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이후 증시 전망] 원화 힘 세지자 외국인 투자 귀환, 연초 ‘토끼 랠리’ 이끌어

중앙일보

입력 2023.01.21 01:15

수정 2023.01.21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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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코스피가 20일 2395.26에 마감했다. 사진은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뉴시스]

1.6%. 정부가 ‘2023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전망한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다. 한국은행(1.7%)과 한국개발연구원(KDI·1.8%)은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1.8%)와 아시아개발은행(ADB·1.5%) 등 주요 기관들도 이구동성으로 한국 경제 부진을 점친다. 이 전망대로라면, 한국경제는 산업화 이래 5번째로 낮은 성장에 그칠 판이다. 오일쇼크(1980년, -1.6%)와 외환위기(1998년, -5.1%), 글로벌금융위기(2009년, 0.8%), 코로나19 확산(2020년, -0.7%) 등 외부 충격으로 부진했던 시기를 제외하면 사실상 최악의 상황인 셈이다.
 
그런데 증시 분위기는 딴판이다. 코스피가 연초 이후 20일까지 7.62% 상승한 것이다. 이에 국내 주식 투자자 커뮤니티에선 “산타 랠리(크리스마스 전후 상승장)도 비켜 간 한국 증시에 토끼 랠리(계묘년 상승장)가 찾아왔다”며 반색하는 분위기다. 한국 경제가 최악의 경기 부진을 앞둔 상황에서 증시를 끌어올린 건 외국인이다. 외국인은 올 들어 20일까지 코스피에서만 4조2500억원어치를 순매수하며 코스피 상승세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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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코리아’를 외치며 지난해 연간 6조9960억원어치를 팔아치웠던 외국인이 돌아선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환율을 지목한다. 지난해 10월 달러당 1400원대 중반에서 고공행진하던 원화 환율은 11월 1300원대로 내려서더니 최근에는 1230원대까지 낮아졌다. 원화가치가 계속해서 상승(달러가치 하락)하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도 원화 강세가 이어진다면 한국 주식 투자로 환차익도 기대할 수 있어 한국 증시에 투자할 만하다는 것이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최근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매수세는 환율 영향이 크다”며 “달러당 환율은 앞으로도 20% 가량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중간에 부침이 있더라도 연간으론 외국인 매수세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서릿발 같던 ‘킹 달러’에 힘이 빠진 건 미국의 기준 금리 정점이 머지 않았다는 기대 때문이다. 통상 기준 금리가 오르면 해당국 통화 가치도 상승하는 경향이 나타나는데, 미국을 금리 인상으로 이끈 물가 상승이 잦아드니 금리 인상도 멈출 것이란 기대가 커진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6월 9.1%를 찍었던 미국 소비자물가(CPI)는 12월 6.5%까지 내려왔다. 미시간대 소비심리지수에 나타난 향후 1년간 물가상승률 전망도 지난해 10월 5%에서, 최근 4%까지 낮아졌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그룹의 페드워치에 따르면 시장에선 올해 1분기말을 전후로 금리 정점을 점친다. 연준(Fed)이 3월말까지 두 차례 베이비스텝을 거쳐 2분기부터는 동결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다. 연말에는 한 차례 금리를 낮출 것이란 응답이 60%에 이른다.


박세익 체슬리투자자문 대표는 “물가상승률은 전년 대비로 나타내곤 하는데,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탓에 3월부터 전세계가 물가 우려에 떨었다”며 “올해 3월부터 기저 효과가 축소될 것으로 보고 물가 부담에 금리를 올리던 중앙은행들이 긴축을 고집하기 어려울 것이란 기대가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기준 금리가 정점에 근접했다는 기대가 부상했다. 지난 13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금통위원 3명이 금리 동결 의견을 피력한 데 이어 최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완화적 스탠스가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 총재는 지난 18일 외신기자협회 기자간담회에서 “지난해에는 물가상승률이 5%를 넘어 금리 인상이 우선이었지만 지금은 금리가 이미 높은 수준”이라며 “이것이 물가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시장에선 물가잡기에 다급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물가와 경제성장, 금융안정 등을 고려하는 식으로 한은의 입장에 변화가 나타난 것이란 평가가 나왔다. 돈줄이 마른 금융시장에서 한숨 돌릴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기대가 커진 셈이다.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금융 시장이 중앙은행 보다 앞서가면서 괴리가 커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투자자들의 희망과 연준 정책 사이의 충돌이 어떻게 해결되는지가 2023년 금융 시장의 가장 큰 물음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일혁 KB증권 연구원은 “통화정책 기조 전환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지만, 연준은 아직도 물가가 오랜 기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라 평가했다.
 
다만 시장이 기대하는 긴축 완화가 더디게 나타나더라도 한국 증시가 지난해처럼 급격하게 무너지진 않을 전망이다. 경기 우려에 지난해 국내 증시가 과도하게 하락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김영익 교수는 “개인적으로 일평균 수출과 유동성 등을 명목 국내총생산(GDP)과 비교하는 식으로 증시 수준을 가늠하곤 하는데, 올해는 모든 부분에서 저평가인 상황”이라며 “올해 증시에 조정이 나타나더라도 주식 비중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도 “한국 경제가 최악이던 1998년 코스피는 40% 상승했고, 코로나19로 충격이 컸던 2020년 36%나 올랐다”며 “주식 시장이 경제지표에 앞서 가기 때문인데, 지난해 코스피가 25%가량 빠진 만큼 올해 경기가 부진하더라도 증시가 속절없이 밀리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