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광철은 한 해 60~70회의 전 세계 오페라 무대에 서왔지만 하지 않은 일이 있다. 바로 음반 녹음이다.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연광철은 “2010년에 정명훈의 피아노로 슈베르트 ‘겨울나그네’를 녹음한 것 말고는 남긴 음반이 없다”고 했다. 게다가 ‘겨울나그네’ 전곡 녹음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던 공연 실황이었다. 녹음을 위해 스튜디오에서 노래한 일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는 “오페라 무대를 주최측에서 실황 녹음하거나 녹화한, 내가 관여할 수 없는 기록은 남아있지만 독집을 낼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달 17일 나오는 음반은 30여년 만의 첫 녹음이다. 연광철은 피아니스트 김정원과 함께 슈베르트ㆍ슈만ㆍ브람스ㆍ슈트라우스, 즉 독일 음악의 정통을 이은 작곡가들의 가곡을 골라 불렀다. 그 중에서도 대표곡으로만 골랐다. ‘송어’ ‘밤과 꿈’ ‘헌정’ ‘오월밤’ ‘내일’등 한 작곡가당 네 곡씩 총 16곡이다. “가곡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기왕이면 중고등학교 때 배워서 다들 쉽게 아는 노래들을 포함하는 게 어떨까 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그토록 음반 녹음을 꺼렸던 이유는 뭘까. “뭔가 남기는 걸 원치 않았다. 나보다 좋은 음악가들이 얼마든지 있고, 녹음을 좋아하는 음악가도 많다. 이 녹음을 마친 지금도 굉장히 부끄럽다.” 연광철은 30년 가까운 세월 정상의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지만, 스스로에 대해 엄격한 평가를 내린다. “내가 과연 외국어로 노래하는 것이 어떻게 들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며 “지금도 내 이름이 슈베르트·슈만보다도 앞에, 내 얼굴 그림이 크게 앨범 커버에 들어간 것이 너무 어색하고 감당하기 힘들다”고 했다.
김정원은 14세부터 오스트리아 빈에서 공부했다. “독일어권에서는 연광철의 노래가 독일 사람도 인정하는 독일어 뉘앙스를 담아낸다고 평가한다”고 전했다. 성악가와 피아니스트 모두 독일어에 능숙하기 때문에 이번 녹음이 특별했다고 했다. 연광철은 “한 노래를 할 때 두 음악가가 그리는 그림이 일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슈베르트가 살았던 빈의 집, 베토벤의 집 이렇게 우리 둘 모두 가봤던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작곡가들이 음악에 넣어놓은 그림에 대해 노래와 피아노가 공감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편안한 작업이었다.” 김정원은 “독일어로 노래할 때 강조되는 가사를 짚어 보면서 피아노 연주에도 영감을 얻는 경우가 많았다”며 “성악 특유의 감정적이고 본능적인 접근에 더해 지적이고 논리적인 균형까지 갖춘 해석”이라고 말했다.
이번 음반을 낸 연광철과 김정원은 2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도 선다. 음반 수록곡에 한국 가곡 ‘그대 있음에’ ‘가고파’ 등을 더해 연주하는 무대다. 연광철은 “코로나19 기간에 더욱 의미가 있는 노래들”이라고 설명했다.“이번에 부르는 가곡들을 보면 구체적 대상이 있다. 슈만에는 ‘꽃’, 슈베르트에는 ‘봄’이 있다. 모두 바쁘게 살던 때에는 이런 노래가 와닿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최전전에 있다가 한발 뒤로 와 있는 지금은 모든 것을 조용히 둘러볼 수 있다. 특히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이 노래들이 그런 역할을 하리라 본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