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8일(현지시간) 열리는 제78회 골든글로브상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미나리’에서 할머니 순자 역으로 찬사를 받고 있는 배우 윤여정의 말이다. 재미교포 2세 정이삭(리 아이작 정) 감독이 자전적 경험을 되살려 1980년대 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인 가족의 여정을 그린 영화는 오는 3월3일 국내 개봉한다. 윤여정은 딸 모니카 역 한예리, 사위 제이콥 역의 스티븐 연, 정 감독과 함께 26일 온라인 간담회에 참석해 개봉 기대감을 드러냈다.
골든글로브 영화상 후보, 내달 국내 개봉
"감독이 틀에 가두지 않아 자유롭게 연기
미국에서 산 경험 살려 아이디어 여럿 내"
감독 "찍으면서 한국 생각…반응이 궁금"
“내가 미국에서 산 경험이 있지 않나. 국제결혼한 친구의 어머니가 손자한테 그러는 걸 직접 봤는데, 외국인 남편이 그걸 더럽다고 ‘너희 나라는 그래서 간염이 많다’고 했다(쓴웃음). 한국적인 정서를 내가 아니까, 예컨대 손자 방에서 자는 장면도 내가 바닥에서 자겠다고 말했다. 귀한 손자, 아픈 애를 침대에 재우는 게 당연하니까. 감독은 한번도 되묻지 않고 세트를 바로 바꿨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만든 대사로) ‘원더풀 미나리’도 있네. 한 것 많네.(웃음)”
윤여정이 살갑게 표현한 할머니 모습은 정 감독이 대본 속 행간에 묻어뒀을 그리움을 화면 속에 피어나게 한다. 이날 정 감독은 할머니 얘기를 하다 잠시 목이 메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 인천, 송도에서 교수생활을 한 적 있는데 내 사무실에서 갯벌이 보였다. 거기서 조개 캐는 분들이 주로 나이 많은 여성들이었다. 할아버지가 한국전쟁 때 돌아가신 후 할머니는 과부로 살면서 갯벌에서 조개를 캐서 어머닐 키웠다. ‘할머니가 안 계셨으면 내가 교수로서 가르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미나리’는 한국인 이민자 이야기이지만 1980년대 미국 사회 풍경이기도 하고, 현재도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가족 간의 갈등과 화합을 그린 작품. 아버지 제이콥을 연기하면서 프로듀서로도 동시 활약한 스티븐 연은 “매우 한국적이면서 또한 인간의 이야기란 게 끌렸다”고 했다. “한인 배우로서 일하면, 한국계 감독을 포함해 마이너리티(소수 인종)의 대본을 많이 받는데 대체로 그 인종의 문화를 설명하는 게 많다. 보는 이들이 백인 주류니까. 그런데 이 영화는 그냥 가족 이야기로서 너무나 공감하는 주제여서 신선했다.”
윤여정은 “이런 거 상상하고 만들지 않았는데, 선댄스에서 미국사람들이 좋아하고 울어서 놀랐다. 나는 아이작이 무대로 올라갔을 때 그때 울었다. 이젠 나이 많은 노배우니까 젊은 사람들이 뭔가 이뤄내는 게 장하고 애국심이 폭발한다(웃음). 상을 몇개 받았다는 것도 너무 놀랍고 경악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선댄스영화제 이후 총 74관왕(157개 부문 노미네이트)에 오른 ‘미나리’는 골든글로브에서 작품상이 아니라 외국어영화상 부문으로 분류돼 ‘인종차별’ 논란이 일기도 했다. 아카데미를 예측하는 풍향계로 불리는 미국배우조합상(SAG)에선 배우들의 연기 합을 보는 앙상블상 후보에 올랐다. 일부 부문 예비후보가 발표된 아카데미상도 주제가상(한예리)에 이름을 올린 상태다.
정 감독은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보편적인 인간들과 관계, 가족이 겪는 고통과 갈등이 공감을 주는 것 같다”면서 “우리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는 중요치 않다. 만들면서 한국 생각 많이 했는데 관객 반응이 궁금하다”고 했다. 윤여정은 “마치 아무 조미료가 안 들어간 담백하고 순수한 맛 같은 영화”라면서 “(한국인들이) 양념 센 음식들 즐겨먹지만 (우리 영화는) 건강하니까 잡숴보라”고 말을 맺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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