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현지시간)에는 인도 내에서 반도체 공장 3곳이 한 번에 기공식을 열기도 했다. 먼저 인도를 대표하는 기업 타타그룹 산하 타타일렉트로닉스가 대만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 PSMC와 함께 구자라트주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다. 110억 달러(약 14조8000억원)를 들여 2026년에 양산을 시작해 매월 웨이퍼 5만 장을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1~2㎚(나노미터·10억분의 1m)의 최첨단 반도체는 아니지만 활용 범위가 매우 넓은 28㎚다. 통상 회로 선폭이 28㎚ 이상인 반도체를 '범용'이라 부르는데 컴퓨터, 자동차 제어 부품, 5세대 이동통신(5G) 장비 등에 두루 쓰인다.
또한 타타그룹의 또다른 회사인 타타반도체조립테스트(TSAT)는 북동부 아삼주(州)에 32억6000만 달러(약 4조4000억원)을 들여 반도체 공장을 건설한다. 이곳에서는 자동차와 가전 부문에 사용할 칩을 생산하게 된다. 또 다른 인도 기업 CG파워는 일본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 태국 스타스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와 함께 구자라트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총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가 투입된다. 이 3개 공장이 창출하는 첨단기술 일자리는 2만 개, 간접 일자리는 6만 개 정도로 추산된다.
미·중 갈등 보며 첨단기술 절실해진 인도
이로 인해 단순히 공급망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게 아니라 설계부터 장비 공급, 제조까지 전체 생태계를 구축해 안정적인 반도체 공급망 허브가 되겠다는 야심을 품게 됐다는 것이다. 마침 미국이 중국을 벗어나 인도와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반도체 후공정 지역으로 활용하려고 한 점도 인도에는 기회가 됐다.
인도 정부는 지난 2021년 인센티브 프로그램인 '인도반도체미션(ISM)'을 구축하고 관련 펀드를 만들어 반도체 산업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현재 최우선 목표는 해외 투자 유치다. 외국 반도체 기업이 인도에 공장을 건립할 경우 인도 정부가 그 비용의 절반을 지원한다는 파격적인 제안이다. 여기에 더해 각 주(州) 정부에서도 추가로 지원해준다. 마이크론 공장에는 인도 중앙정부·주정부가 전체 비용의 3분의 2를 지원해 이 회사가 들인 돈은 8억 달러(약 1조800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위주의 정부가 들어선 중국과 달리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한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란 점 역시 해외 기업에는 매력적이다. 디플로맷은 "인도는 전자제품의 최대 시장 중 하나이자 IT 인재의 주요 공급처"라며 "10년 내 인도가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도체에 사활 건 중국에 밀릴 것" 우려도
이 나라의 제조업 기반이 워낙 부실하다는 점도 골칫거리다. 인도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의 비중은 약 15%(2022년 기준)로, 중국은 그 두배다. 또한 인도 전역에서는 정전이 자주 일어나는데, 이는 반도체 공장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안정적인 물과 전력 공급 등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반도체 산업을 확장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컨설팅 업체 게이브칼 드래고노믹스에 따르면 올해 중국에서는 전 세계 다른 나라에서 생산할 범용 반도체보다 더 많은 칩을 생산할 것으로 보인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전 세계 범용 칩 시장에서 중국의 점유율이 지난해 31%에서 2027년에는 39%까지 증가할 것이라 보고 있다.
WSJ은 "인공지능(AI) 혁명으로 첨단 칩에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구형 칩은 또 다른 차원"이라며 "최근 중국이 레거시 반도체 생산에 엄청난 자본을 투입하고 있어, 소규모 업체들이 생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인도가 그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