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자의 속엣팅
서울의 내로라하는 젊음의 거리, 홍대 지역엔 3대 명절이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 핼러윈데이, 그리고 ‘경록절’. 2월 11일 록 밴드 ‘크라잉넛’의 리더 겸 베이시스트 한경록(45)의 생일이다. “심심해서 부르면 50명이 모이더라”는 홍대 ‘인싸’ 한경록의 생일에 뮤지션 친구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해 2007년엔 100명이 넘고,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르고 연주를 했다. 누군가 “한경록 생일파티가 아니라 명절 수준인데. 이거 완전 경록절이네”라고 내뱉은 말이 ‘경록절’의 시초다. “놀다 보니 축제가 됐다”는 한경록을 지난 9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치킨집 생일파티가 홍대 3대 명절로
한경록은 클래식 애호가인 어머니 덕분에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그런데 그는 “나는 놀이문화를 선도해야 하는데 피아노 앞에 앉아 연습하는 건 초등 문화에 큰 손실”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때 함께 몰려다니며 놀았던 동부이촌동 토박이 친구들이 지금의 ‘크라잉넛’ 멤버들이다.
음악 돌려 듣던 동네 친구들, 밴드 결성
본격 무대에 선 건 95년 홍대 라이브 클럽 ‘드럭’ 오디션에 합격하면서다. 약 5년간 일주일에 4일씩 공연을 하면서 밑바닥 실력부터 다졌다. 곡도 쓰기 시작했다. “로커는 영어로 노래해야 할 것 같아서” 영어 곡을 두어 곡 쓰다가 “감흥도 없고 외국인도 못 알아들어서” 동료 이상혁이 한글로 처음 쓴 곡이 ‘말달리자’였다. 한경록은 “우리끼리 음악 듣고 카피하면서 독학하다 보니 상상력을 조금 더 발휘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며 “이론보다는 음악의 색채를 보고 느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크라잉넛’은 98년 최초의 인디앨범으로 꼽히는 ‘말달리자’를 발매하고 전국투어를 다니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한경록은 “뭐든지 운이 좋았다”며 “98년 ‘말달리자’가 나왔을 때 금융위기(IMF)가 터져서 분출구가 필요한데 우리 곡을 통해 공감을 많이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쉴 새 없이 곡 작업과 공연을 하다 보니 피로가 쌓였다. 지금까지 ‘밤이 깊었네’ 등 100곡을 넘게 만든 한경록은 “창작이라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 그래서 서두르지 말자, 편하게 하자 마음먹게 됐다”고 했다.
“코로나 이후 홍대 르네상스 준비”
“나는 한경록이 되고 싶다”는 그는 최종 목표도 구상해뒀다. 그는 “꿈을 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펀딩으로 받아 노래를 만들겠다”며 “작은 멜로디 박스를 로켓에 실어 경록절에 우주로 보내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음악이 희망이잖아요. 그걸 담아서 우주로 보내면 각자의 목소리, 꿈이 우주에서 울려 퍼지는 거죠. 꿈을 쏘고 싶어요.”
[에필로그] 미미시스터즈는 ‘장기하와 얼굴들’과 이른바 ‘합의이혼’ 후 독립을 결심했습니다. 그때 가장 먼저 찾은 이가 한경록이었죠. “우리 1집 만들 건데 도와달라”는 이들에게 한경록은 “멈추지 않고 가기만 하면 된다. 난 한 번도 쉰 적이 없다”고 토닥였다고 하네요. 그런 그를 두고 미미시스터즈는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며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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