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새해에도 광장을 가득 메운 국민의 외침에 청와대가 제대로 응답할 것 같지 않다. 오히려 갈수록 민심을 무시하고 역주행한다. 조국의 대타로 등장한 추미애의 최근 행보를 보면 양심과 이성을 중시하는 판사 출신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폭주 기관차' 같다. 왜 무리수를 둘까.
조국 낙마는 추미애에게 위기가 기회로 반전되는 순간이었다. 오세훈을 피해 불출마하면서도 법무부 장관이라는 정치적 실리까지 챙기는 꽃놀이패였던 셈이다. '야생마' 윤석열을 잘 요리하면 2011년 당시 오세훈 시장의 갑작스러운 사퇴로 치른 보궐선거에서 불발된 서울시장의 꿈을 다시 꿀 수도 있을지 모른다.
추 장관이 검찰 인사를 서두르는 과정에서 윤석열 총장과의 협의를 거치지 않아 검찰청법 위반이란 비판을 받았다. 그러자 청와대와 여당은 서둘러 윤 총장의 '거역' '항명' 구도로 여론을 몰아가고 있다.
여기에는 나름 정치적 계산과 이낙연·추미애의 특수 관계가 숨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두 사람은 이른바 친문이 아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눈에 띄어 정치에 입문한 동교동계다. 동교동계라는 이유로 오누이처럼 가깝게 지내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총리와 추 장관은 검찰의 칼 앞에 사실상 동병상련(同病相憐) 처지다.
추 장관은 검찰이 수사 중인 문재인 정권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당시 민주당 대표였다. 그런 그가 살아 있는 정권의 의혹과 비리를 수사하지 못하도록 검찰의 손발을 묶는 인사를 했으니 적반하장(賊反荷杖)이란 뒷말이 나온다.
이 총리의 동생은 공직자윤리법 위반 사실이 드러났다. 그 동생이 대표로 불법 취업한 SM삼환이 문재인 정부 들어 관급공사를 대거 수주했다고 야당이 문제를 제기한 상태라 여차하면 검찰이 특혜 의혹을 수사할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 고위직을 지낸 한 법조인은 "조국 수사는 윤석열이 아니면 하기 어려운 수사였다"고 했다. 구 적폐든 신 적폐든 가리지 않는 검객(劍客) 윤석열의 차가운 칼에는 눈이 없다는 말인가. 윤 총장은 최근 지인에게 "검사는 검사다"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윤 총장이든 무명의 일선 검사든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정의를 세우는 일은 검사의 사명이자 존재 이유다.
일부에서 정치적 진영 논리를 앞세워 검찰 개혁을 주장하지만, 검찰의 오랜 숙제는 권력으로부터 독립성 확보가 핵심이다. 지난 9월 이 총리는 국회에서 윤 총장을 겨냥해 "자기 정치 하겠다고 덤빈다"고 거친 언사를 동원했다. 검찰을 겁박하는 것은 부정부패를 눈감으라는 해괴한 주문일뿐이다.
윤 총장의 미래에 대해 한 지인은 "제갈량(제갈공명)이 아니라 사마의(사마중달)가 될 수도 있다"는 흥미로운 화두를 던졌다. 제갈량은 유비의 그늘에서 평생을 머물렀지만, 조조의 칼잡이였던 사마의는 조조의 의심을 잠재우고 마침내 천하 대권을 잡았던 인물이다.
누가 이 시대의 조조·유비·손권인지 적확한 비교대상을 찾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삼국지』의 세 영웅 중에서 최후의 승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법치와 정치가 뒤죽박죽된 대한민국에서 삼국지 속 영웅들의 변화무상한 운명을 새삼 곱씹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