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이재원 대변인은 “기본적으로 행정업무 효율을 위해 쓰인 지정번호가 불필요한 논란을 낳고 문화재의 가치를 오해하게 한 측면이 커서 개정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공문 및 각종 신청서나 공무원이 아닌 일반 국민이 사용하는 문화재 관련 서식에서 ‘지정번호 및 명칭’을 쓰는 칸에 ‘명칭’만 쓰는 식으로 바뀐다. ‘국보 1호 서울숭례문’이 아니라 ‘국보 서울숭례문’이 된다. 문화재청 정책총괄과 홍은영 사무관은 “공식 행정문서의 의무 표기가 폐기되면 향후 교과서‧안내판 등에서 지정번호를 없애는 정책이 추진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행령 개정안은 약 40일간 국민 의견 수렴 후에 법제처 심사를 거쳐 이르면 올해 안에 공포된다.
문화재보호법 시행령 개정안 29일 예고
지정·등록문화재 모두 숫자 없이 표기
행정문서부터…교과서 등에도 추후 적용
‘1호 숭례문’은 1934년 시작됐다. 그 전해 제정된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에 따라 조선총독부는 보물 153건, 고적 13건, 천연기념물 3건(합계 169건)을 지정하면서 보물 제1호로 경성남대문을 지정했다. 이때 지정된 문화재는 주로 건축물 위주, 서울 4대문 중심이었다. 해방 후 문교부 문화국은 1955년 같은 법령을 원용해 국보 367건, 고적 106건, 고적 및 명승 3건, 천연기념물 116건 등 총 592건을 지정했다. 분류는 보물에서 국보로 바뀌었지만 1호는 여전히 서울남대문이었다. 1962년 문교부 문화재관리국은 문화재보호법을 공포하면서 국가지정문화재를 전면 정비했다. 주요 문화재를 국보, 보물, 사적, 사적 및 명승, 명승, 천연기념물, 중요무형문화재, 중요민속자료 등 8종으로 분류했다. 오늘날과 같은 국보 1호 서울남대문, 보물 1호 서울동대문이 마련된 때다. 공식 명칭은 1997년 각각 서울숭례문(남대문)과 서울흥인지문(동대문)으로 바뀌었다.
문제는 이 같은 지정번호가 문화재보호법상 일부 공문서에서만 의무표기 대상이었음에도 온 국민의 ‘금과옥조’처럼 여겨져왔단 점이다. 국검정 교과서는 물론 국립박물관 등의 각종 안내판이 문화재 이름과 지정번호를 병렬해온 관행 탓이 크다. 번호 체계가 일제 때 순서를 잇고 있는데다 문화재 가치 순위로 오해하는 세간의 인식도 문제였다. 2015년 국민인식조사 때 국보1호의 의미를 가치가 가장 높은 문화재로 인식한다는 답변이 다수였다(68.3%). 2008년 숭례문 화재 땐 이를 계기로 훈민정음(70호)을 국보1호로 재지정하자는 국민청원이 잇따르기도 했다. 문화재청은 그간 사회적 비용 및 파급효과를 감안해 보류해왔던 지정번호 개선을 올 초 역점사업으로 정하고 문화재위원회 등 전문가들의 공론화를 거쳐 구체화했다.
이번 지정번호 폐지는 국가지정‧등록문화재에 모두 적용된다. 이 가운데 별도 법률을 적용받는 국가무형문화재는 이미 지정번호 삭제를 시작했다. 지난 23일부터 시행된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안에 따라 무형문화재 보유자·보유단체·명예보유자·전승교육사 등을 인정할 때 정부가 발급하는 서류 등에서 지정번호 표시가 사라졌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당분간 관공서 내부적으로 쓰는 것은 불가피하겠지만 장기적으론 지정번호 자체를 폐지하고, 문화재 종류, 지정기준, 지역 등의 내용을 코드화하는 새로운 관리 체계를 마련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지정문화재는 지난 3월31일 기준 총 4153건으로 국보(349), 보물(2253), 사적(519), 명승(116), 천연기념물(464), 국가무형문화재(149), 국가민속문화재(303) 등으로 나뉜다. 구한말 이후 제작된 지 50년 이상 된 유산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등록문화재는 897건이다. 이들 지정‧등록문화재를 합치면 총 5050건이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