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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을 읽고 보고 듣고 느껴라, "이것은 부산에 바치는 오마주"

중앙일보

입력

2020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 야콥 파브리시우스. 비엔날레는 9월 5일 개막을 앞두고 있다. 김상선 기자

2020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 야콥 파브리시우스. 비엔날레는 9월 5일 개막을 앞두고 있다. 김상선 기자

문학과 미술, 음악이 하나로 어우러진 축제는 한 낭만주의자의 상상에 그칠 것인가. 아니면 참신하고 도전적인 시도로 기록될 것인가. 오는 9월 5일 개막하는 2020부산비엔날레에 미술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예술 관련 행사가 대다수 취소된 가운데 열리는 드문 국제행사인 데다, 야심 차게도 문학·음악까지 함께 아우르는 '공감각적인 축제'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야콥 파브리시우스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 #문학, 음악, 미술 아우르는 예술축제 준비 #"모두가 힘든 시기, 절실히 필요한 건 성찰"

부산비엔날레 개막을 앞두고 출간된 문학 작품집. [사진 부산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개막을 앞두고 출간된 문학 작품집. [사진 부산비엔날레]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라는 주제로 34개국 90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올해 부산비엔날레의 도전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부산비엔날레는 개막을 한 달여 앞두고 단편과 시를 엮어『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올해 비엔날레를 이끌 실마리가 될 11인 문인들의 신작을 모은 작품집이다. 이어 비엔날레에 참여하는 11인의 음악가(사운드 아티스트)들의 음원을 모아 음반(한정판 LP)을 제작했고, 오는 9월 5일부터 11월 9일까지 65일간 부산 원도심 등 일대에서 시각예술가 68명의 작품을 펼쳐보일 예정이다. 책(오디오북)과 음원은 행사 개막일인 5일부터 부산비엔날레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스트리밍된다.

부산에 이런 판을 제안한 사람은 야콥 파브리시우스(Jacob Fabricius)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 덴마크 현대미술관 쿤스트할 오르후스의 예술감독인 그는 지난달 말 한국에 들어와 2주간의 자가격리를 마치고 개막 준비에 분주하다. 잠시 회의를 위해 서울을 찾았다가 본지와 만난 파브리시우스 감독은 이번 비엔날레를 가리켜 "부산이라는 도시를 위한 오마주"라고 소개했다.

2020부산비엔날레 준비가 한창인 전시장 모습. 오른쪽이 파브리시우스 전시감독.[사진 부산비엔날레]

2020부산비엔날레 준비가 한창인 전시장 모습. 오른쪽이 파브리시우스 전시감독.[사진 부산비엔날레]

이번 부산비엔날레의 시도가 매우 도전적이다.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왔나. 
"아이디어는 러시아 작곡가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1839~1881)의 음악 '전람회의 그림'에서 빌려왔다. '전람회의 그림'은 무소르그스키가 자신의 친구이자 화가·건축가인 빅토르 하르트만(1834~1873)의 유작 그림 10점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이번 비엔날레의 핵심은 소설과 시로 쓰여진 이야기를 음악과 미술로 옮겨본다는 것이다. 부산이라는 도시의 이야기를 여러 아티스트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서로 다른 매체로 옮기는 작업이 흥미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티스트들과 관객이 서로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이미 출간된 문집 작업엔 10명의 소설가와 1명의 시인이 참여했다. 작가들은 파브리시우스 감독의 요청을 받고 각자 부산을 소재로 한 이야기, 혹은 부산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과 시로 썼다. 글쓰기엔 배수아·김혜순·김숨·편혜영·마크 본 슐레겔·아말리에 스미스·박솔뫼·김금희·김언수·이상우·안드레스 솔라노가 참여했다. 이어  노원희·서용선·김아영·김희천·카미유 앙로·모니카 본비니치·에르칸 오즈겐 등 국내외 시각예술가들의 회화와 영상·설치 작품 등으로 참여했고, 음악 작업엔 김일두·오대리·최태현·킴 고든 등이 함께 했다."평소 문학과 음악에서 많은 영감을 받으며 작업한다"는 그는 "한국 작가들의 작품은 모두 번역본을 구해 읽으며 전체 구성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허찬미 작가의 작품. 허찬미 작가는 박솔뫼 작가의 '매일 산책 연습'이라는 작품을 읽고 작업했다. [사진 부산비엔날레]

허찬미 작가의 작품. 허찬미 작가는 박솔뫼 작가의 '매일 산책 연습'이라는 작품을 읽고 작업했다. [사진 부산비엔날레]

강정석 작가의 '어려운 문제'(2020). 단채널 비디오의 한 장면. 강 작가는 배수아 작가의 '나는 하나의 노래를 가졌다'를 읽고 작업했다. [사진 부산비엔날레]

강정석 작가의 '어려운 문제'(2020). 단채널 비디오의 한 장면. 강 작가는 배수아 작가의 '나는 하나의 노래를 가졌다'를 읽고 작업했다. [사진 부산비엔날레]

칼 홀름크비스트의 작품 '무제'. [사진 부산비엔날레]

칼 홀름크비스트의 작품 '무제'. [사진 부산비엔날레]

문학을 출발점으로 삼은 이유는.  
"인체에 비유한다면, 나는 문학을 (이번 비엔날레의) 뼈대라고 생각했다. 시각예술과 음악은 각각 장기와 뇌, 근육이고. 부산은 여러 면에서 이야기의 도시(City of Fiction)다. 아시아 최대 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곳이고, 영화 '올드보이'(2003), '국제시장'(2014), '부산행'(2016)의 배경이 된 도시다. 이번 비엔날레가 여기에 새로운 이야기를 더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관람객들에게 탐정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부산의 역사와 거리·문화·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탐험해달라는 뜻이다. 이를테면 40계단, 미문화원(현 부산근대역사관), 국제시장, 자갈치 시장, 영도대교, 조선소, 깡깡이 마을, 봉래성당 등이 이번 문집에 모두 등장하는데 문학과 음악, 미술작품을 통해서도 다시 돌아보길 바란다."
부산 근대역사관 벽에 설치된 노원희 작가의 작품(왼쪽). [사진 부산비엔날레]

부산 근대역사관 벽에 설치된 노원희 작가의 작품(왼쪽). [사진 부산비엔날레]

특별히 의미 있는 작품을 꼽는다면.
"아직 작품을 하나씩 풀고 설치 중이다. 이틀 전 부산근대역사관 벽에 한국화가 노원희 작가의 작품을 설치하며 전율을 느꼈다. 그 자리가 어떤 곳인가. 일본강점기에 건립됐다가(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 후에 미 문화원으로 쓰이고 1982년엔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공간과 공명하는 노원희 작가의 아름다운 작품이 주는 울림이 남달랐다. 감동 그 자체였다."
준비과정에서 '오픈콜(열린 콘텐트 응모전)'을 통해 시민 참여를 끌어냈다고. 
"'부산의 사운드와 향기, 보이스를 찾습니다'는 제목으로 1분 미만의 녹음이나 글로 사람들의 얘기를 모았는데. 여기에 600명이 넘는 시민이 참여했다. 사람들이 보내준 부산의 소리 파일 중 일부는 음악가들의 작품에도 쓰였고, 시민들의 추억을 반영해 부산의 향을 담은 향수도 만들었다. 또 오디오 파일 심사를 거쳐 뽑힌 시민들은 11개의 문학 작품을 낭송하며 오디오북 제작에도 참여했다. 부산을 읽고 보고 듣고 느끼는 비엔날레를 함께 만들고 있다."
코로나 19 때문에 순항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코로나 19 때문에 준비과정도 너무 힘들었다. 그동안 (전시 준비에) 지금까지 해온 모든 방식이 달라져야 했고, 우리는 이 한계 안에서 최선의 방법을 힘겹게 찾으며 여기까지 왔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논의도 하고 있지만, 일단은 개막 준비에 최선을 다하려 한다."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힘든 시기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성찰(reflection)의 기회를 갖는 것"이라며 "이 어려운 시기에 부산비엔날레의 작품들이 그 성찰에 실마리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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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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