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우리 아이들은 불안한 갈림길에 놓이는 일이 잦다. 요즘은 대학입시제도의 기로에 섰다. 2주 전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정시 확대 반대 의사를 밝힌 다음 날 문재인 대통령이 정시를 늘리라고 하면서 수능시험을 코앞에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수능 9일 앞두고 또 수시·정시 논란
고교·당국의 수시 선호 당연한 일
학생·학부모 의견 들어 정시 늘려야
친구들과 창의력 동아리 활동을 마친 고3 학생들이 잔디밭에 둘러앉아 선생님과 토론을 한다.
“저는 선생님 말씀에 동의하지 않아요. 다르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래. 네 말도 옳다. 참 훌륭하구나.”
이렇게 웃고 지내다 보면 어느덧 원하는 대학에 앉아있다. 훈훈한 상상이다.
그러나 현실 속의 공교육 정상화는 사뭇 다르다. 선생님이 뭘 해도 묵묵히 따르는 순종형 학생을 육성하는 시스템이다. 자칫 교사의 눈 밖에 나면 생활기록부에 험한 표현이 들어갈 수 있고 학생의 인생이 망가진다. 수시가 학생의 개성을 발현시킨다지만 오히려 교사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제도에 가깝다.
얼마 전 회사로 고3 학생의 취재 요청이 접수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두고 일방적 시각을 전파하는 선생님에게 항의를 했다가 심한 비난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확인차 통화해보니 “이렇게 빨리 연락이 올 줄 몰랐다”며 “수능이 끝난 뒤에 취재를 해주면 안 되겠느냐”고 당황해했다. 부당한 일을 겪었지만 대입을 앞두고 얘기할 순 없다는 학생의 입장이 이해가 갔다.
교사의 주관이 배제되는 정시는 다르다. 내림차순으로 늘어선 점수 앞에서 교사도, 교수도 꼼짝 못 한다. 정시가 늘면 사교육이 기승을 부린다는 반론이 있다. 수능은 대학 공부를 위한 기본 학습 역량을 진단하는 시험이다. 이게 사교육의 영역이라면 학교는 뭘 가르치나.
인기 상한가인 사교육 강사의 인터넷 강의를 구경해봤다. 수업 내용은 평이했지만 전달 기법이 뛰어났다. 몸과 칠판의 위치에 따라 왼손과 오른손을 바꿔가며 판서를 한다. 공주 패션도 마다치 않다가 EBS 강의에선 점잖게 변신한다.
정시가 확대되면 교사들은 이들과 실력을 겨뤄야 한다.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임용고시’를 뚫은 선생님이 화면 속 강사에 뒤질 이유는 없다. 그러나 나태한 교사라면 학생들이 일제히 조는, 비정상 공교육의 쓴맛을 봐야 할 거다.
이쯤에서 묻자. 당신이 교사라면 수시와 정시 중 어느 쪽을 선호하겠는가.
대학도 그렇다. 수시는 대학이 학생을 고르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지만 정시로 가면 성적순으로 받아야 한다. 고교, 대학, 교육부, 교육청이 수시 확대, 정시 축소로 기우는 건 당연해 보인다.
문제는 학생의 생각이다. 지난해 김영란 전 대법관이 이끈 대입제도개편 공론화위원회의 작업을 보자. 이들은 교사, 교수 뿐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도 두루 들었다. 그 결과 조사 응답자들이 적절하다고 본 수능위주전형 비율의 평균은 39.6%였다. 지금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고교 교무부장의 딸이 내신 비리 의혹으로 법정에 서고, 법무부 장관의 딸은 표창장 위조를 의심받은 나라에서 수시를 늘리자는 건 억지다.
참사 현장까지 기대는 않더라도 교육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조차 학생의 목소리를 묵살한다면 학교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문 대통령의 고집은 ‘조국 사태’를 거치며 많은 비판을 받았다. 대입 정책에 대한 소신만큼은 더 완강하면 좋겠다. 그게 학생을 위한 나라로 향하는 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강주안 사회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