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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 유물 건졌더니 해군 대령 자작극…문화재 이런 일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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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1호 숭례문(남대문), 보물 1호 흥인지문(동대문)….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입이 닳도록 외웠을 문화재 지정번호다. 29일 문화재청이 문화재보호법 시행령 개정안을 관보에 입법예고하면서 이 같은 지정번호 체계가 통째 바뀌게 됐다. 앞으론 공무원이 아닌 일반 국민이 사용하는 문화재행정 관련 서식에선 ‘지정번호 및 명칭’을 쓰는 칸에 ‘명칭’만 쓰면 된다. ‘국보 1호 서울숭례문’이 아니라 ‘국보 서울숭례문’이다. 국보만 아니고 보물‧사적‧명승‧천연기념물 등이 모두 대상이다. 이미 국가무형문화재는 지정번호 표기 서식을 폐기했다.

국보 349건, 보물 2253건 지정번호 #'유물 가치 순위'로 오해, 없애기로 #문화재청 "종류 등 감안, 새 체계 추진"

가장 큰 이유는 문화재 지정번호가 가치 서열 순위가 아닌데 그렇게 오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아서다. 2015년 문화재청이 국민인식조사를 해보니 지정번호제도는 알고 있으나(60.4%) 국보1호의 의미를 가치가 가장 높은 문화재로 인식하는 이들이 다수였다(68.3%). 이번 개정을 통해 문화재청은 지정번호를 의무 표기하는 법적 근거를 먼저 삭제하고, 향후 장기적으로 교과서‧안내판 등에서 지정번호를 없앤다는 방침이다. 대신 문화재 종류, 지정기준, 지역 등의 내용을 코드화해서 관리를 위한 번호체계를 정비할 계획이다. 예컨대 국가건축문화재 제○호, 국가미술문화재 제○호, 국가사적 제○호 등의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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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지정번호 체계가 확립된 것은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 때다. 당시 문교부 문화재관리국은 국가지정문화재를 국보, 보물, 사적, 사적 및 명승, 명승, 천연기념물, 중요무형문화재, 중요민속자료 등 8종으로 분류했다. 이때 국보 1호 서울남대문, 보물 1호 서울동대문이 공식화됐다(이들 명칭은 1997년 각각 서울숭례문(남대문)과 서울흥인지문(동대문)으로 바뀌었다). 다만 ‘1호’ 남대문의 뿌리는 훨씬 전인 1934년으로 거슬러간다. 조선총독부는 그 전해 제정된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에 따라 보물 153건, 고적 13건, 천연기념물 3건(합계 169건)을 지정하면서 보물 제1호로 경성남대문을 지정했다. 이 보존령은 기본적으로 조선 문화재에 대한 일본의 통제‧감독 권한을 높이는 의도였지만 보물의 국외 반출을 총독부 승인 사안으로 규정하고 시설 보존 등에 국고 지원을 규정하는 등 체계를 갖췄다.

국보 보물 문화재 현황 추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국보 보물 문화재 현황 추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국보 1호 남대문, 2호 동대문…1962년 현행 체계로

보존령 제정 이후 조선총독부는 1943년까지 12회에 걸쳐 보물 등을 지정하고 문화재가 소재한 곳에 표식을 세웠다. 이렇게 지정된 문화재는 보물 419건을 비롯해 고적 145건, 고적 및 명승 5건, 천연기념물 146건, 명승 및 천연기념물 2건 등으로 모두 717건에 이르렀다.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은 광복 후 남한 정부가 출범한 후에도 계승됐다. 단 분류는 국보, 고적, 고적 및 명승, 명승 및 천연기념물, 천연기념물 등 5종으로 바뀌었다. 국보 제1호 서울남대문, 제2호 서울동대문, 제3호 서울보신각종 등이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과 함께 문화재위원회는 당시까지 누적 지정된 572건을 대폭 정리해 북한에 소재한 유물은 빼고 남한에 있는 505건 중에 105건과 경북 팔공산에서 발견된 군위 삼존석굴 등 4건, 새로 추가된 7건 등 모두 116건을 국보로 지정했다. 국보로 지정되지 않은 400건은 다시 보물로 지정했다. 천연기념물도 재심의해 154건을 지정했다. 이후 문화재보호법의 일부 개정에 따라 분류 체계는 조금씩 바뀌어왔다. 올 3월 31일 기준으로 국보가 349건, 보물이 2253건이고 이밖에 사적(519), 명승(116), 천연기념물(464), 국가무형문화재(149), 국가민속문화재(303) 등이 있다. 제작된 지 50년 이상 된 유산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등록문화재는 897건이다. 이들 국가지정‧등록문화재를 합치면 총 5050건이다.

국보현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국보현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보물 문화재 현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보물 문화재 현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지정순으로 국보‧보물 번호를 매기다 보니 연대별 변화가 읽힌다. 1960~70년대에는 무령왕릉 지석(국보 163호), 황남대총 북분 금관(국보 191호) 등 발굴문화재를 중심으로 한 국립박물관 소장품들 위주였다. 1980~90년대에는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국보 제228호), 창경궁 자격루(국보 제229호) 등 과학기술문화재나 경복궁 근정전(국보 제223호) 같은 궁궐문화재가 다수 포함됐다. 2000년대 이후엔 개인이 신청한 문화재 혹은 각종 조사와 업무협약 등을 통해 문화재청이 앞장서서 발굴‧지정한 게 많다. 전체적으로 건축문화재는 1960년대 등 초창기에 대거 지정됐고 동산문화재는 상대적으로 후대에 지정건수가 많다. 문화재청 측은 “동산문화재의 경우 발굴, 환수 등을 통해 새롭게 많이 확보했고, 문화재청의 일괄공모, 일제조사 등 적극적인 지정 행정도 큰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가치 재평가 따라 국보→보물 지위 바뀌기도 

국보 349건 중엔 영구결번된 번호가 3개 있다. 이 중 제274호였던 ‘귀함별황자총통’ 해제 사건은 지독한 오명을 남겼다. 귀함별황자총통은 1992년 8월 해군 충무공해저유물발굴조사단에 의해 경남 통영군 한산면 문어포 서남쪽 해저에서 발굴 인양됐다. 조사단은 이를 정유재란 당시 조선수군을 이끄는 원균(元均)이 일본 수군에 패주하면서 침몰된 거북선에 장착됐던 총통이라 발표했다. 유물은 그해 9월 국보에 지정됐다. 하지만 4년 만에 해군과 검찰 조사 결과 진급을 노린 해군 대령이 골동품상과 모의해 모조품을 한산도 앞바다에 빠뜨린 뒤에 진품인 것처럼 건져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문화재 지정 전에 국민의 의견을 듣고 수렴하는 ‘지정예고’ 제도가 새로 도입되는 등 문화재계에 일대 파란이 일었다.

1992년 8월 해군 충무공해저유물발굴조사단에 의해 경남 통영군 한산면 문어포 서남쪽 해저에서 발굴 인양된 귀함별황자총통. 당시 거북선에 장착해 전투에 사용된 화포로 발표돼 그해 국보로 지정됐지만 이후 위조 사실이 드러나 지위 해제됐다. 참석자 모습을 가리기 위해 당시 사진을 편집했다. [중앙포토]

1992년 8월 해군 충무공해저유물발굴조사단에 의해 경남 통영군 한산면 문어포 서남쪽 해저에서 발굴 인양된 귀함별황자총통. 당시 거북선에 장착해 전투에 사용된 화포로 발표돼 그해 국보로 지정됐지만 이후 위조 사실이 드러나 지위 해제됐다. 참석자 모습을 가리기 위해 당시 사진을 편집했다. [중앙포토]

국보 중에 비어있는 또 다른 번호는 168호와 278호다. 이 중 278호였던 ‘이형 원종공신녹권부함’은 조선 태종 때 발급한 공신녹권으로는 처음 발견돼 1993년 국보로 지정됐다가 또다른 공신녹권이 발견되면서 가치 재평가를 통해 2010년 보물(1657호)로 격하됐다. 또 1974년 국보 168호에 지정됐던 ‘백자진사매국문병’은 애초 ‘매화와 국화를 그린 15세기 작품으로 중국 원나라 양식과 비슷한 유일한 백자’로 평가됐으나 원나라 작품이라는 국적 논란과 함께 작품 수준이 재검증되면서 2020년 국보 지위에서 해제됐다.

송광사 목조삼존불감, 1974년 도난 하루 만에 되찾아 

보물 제904호로 지정된,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씨가 부상으로 받은 그리스 고대 청동 투구 이다.

보물 제904호로 지정된,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씨가 부상으로 받은 그리스 고대 청동 투구 이다.

다만 168호의 경우 원나라 국적이 국보에서 해제된 결정적 사유는 아니다. ‘문화재보호법 시행령’(11조)에 따르면 외국문화재라도 우리나라 문화사에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은 국보나 보물로 지정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1987년 보물 904호에 지정된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가 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우승한 손기정(1912~2002)에게 수여된 높이 21.5㎝의 그리스 투구다. 기원전 6세기경 그리스의 코린트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1875년 독일의 고고학자에 의해 올림피아에서 발굴됐다. 당시 어떤 이유에선지 손기정도 모르는 새 베를린 박물관에 기증됐고 수십년 만에 이를 알게 된 손기정이 10년간 노력 끝내 그리스 부라딘 신문사의 주선으로 1986년 반환받았다. 이후 보물에 지정된 투구를 1994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해 현재 국유로 관리되고 있다.

도난 당했다 극적으로 돌아온 국보·보물도 여럿이다. 대표적으로 국보 42호 송광사 목조삼존불감이 있다. 1974년 10월 9일 새벽 전남 승주군 송광면에 있는 송광사에 도둑이 들어 목조삼존불감 외에 보물 176호 금동요령과 전남 유형문화재 28호 고봉국사주자원불 등 3점을 훔쳐갔다. 한글날 휴일을 맞아 절에 방문한 공무원들이 경내 박물관 정문 빗장이 열린 것을 발견하고 총무 스님에게 알려 문화재관리국에 신고했다. 절취범은 이날 인천의 골동품상을 찾아 3점을 100만원에 흥정했는데, 골동품상이 다음날 조간신문에서 도난문화재 사진을 보고 신고해 경찰 합동 작전 끝에 절취범을 검거하고 3점 모두 회수했다.

국보 송광사 목조삼존불감. [사진 문화재청]

국보 송광사 목조삼존불감. [사진 문화재청]

국보‧보물의 지역별 분포를 보면 국립중앙박물관이 위치한 수도 서울에 국보(168건)도, 보물(720건)도 가장 많다. 다음이 천년수도 경주가 위치한 경북으로 각 56건, 368건이다. 그 다음이 충남(각 30건, 132건)으로 전남, 경남은 물론 경기보다 더 많은 숫자를 자랑한다. 백제 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 등 부여 유적‧유물도 상당하지만 무엇보다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된 무령왕릉 유물 덕이다. 1971년 발굴된 무령왕릉은 단일 왕릉으로선 가장 많은 국보(12건)를 배출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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