복한 표정을 짓는 건 똑같아요.”
“혼자 사니까 월세 말고는 큰돈 들어가는 데가 없어요. 여건이 달라져도 아이들에게 빵은 계속 주려고 합니다. 잘 먹어야 잘 놀고 잘 크잖아요. 제가 잘 압니다. 제가 그러지 못했으니까.”
남해=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