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폭리·사기 판쳐도 제재 어려워…불공정 판매에 ‘오픈’된 오픈마켓

중앙일보

입력 2020.03.14 00:02

수정 2020.03.14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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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마켓

“○○는 통신판매중개자이며 통신판매의 당사자가 아닙니다. ○○은 상품, 거래정보 및 거래 등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최근 ‘가짜 마스크’ 논란을 일으켰던 한지 리필 마스크는 정부 산하 공영쇼핑 온라인몰은 물론 쿠팡·옥션·11번가 등 오픈마켓에서 2월 한 달간 60만장 넘게 판매됐다. 부산 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이 마스크 120만장을 유통한 혐의로 A씨를 붙잡아 수사 중이다.  

쑥쑥 크는 온라인 장터의 그늘
입점 판매자·소비자 연결 플랫폼
가짜 마스크 팔아도 “책임 없다”

최근 10년 4800억어치 짝퉁 판매
모니터링해도 상품 많아 못 찾아

판매중개자 책임 강화 법안 논의
위조품 거래자 처벌 무겁게 해야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오픈마켓 등에서 해당 마스크가 정부 인증을 받은 것처럼 광고했으나, 인증마크나 시험성적서는 모두 위조하거나 가짜였다. 해당 마스크를 판매한 오픈마켓은 가짜 마스크 판매에 대해 즉각 사과했다. 하지만 단순히 판매 중개를 한 것이고, 이를 고지했으므로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내놔 소비자의 분통을 샀다.


지난해 오픈마켓 판매 16% 급증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오픈마켓의 ‘짝퉁(위조상품)’ 판매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어 소비자 보호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4월에는 40억원대의 가짜 유명 브랜드 의류를 만든 후 정품인 것처럼 속여 5년간 오픈마켓 등에서 판매한 일당을 세관 당국이 적발하기도 했다. 특허청 분석 결과 최근 10년(2010년~2019년 7월)간 오픈마켓에서 판매한 상품 중 당국이 압수한 위조상품은 1130만개, 4819억원어치에 이른다. 이 중 화장품이 78만8000여 건으로 가장 많고 건강식품 64만2000여 건, 의약품 58만9000여 건, 가방 33만8000여 건이었다.
 
오픈마켓은 다수의 판매자와 구매자가 온라인상에서 만나 거래하는 시장이다. 입점 판매자가 자유롭게 상품을 등록해 판매하는 특성상 위조상품이 올라와도 이를 찾아내거나 제재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위조상품뿐 아니라 폭리나 강제 주문 취소 등 불공정 판매에 따른 피해도 끊이지 않는다. 소비자시민모임이 올해 1월 28일부터 31일까지 1372 소비자상담센터로 접수한 마스크 관련 상담 782건을 분석한 결과 주문 취소, 폭리 등으로 피해를 본 소비자 77.2%가 오픈마켓에서 제품을 구매했거나 시도했다. 소비자시민모임은 “코로나19 사태에 편승해 불공정 판매를 하는 온라인 쇼핑몰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픈마켓은 같은 상품을 두고 여러 입점 판매자가 가격 경쟁을 벌이기 때문에 일반 쇼핑몰보다 저렴한 편이고 상품도 다양하다. 이런 이점을 앞세워 최근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비중을 키우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백화점·대형마트 등 오프라인 시장이 0.9% 역성장하는 동안 전자상거래 시장은 14.2% 성장했다. 성장세는 오픈마켓이 주도했다. 오픈마켓 판매는 지난해 15.9% 급증했다. 이와 달리 일반 온라인 판매는 9.9% 증가하는 데 그쳤다.  
 
롯데멤버스 리서치플랫폼 라임에서 최근 발간한 ‘2020 트렌드픽’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의 30.6%(응답자 총 3935명)가 온라인 쇼핑을 이용하고, 선호하는 온라인 채널 1위는 오픈마켓이었다. ‘최저가’ 검색과 ‘가격 비교’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올 들어서는 코로나19 사태로 외출을 꺼리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오픈마켓의 인기가 더욱 치솟고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오픈마켓은 그러나 판매한 상품이 위조로 판명나거나 불공정 판매가 이뤄져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관련법(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상 소셜커머스는 통신판매자로, 오픈마켓은 통신판매중개자로 분류하기 때문이다. 판매자와 판매중개자의 가장 큰 차이는 판매 상품에 대한 책임 유무다. 판매자는 판매한 상품에 문제가 생기면 소비자 보상 책임을 져야 하지만, 판매중개자는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  
 
그렇다고 오픈마켓이 마냥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각 사별로 위조상품 판매자에 대한 대비책을 갖고 있다. 위조상품을 선별하기 위해 감시시스템을 구축하거나, 위조상품 판매자 계정을 영구 정지시키는 식이다. 위조상품 110% 보상제를 시행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다수의 판매자가 실시간으로 상품을 올리는 특성상 오픈마켓의 자체 조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오픈마켓

한 오픈마켓 관계자는 “(위조상품이나 불공정 판매에 대해) 실시간 모니터링을 하고 있지만 판매자와 상품이 워낙 많아 놓치는 예도 있는 게 사실”이라며 “소비자가 발견해 신고하면 빠르게 조치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이 때문에 판매중개자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중개자인 오픈마켓은 입점 판매자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구조여서 위조상품이나 불공정 판매 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과거에는 오픈마켓이 단순히 판매 공간만 제공했으나 최근에는 인지도·영향력을 확대함에 따라 그에 맞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의원은 지난해 7월 판매중개자의 책임을 강화한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입점 판매자의 광고 등으로 소비자가 피해를 볼 우려가 있다면, 중개자라도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치를 이행할 의무를 부여하는 등 중개자의 책임을 강화하는게 골자다. 개정안은 현재 소위에서 논의 중이다. 이와 별도로 관세청은 7월부터 오픈마켓에 대한 서면실태조사를 진행한다.  
  
관세청, 매년 1월 서면 실태조사
 
오픈마켓은 매년 1회 판매자 정보와 함께 위조상품 관리 실태 등을 제출해야 한다. 관세청은 “위조상품 판매자에게 1차적 책임이 있지만 위조상품을 제대로 거르지 못하고 소비자에게 노출시킨 오픈마켓의 책임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다만 일각에선 판매중개자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우면 시장 진입장벽이 높아져 스타트업이나 영세 판매자의 입점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위조상품을 판매했을 때 얻는 이익보다 처벌이 더 무거워야 근본적으로 위조상품 판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오픈마켓 피해 소비자를 보호하는 법적 안전망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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