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청동 공근혜갤러리에서 올라프의 개인전 '만우절 2020(April fool 2020)'이 열리고 있다. 팬데믹 상황을 겪으며 느낀 당혹감과 공포·불안 등 자신의 감정을 생생하게 기록한 사진 작품 10점과 20분 분량의 3채널 비디오 작품을 함께 소개한다.
네덜란드 사진작가 어윈 올라프
서울 공근혜갤러리서 개인전
"이게 모두 거짓말이었으면..."
치밀한 구도와 연출 돋보여
자화상은 렘브란트의 회화를 떠오르게 하지만, 치밀한 구도 아래 제한된 빛을 사용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연출된 각 화면은 에드워드 호퍼의 회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올라프는 집안에 홀로 갇혀 라디오를 들으며 방안을 서성거리고, 창밖을 통해 텅 빈 거리를 바라보는 불안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찍어 비디오 작품으로도 완성했다.
올라프는 지난 4월에 쓴 작가 노트에서 "코로나19로 도시가 멈춘 것 같았던 지난 몇 주간 나는 두려움과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었다"면서 "당시 나를 마비시켰던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 이 작업에 착수했다"고 썼다. 이어 "나는 마치 결말을 알 수 없는 공포영화 속 엑스트라가 된 것 같았다"며 "사재기로 인해 텅 비어버린 상점의 선반은 수십 년간 모든 것이 항상 그렇게 유지될 것이라고 가정해온 나 자신을 깨닫게 했다"고 덧붙였다.
공근혜 공근혜갤러리 대표는 "코로나19는 선천성 폐 질환(폐기종)을 앓고 있는 작가에겐 더욱 치명적으로 다가왔다"며 "이번 작품들에선 특히 인간의 나약함을 주제로 한 작가의 시각이 더욱 돋보인다"고 말했다. "평화로운 일상의 균열, 초현실과 같은 상황에서 겪는 한 개인의 두려움과 불안이 울림 있게 표현됐다"는 설명이다.
올라프는 네덜란드에서 렘브란트, 베르메르 등 회화 거장들의 뿌리를 잇는 사진작가로 평가된다. 그는 작품을 통해 인종, 신분, 동성애, 종교, 관습 등 현대사회의 주요 이슈를 날카롭고 자유롭게 다뤄왔다. 지난해 네덜란드 헤이그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대규모 회고전은 30만 명의 관람객이 찾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또 같은 해 네덜란드 라익스 국립미술관은 렘브란트, 얀 스테인 등 17세기 거장들의 그림과 그의 사진 작품을 함께 선보였다. 지난해 전시 당시 타코 디베츠 라익스 미술관장은 "올라프의 작품은 네덜란드 예술과 역사의 시각적 전통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사진작가 중 한 명"이라고 말했다.
올라프는 저널리즘을 전공하고 기자로 활동하다가 사진작가로 전업했으며, 1988년 젊은 유럽 사진작가 상을 받으며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도발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로 상업 사진 분야에서도 인정 받은 그는 디젤 진과 하이네켄 맥주 광고 사진으로도 인기를 모았다. 파리의 퐁피두 미술관, 네덜란드 헤이그 시립 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2019년 네덜란드 정부가 수여하는 황금사자 기사작위 훈장을 받았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