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잔해에 20만 명 갇혀, 세계서 이런 재난 본 적 없을 것”

중앙일보

입력 2023.02.11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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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피해 급증

9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부 카라만마라슈에서 지진 발생 87시간 만에 한 여성이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구조돼 들것에 실려 나오고 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덮친 강도 7.8의 지진으로 현재까지 2만1700명 이상이 사망하고 7만8000명 이상이 부상한 것으로 집계됐다. [로이터=연합뉴스]

튀르키예(터키)와 시리아를 덮친 강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하루가 다르게 급증하고 있다. 10일까지 누적 사망자 수는 2만1700명을 넘어섰다. 현지에선 무너진 건물 잔해 밑에 갇힌 사람이 최대 20만 명에 달할 것이란 추정이 나오고 있어 인명 피해 규모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AFP통신과 CNN 방송 등에 따르면 10일 현재 튀르키예의 누적 사망자 수는 1만8342명에 이른다. 튀르키예 남부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시리아에서도 3377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진 발생 나흘째인 이날까지 튀르키예와 시리아 양국의 희생자 수를 합하면 2만1719명에 달한다. 이는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의 인명 피해 규모(1만8500명)를 훌쩍 넘어서는 수치다. 양국의 부상자도 7만8000명 이상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문제는 피해자 수가 훨씬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튀르키예 지진 과학자인 오브군 아흐메트는 “지진으로 붕괴한 건물 잔해물 등에 갇힌 사람이 무려 2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며 “세계는 이런 재난을 본 적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진 등으로 인한 매몰자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인 ‘골든타임’은 72시간 이내라는 게 통설이다. 일란 켈만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재난보건 교수는 “지진 생존자의 90% 이상이 72시간 이내에 구조됐다”며 “현재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는 눈과 비를 동반한 영하의 날씨 탓에 건물 잔해에 갇힌 사람들이 저체온증 등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10일 보고서에서 이번 지진에 따른 사망자가 10만 명을 넘어설 가능성이 24%에 달한다고 밝혔다. 지난 8일 14%로 예상했던 것에 비해 10%포인트나 올랐다.


골든타임은 지났지만 한 명이라도 더 구조하려는 사투가 계속되면서 기적 같은 생환 소식도 속속 전해지고 있다.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이날 폐허가 된 튀르키예 하타이주 남부의 한 건물에서 태어난 지 10일 된 신생아와 아기 엄마가 지진 발생 90시간 만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현지 언론은 이를 “기적”이라고 보도했다. 튀르키예 안타카야의 한 건물 잔해 속에 갇혀 있던 멜다 아드타스(16)도 80시간 만에 구조됐다. 5시간 만에 밖으로 나온 아드타스는 온몸이 멍투성이였지만 비교적 건강한 상태였다. 현장 주변에서 발만 동동 구르던 아드타스의 아버지는 그제야 “우리 딸! 우리 딸!”이라고 외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튀르키예 가지안테프의 붕괴 건물 지하실에서도 아드난 무함메드 코르쿳(17)이 사고 발생 후 94시간 만에 구조됐다. 외신에 따르면 코르쿳은 자신의 소변을 받아 마셔가며 버텼다고 한다. 9일엔 아디야만에서 6개월 된 아기가 붕괴된 아파트에 갇힌 지 82시간 만에 구조돼 목숨을 건졌고 안타키아에서도 2세 아기가 79시간 만에 구조됐다.
 
지진 피해자 구조를 위해 현지에 급파된 한국 긴급구호대(KDRT)도 활동 첫날인 9일 다섯 명을 구조했다. 70대 중반 남성, 40세 남성과 딸인 2세 여아, 35세 여성, 10세 여아 등이다. 정부는 지난 7일 군 수송기를 동원해 긴급구호대 118명을 튀르키예에 급파했다. 정부가 해외에 보낸 긴급구호대 중 단일 파견으론 역대 최대 규모다. 튀르키예 당국도 이날 11만 명 이상의 구조 인력과 중장비 5500여 대를 동원해 구조 작업을 펴고 있다고 밝혔다. 전 세계 56개국에서 파견된 6479명의 해외 구호대도 구조를 돕고 있다.
 
지진으로 집을 잃은 뒤 임시 거처에서 지내고 있는 튀르키예 이재민도 75만 명을 넘어섰다. 이들은 영하의 추위 속에 자동차와 임시 텐트 등에 머물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번 강진의 영향을 받고 있는 튀르키예와 시리아 주민이 23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가까스로 구조된 이들 중 상당수가 추위와 기아·질병 등 2차 피해로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국제사회의 지원도 잇따르고 있다. 미국 국제개발처는 피해 복구를 돕기 위해 8500만 달러(약 1075억원)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현지에서 구호 활동을 돕고 있는 인도주의 봉사단체 ‘하얀 헬멧’에 380만 파운드(약 58억원)를 긴급 지원한 영국도 300만 파운드를 추가로 보내기로 했고 프랑스도 시리아에 1200만 유로(약 163억원)를 지원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