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천으로 자연과 건축물, 도시 경관을 감싸는 작업을 해오며 '대지의 예술가'라 불려온 불가리아 출신의 예술가 크리스토(본명 크리스토 블라디미로프 자바체프) 얘기다. 크리스토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뉴욕 자택에서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계 미술계는 그를 추모하며 거대한 스케일로 펼쳐 보였던 아름다운 작품을 돌아보고 있다.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84세로 별세
자연과 건축물 천으로 감싼 프로젝트
남다른 상상력과 스케일로 감동 선물
상상을 뛰어넘는 스케일
1935년 불가리아에서 태어난 크리스토는 1956년 오스트리아 빈으로 옮겨가 예술아카데미에서 수학하고 1958년 잔-클로드를 만나 함께 작업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1960년대 초반부터 물체와 공간의 느낌과 의미를 변형시키는 방법을 모색했다.
1960년대부터 가구와 석유드럼통 등을 천으로 감싸는 작업을 했던 두 사람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1985년 퐁네프 다리 전체를 천으로 감싸는 프로젝트를 하면서다. 1995년 은색천을 독일 베를린 국회의사당 프로젝트를 감싸는 프로젝트를 했고, 2005년에는 뉴욕 센트럴 파크에 오렌지색 천과 철근으로 수많은 문을 세우는 '게이츠 프로젝트(Gates Projects)'를 선보였다.
구상에서 실현까지 24년 걸린 작품도
"프로젝트의 목적은 아름다움 그 자체"
이들의 프로젝트는 결코 쉽게 성사되지 않았다. 이들은 개발중인 프로젝트에 대해 환경 영향 보고서를 작성했고, 작업물이 해체된 후에는 구성품을 재활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다.
크리스토 부부의 프로젝트는 여러모로 특이했다. 대표작들은 몇 주 혹은 몇 달 동안만 존재했기 때문에 상품화할 수 없었다. 그들의 작품은 미술관 등지에서 보여지기 위해 티켓을 팔 수도 없었고, 누구도 그들의 프로젝트를 돈으로 살 수 없었다.
'애틀랜틱'은 "그들의 비전의 핵심은 박물관이나 미술관 내부에 웅장하게 전시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었다. 거대하고 어렵고 복잡한 그 계획들이 오로지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만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크리스토는 부인 잔-클로드가 2009년 사망한 이후에도 둘이 구상했던 프로젝트들을 실현했다. 2016년 이탈리아 이세오 호수에 인공 부유물들을 띄우는 '떠있는 부두' 작품도 그중 하나다. 이 프로젝트는 27만명이 다녀갔을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2018년에는 영국 런던 하이드파크 서펜타인 호수에 7000개 이상의 석유 드럼통을 설치해 만든 '런던 마스타바'를 선보였다.
실현되지 못한 프로젝트가 더 많았다
크리스토는 최근까지도 2021년에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 전체를 천으로 감싸는 '포장된 개선문' 프로젝트를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가디언은 "크리스토의 작품은 우리의 규모와 지리에 대한 감각을 전복시켰다"면서 "혁신적인 그의 작품은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선사했다"고 평가했다. 가디언은 또 "크리스토의 작품은 설득과 끈기, 굳은 결단의 예술이었다"며 "모든 기술적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토의 예술은 기존 경관을 마법을 부리듯 멋진 추상화처럼 변화시켰다"고 찬사를 표했다.
크리스토의 별세 소식을 알린 관계자들은 "크리스토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꿈꾸는 데 그치지 않고 실현해 보였다"면서 "크리스토와 잔-클로드의 작품은 우리의 마음과 기억 속에서 계속 살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내년에 선보일 '포장된 개선문'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