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작 이란 영화 선정 "비참 이겨내는 따뜻한 마음"
모하게흐 감독에 따르면 ‘바람의 향기’란 제목엔 ‘아무것도 없는 땅, 아주 마른 땅’이란 의미가 담겼다. 제목처럼 노인, 몸이 불편한 이들만 남은 외딴 시골 황무지의 삶을 90분간 긴장감 있게 펼쳐냈다. 첫 장면, 깎아지른 돌산 기슭에 안전장치 없이 매달린 채 뭔가를 채취하는 중년 사내의 모습부터 아찔하다. 양다리가 굽어 펼 수 없는 장애를 가진 그가 폐가나 다름없는 집에 가면 전신이 마비된 어린 아들이 눈만 뜬 채 누워있다. 어느 날 전기가 끊겼다는 신고를 받고 이 집을 찾은 전력 담당자는 가련한 가족을 두고 보지 못해 새 전기 수리 부품, 욕창 방지 전기장판을 구하러 휴가를 내 사비까지 털어가며 백방으로 알아본다. 그런 와중에 연인을 만나러 가는 시각 장애 남성을 데려다주고, 고독사한 노부인의 시신을 이장과 함께 수습하기도 한다. 반신불수의 사내도 자신이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지만, 바늘에 실을 꿰 달라는 동네 노인의 부탁을 외면하지 않는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5일 개막
팬데믹 3년만 정상화…전 좌석 운영
모하게흐 감독 "모든 인간 안에 용서 있죠"
그는 “우리의 삶에는 사회적 장애, 정신적 장애가 있다. 그런 장애를 만났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그리고 싶었다”면서 제도적 문제나 사회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직접 담지 않은 이유에 대해 “모든 인간의 마음 안에 존재하는 용서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제 인생에서 받는 것을 기대하지 않고 많은 것을 주는 사람들을 봤다. 논리적이지 않지만, 인간은 그렇게 한다”고 했다. 또 “제가 이 영화를 창조했다기보다 이 영화 옆에 존재했다”면서 “제가 이기적인 사람이면 저에게 오는 아름다움을 알지 못할 것이다. 늘 열려있으려고 노력한다. 이슬람 사상에서 운명은 ‘오는 것’이라 한다”고 설명했다.
모하게흐 감독은 BIFF가 발굴한 ‘부산 키즈’ 출신이다. 그의 2번째 장편 ‘아야즈의 통곡’이 2015년 BIFF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돼 그해 뉴커런츠상·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 2관왕을 차지했다. ‘바람의 향기’가 4번째 장편이다. 7년 만에 내한한 데 대해 “집에 돌아온 것 같았다. 부산의 기억은 미스터 김(고(故)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과의 추억이 첫 번째”라 밝힌 그는 “BIFF는 이란 영화의 발전도 많이 도왔다. 항상 예술 영화가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균형을 줬다. 스토리텔링 위주의 영화뿐 아니라 (형식에) 자유를 주고 바람을 불어줬다. 이란 영화산업의 모든 사람은 BIFF를 좋아하고 참여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양조위 아시아영화인상·제임스 캐머런 화상 참석
코로나19 시기 끊겼던 CJ ENM·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등 투자·배급사들의 각종 교류 행사뿐 아니라 넷플릭스·웨이브·티빙 등 OTT 업체들도 영상업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신작 등 홍보 행사를 앞다퉈 개최한다.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미이케 다카시, 프랑스의 알랭 기로디, 중국의 왕빙, 필리핀의 라브 디아즈, 한국의 김지운 등을 비롯한 각국 거장 감독들이 현장을 찾는 것은 물론 할리우드의 SF 귀재 제임스 캐머런 감독도 역대 세계 흥행 1위 ‘아바타’ 속편 ‘물의 길’ 푸티지 한국 최초 공개와 함께 화상으로 영화제 관객을 만난다.
개막식은 5일 오후 6시부터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배우 류준열·전여빈의 사회로 열렸다. 개막 전 상영작 예매 시스템 오류로 불안한 출발을 보였지만, 개막식 당일 4000여석 객석이 내빈 및 일반 관객으로 가득 찼다. 이날 개막식에선 홍콩 출신 세계적 스타 배우 양조위가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받는다. 시상은 그의 오랜 팬을 자처한 영화 ‘미나리’의 배우 한예리가 맡았다. 양조위는 ‘화양연화’ ‘2046’ 등 직접 선정한 출연작 6편을 상영하는 특별전도 갖는다. 허문영 집행위원장은 “영화제 전 기간에 걸쳐 (코로나19 발발 전인) 2019년 기준으로 100% 회복되길 바라지만, 아직 극장에 오는 것을 망설이는 분들이 있다는 걸 감안하면 80~90% 정도까지 기대하고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