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묵으면 챙겨왔는데…이젠 일회용 어메니티 사라진다

중앙일보

입력 2019.12.22 05:03

수정 2019.12.22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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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크 하얏트 부산 호텔은 프랑스 브랜드 ‘르 라보’를, 영종도 파라다이스 호텔은 영국 브랜드 ‘펜 할리곤스’를, 시그니엘 서울 호텔은 프랑스 향수 브랜드 ‘딥티크’의 제품을 제공한다. 어메니티 얘기다. 어메니티(amenity)의 사전적 의미는 생활 편의 시설이지만 주로 호텔에서 제공하는 샴푸‧린스‧보디 워시 등을 작은 병에 담은 물품을 의미한다. 경우에 따라 일회용 면도기나 치약‧칫솔, 머리빗 등 숙박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을 포함하기도 한다.  
 

호텔의 당연한 서비스로 여겨졌던 일회용 어메니티가 2024년부터 전면 금지된다. 인터컨티넨탈 호텔 그룹은 2021년까지 작은 용량의 일회용 어메니티 대신 객실에 비치하는 대용량 용기의 어메니티로 교체한다. [사진 인터컨티넨탈 호텔 그룹]

 
작은 용기에 내용물이 소량 담긴 어메니티는 미리 물품을 준비하지 못한 투숙객을 위한 호텔의 당연한 서비스로 여겨져 왔다.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브랜드의 작은 사이즈 제품을 기념품 삼아 들고 오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앞으로는 이런 어메니티를 호텔에서 보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必환경 라이프⑭ 친환경 정책 펼치는 호텔

환경부는 지난 22일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한 중장기 단계별 계획(로드맵)을 수립했다. 2021년부터 식품접객업소에서 종이컵과 포장 배달 음식의 일회용 숟가락‧젓가락이 금지된다.  2022년부터는 종합 소매업(편의점)‧제과점의 비닐봉지와 커피숍‧식당 등에서의 플라스틱 빨대와 젓는 막대가 금지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숙박업소의 일회용 샴푸‧린스‧칫솔‧면도기 등 위생용품도 규제 대상이다. 2022년부터 50실 이상 숙박업, 2024년부터 모든 숙박업에서 무상 제공할 수 없게 된다.  
 
사실 그동안 호텔 등 숙박업소는 연중무휴 전력과 물 등 에너지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데다 질 좋은 서비스를 이유로 각종 일회용품을 무분별하게 사용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세계관광기구(UNWTO)에 따르면 관광 산업은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5%를 차지하는데, 4%가 교통 부문, 1%가 숙박 부문이다. 여행 수요는 점차 늘어나고 있어 탄소 배출량 역시 증가 추세로 본다. 최근 여러 글로벌 호텔 체인들이 저마다 친환경 정책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이유다.  


미국 마이애미, 뉴욕과 LA 등지에 문을 연 '원 호텔'은 지속가능한 디자인 호텔을 추구한다. 객실에는 종이 패키지에 담긴 물을, 로비에는 투숙객이 텀블러에 물을 담아갈 수 있도록 정수 시설을 비치해뒀다. [사진 원 호텔]

 
그중에서도 일회용 어메니티가 직격탄을 맞은 이유가 있다. 세계적인 호텔 체인인 인터컨티넨탈 호텔 그룹(IHG)에 따르면 100개국 5600개 이상 자사 호텔에서만 매년 어메니티용 플라스틱 용기가 2억 개 이상 사용된다. 인터컨티넨탈 호텔 그룹은 2021년까지 작은 용량의 플라스틱 용기를 제공하는 대신 친환경 대용량 용기를 객실마다 비치할 예정이다. 메리어트 인터내셔널도 지난 9월 전 세계 호텔 객실 내 일회용 욕실용품 사용 중단 정책을 알려왔다. 2020년 10월까지 객실에 펌핑 가능한 대용량 어메니티를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은 2020년 10월까지 전 세계 호텔 내 객실의 일회용 어메니티 개별 용기 대신 대용량 용기의 어메니티를 비치할 예정이다. [사진 메리어트 인터내셔널]

 
보통 어메티니로 제공되는 작은 사이즈의 플라스틱 용기는 따로 재활용 규정이 없어 재활용되지 않고 호텔 휴지통에 버려져 매립지에 묻힌다. 분해까지는 수십에서 수백 년이 걸린다. 세계경제포럼(WEF)은 매년 최소 800만 톤의 플라스틱이 바다에 버려진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대용량 펌프 용기는 미니 플라스틱 용기 10~12개 용량에 해당하는 양을 담을 수 있다. 대용량 용기는 다른 플라스틱 용기와 마찬가지로 재활용이 가능하다. 게다가 어메니티로 작게 제공되는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내용물을 모두 소진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대용량 용기의 경우 버려지는 내용물의 양도 현격히 적다.
 

전북 고창에 위치한 '상하농원 파머스 빌리지' 내의 숙박 시설. 욕실에 대용량 어메니티를 뒀다. [사진 상하농원]

 
하지만 모든 호텔이 어메니티 대신 대용량 용기를 비치하는 것에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대용량 펌핑 용기에 대한 호텔 업계의 반응은 갈린다. 한 호텔 관계자는 “특급 호텔의 서비스 측면에서 대용량 어메니티는 적합하지 않은 모델”이라며 “다른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한 글로벌 호텔 체인 관계자는 “호텔의 친환경 정책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라며 “이번 규제가 나오기 전부터 대용량 용기로 바꾼다는 글로벌 본사 지침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번 규제에 대해 소비자들은 전반적으로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시장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1년 이내 국내외 호텔 숙박 경험이 있는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소비자 대부분(84.3%)이 “일회용 플라스틱 어메니티 규제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평소 호텔 이용 시 제공되는 호텔 어메니티를 모두 사용하는 소비자는 1박 기준 15.5%밖에 되지 않은 데다, 어메니티 제품 대부분이 일회용품으로 제공된다는 점에서 “자원 낭비”라는 의견이다. 남성(80.2%)보다는 여성(88.4%)이, 연령대가 높을수록(20대 79.2%, 30대 82.4%, 40대 86%, 50대 89.6%) 호텔 어메니티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뚜렷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샴푸나 컨디셔너 등의 어메니티를 일회용 패키지 형태가 아니라 대용량 용기에 담아 제공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찬성하는 의견(61.7%)이 반대하는 의견(19.6%)보다 훨씬 많았다. 반대하는 이유로는 “불특정 다수와 함께 사용해서 찜찜하다”(80.1%, 중복응답), “리필해서 사용하면 위생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것 같다”(70.9%) 등 주로 위생에 관한 지적이 많았다.  
 

아난티에서 개발한 고체 타입 어메니티. 생분해성 펄프를 사용한 패키지로 환경에 부담을 줄였다. [사진 아난티]

 
일회용 어메니티 용기와 대용량 용기 사이에서 묘수를 발휘하는 호텔도 나오고 있다. 아난티(구 에머슨 퍼시픽)는 아예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하지 않는 비누 형태의 어메니티를 지난 8월부터 사용하고 있다. 자체 개발한 고체 타입 샴푸, 컨디셔너, 페이스&보디 워시로 펄프로 만든 생분해성 케이스에 담겨있다. 투숙객이 사용하고 남은 비누는 가져가도록 권유하고 있으며 남은 비누를 작가와 협업해 양초 공예나 조각 등에 활용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고체 타입 어메니티로 아난티는 그동안 매년 60만개 이상 사용되어온 어메니티용 플라스틱 용기를 줄일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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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