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기간, 준비 시간이 길수록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워요. 촬영이 끝날 때마다 꿈에서 깨어나는 기분이죠.”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사흘째를 맞은 7일, 부산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열린 그의 오픈토크 및 핸드프린팅 행사엔 20~30대 젊은 관객이 구름처럼 몰렸다. 5일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한 개막식 레드카펫부터 가장 큰 환호의 주인공이었다. 그의 관객과의 대화가 포함된 영화제 특별전 ‘양조위의 화양연화’도 일찌감치 매진됐다.
홍콩의 왕자웨이(왕가위), 우위썬(오우삼)과 대만의 리안(이안), 허우 샤오시엔 등 그에게 전성기를 선사한 1990년대 중화권 감독들이 세계적 거장 반열에 오르면서 출연작이 끊임없이 재조명된 덕분이다. 지난해 개봉한 할리우드 진출작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도 마블 슈퍼 히어로 팬들이 주인공 샹치를 보러 갔다가 샹치 아버지(량차오웨이)에게 반하고 나온다는 반응과 함께 젊은 팬이 늘었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량차오웨이 특별전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대표작 6편 상영
"젊은 팬 많은 줄 부산 와서 알았죠"
올해 특별전을 위해 그가 직접 고른 6편의 출연작 ‘동성서취’(1993), ‘해피 투게더’(1997), ‘암화’(1998), ‘화양연화’(2000), ‘무간도’(2002), ‘2046’(2004)은 20~30년 전 작품들. 왕자웨이가 기획·제작한 유진위 감독 영화 ‘동성서취’에 더해 왕자웨이가 연출한 작품이 3편이다.
왕자웨이 감독과 함께 1997년 BIFF를 처음 찾은 ‘해피 투게더’, 2000년 BIFF 개막작에 선정된 ‘화양연화’, 2004년 폐막작이었던 ‘2046’이다. ‘화양연화’로 칸 국제영화제 아시아 최초 남우주연상과 기술상을, ‘해피 투게더’는 칸 감독상을 받았다. 올해 BIFF에선 모두 리마스터링 복원판으로 상영한다.
그에게 “영화에는 당신이라는 존재가 담겨야 한다. 얼굴이 아니라 몸 전체가 연기해야 한다”(『왕가위: 영화에 매혹되는 순간』, 2018)고 처음 말해준 이가 바로 왕자웨이 감독이다. 영화 ‘아비정전’(1990)에서 주연 배우 장만위(장만옥)와 호흡을 맞추는 단역에 그를 처음 발탁했을 때다. 7편을 함께한 왕자웨이를 그는 “저의 연기 생명에서 가장 중요한 감독”이라 말했다.
"눈빛 연기 비결? 평소 감정 말로 잘 표현 안해"
왕자웨이 신드롬을 일으킨 ‘중경삼림’(1995)에서 그는 세숫비누에 왜 이리 야위었느냐고, 젖은 행주에 그만 좀 울라고 말을 걸며 실연의 아픔을 달래던 경찰을 연기하기도 했다. 량차오웨이는 “밝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고 친구도 많은 편이 아니어서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면 화장실 거울을 보고 혼잣말을 많이 했다. ‘중경삼림’ 캐릭터가 제 어린 시절과 비슷한 면이 있어서 비누·수건을 보고 말하는 게 그렇게 어색하지 않았다”고 조용히 웃었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대만어를 할 줄 모르는 그를 위해 캐릭터의 대사를 없애고 캐스팅했다는 ‘비정성시’(1989)를 비롯해 ‘씨클로’(1995) ‘색, 계’(2007)까지,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세 작품도 빼놓을 수 없다. 폭력 조직을 잠입 수사하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경찰이 된 ‘무간도’(2002)도 그의 대표작에 꼽힌다.
"연쇄살인마 역 탐나…송강호·전도연과 작품 하고파"
“저의 배우 인생을 전후반으로 나누면 전반 20년은 배우는 단계, 후반 20년은 배운 것을 발휘하는 단계다. 지금 그 단계를 넘어 스트레스를 많이 안 받고 연기자란 직업을 즐기면서 하고 있다”는 그는 “안 해본 역할을 하고 싶다. 아쉽게도 악역 대본이 많이 안 들어오는데 꼭 악역이라기보다 배경이 복잡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역할에 관심이 있다. 연쇄살인마 역도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또 “‘8월의 크리스마스’ ‘올드보이’ 등 한국영화와 K콘텐트도 즐긴다”면서 “인연이 나타나면 한국·일본·대만 어디든 갈 의향”이라 내비쳤다.
“언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한국 작품도 언제든 도전할 마음이 있습니다. 좋아하는 영화감독·배우도 많은데 특히 송강호·전도연 배우는 기회가 되면 꼭 영화를 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