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자연사하자" 넋두리로 기적썼다…미지의 그녀들 정체 [속엣팅]

중앙일보

입력 2022.07.27 05:01

업데이트 2022.07.27 06:31

추기자의 속엣팅

 한 사람의 소개로 만나 속엣말을 들어봅니다. 그 인연을 통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요. 인연 따라 무작정 만나보는 예측불허 릴레이 인터뷰를 이어갑니다.

'장기하와 얼굴들' 출신 여성 듀오 '미미시스터즈'가 21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사옥을 찾았다. 김현동 기자

'장기하와 얼굴들' 출신 여성 듀오 '미미시스터즈'가 21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사옥을 찾았다. 김현동 기자

“우린, 자연사하자….” 극단 선택을 한 지인의 장례식장에서 술에 취한 채 친구의 어깨에 기대어 한 넋두리는 “웃기면서 슬픈” 곡으로 완성됐다. 여성 듀오 싱어송라이터이자 자칭 걸그룹 ‘미미시스터즈’가 지난 2018년 데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곡 ‘우리, 자연사하자’다. 곡을 발표한 지 4년 가까이 지났지만 지난해 라디오에서 뒤늦게 화제가 돼 팬들의 주도로 노래방 곡에 수록되더니 지난 4월 미미시스터즈는 서울시 자살예방센터 홍보대사가 됐다.

이름·나이는 극비…선글라스 속 미지의 그녀들  

미미시스터즈는 ‘벼락스타’였다. 2008년 5월 ‘장기하와 얼굴들’에서 선글라스에 붉은 립스틱을 칠한 얼굴에 무표정으로 시크한 퍼포먼스를 펼치던 두 여성이 바로 그들이다. 톱스타 2NE1, 소녀시대와 함께 방송하고, 그해 골든디스크상 등 각종 시상식을 휩쓸었다. 1년 반 동안 1집 앨범 활동을 함께 한 뒤 밴드와 ‘합의이혼’ 후 장기하의 ‘얼굴들’에서 미미시스터즈로 독립했다. 지금도 이름과 나이는 극비, 선글라스도 절대 벗지 않는다. 이들을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미미시스터즈는 “시작은 미미했지만 끝은 더욱 미미하리라”는 모토로 B급 신비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큰미미(오른쪽)는 기획과 제작, 홍보를 주도한다. 데뷔 전부터 운영해온 스윙댄스 커뮤니티와 뮤직 플랫폼 스타트업 등에서 활동 중이다. 작은미미는 큰미미를 "인간 복덕방"이라고 했다. 김현동 기자
작은미미(왼쪽)는 이름만 대면 아는 영화와 드라마 시나리오를 쓴 작가다. 시나리오 작업은 본명을 쓰지만, 번역은 작은미미 이름으로 활동 중이다. 김현동 기자

원래 가수를 꿈꾼 건 아니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이지만 큰미미는 극작과를, 작은미미는 시나리오과를 졸업했다. 데뷔 전 큰미미는 대학로에 작품을 올린 상태였고, 작은미미는 시나리오 작업 중이었다. 큰미미는 “미미시스터즈로 독립 후 뮤지션으로서 삶이 시작됐다”고 했다. 2011년 신중현과 김창완, 프로듀서 하세가와 요헤이, 서울전자음악단, 로다운30, 크라잉넛 등 기라성 같은 음악인들이 합류해 첫 앨범을 냈지만, “노래 정말 못한다”는 혹평이 쏟아졌다. 처절한 실패였다.

韓 시스터즈 계보 이은 ‘성덕’  

기댈 곳이 필요했다. 한국 원조 걸그룹을 찾는 ‘덕질’이 시작됐다. 2013년 한국 최초 걸그룹 트리오인 김시스터즈와 이시스터즈, 펄시스터즈, 바니걸즈, 희자매 등 초기 걸그룹의 과거와 현재를 찾는 음악극 ‘시스터즈를 찾아서’를 진행했다. 2015년 김시스터즈의 리더 김숙자와 KBS ‘가요무대’ 30주년 무대에 함께 서면서 ‘성덕’이 됐다. 이듬해 김숙자의 어머니 ‘이난영 탄생 100주년’ 기념 공연도 함께 했다. 큰미미는 “언니들 아니었으면 지금의 미미시스터즈는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덕분에 용기를 얻어 “둘이서 멋대로 만든 곡” ‘주름파티’는 처음으로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후로 작곡은 주로 작은미미가, 가사는 둘이 함께, 기획과 제작까지 스스로 한다. 그러다 이듬해 쌈지사운드페스티벌 포스터에서 10년 만에 뮤지션 절반 이상이 사라진 것을 보고, 절친한 지인의 극단 선택에 뮤지션들의 사망이 잇따르자 “생존의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리, 자연사하자’에서 시작해 “열심히 일했으니 열심히 놀자”는 여행권장송 ‘우리, 다해먹자’로 이어졌다. ‘우리’ 시리즈 최신작 ‘우리, 수다떨자’는 미미시스터즈가 7년째 매주 진행 중인 오디오 SNS 클럽하우스에서 상담하다 “코로나 시대에 필요한 건 소통”이라는 생각에 지난해 만든 수다권장송이다.

“자아만 3개…미미일 때 유쾌 발랄”

큰미미(왼쪽)와 작은미미는 서로에게 "종신계약을 했다"고 말한다. "서로의 존재가 원동력"이라는 이들은 70대에 세계적인 뮤직페스티벌에 출연하는 게 꿈이다. 김현동 기자

큰미미(왼쪽)와 작은미미는 서로에게 "종신계약을 했다"고 말한다. "서로의 존재가 원동력"이라는 이들은 70대에 세계적인 뮤직페스티벌에 출연하는 게 꿈이다. 김현동 기자

사실 미미시스터즈는 ‘우리, 자연사하자’를 만든 직후 자살예방 관련 기관 수백 곳에 메일을 보내 곡을 홍보했지만, 한 군데서도 답장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3년 만에 역주행하더니 지금까지도 댓글이나 다이렉트메시지(DM)를 받고 있다. “우울증 앓고 있는데 노래 듣고 웃었다”는 글부터 “웃고 있는데 왜 눈물이 나지” 등의 반응이다. ‘미며든다’는 신조어가 생기고, “노래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도 처음으로 받았다. 작은미미는 “처음엔 대댓글을 다 달았는데 이제 수천개를 따라잡을 수 없어 포기했다”며 웃었다.

각자의 본업에도 충실하다. 큰미미는 뮤지션 프로듀서 플랫폼 ‘STAGE8’ 최고운영책임자(COO)이자 기획자이고, 작은미미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영화와 드라마 대본을 쓴 작가로 최근 소설 『정숙한 과부들을 위한 발칙한 야설 클럽』을 번역해 출간했다. “정체가 드러나니 작품명은 절대 공개할 수 없다”는 작은미미지만, 아버지 박홍규 영남대 법학과 명예교수의 공개로 절반의 정체는 탄로났다. 이들은 “자아가 미미시스터즈, 큰미미와 작은미미, 본체까지 3개는 된다”며 “미미일 때가 더 유쾌발랄하고 건강한 느낌”이라고 했다. 꿈은 뭘까. “70대에 글라스턴베리 페스티벌에 나가는 거요. 처음 목표는 60대였는데 얼마 남지 않아서 70대로 늘렸어요.”

[에필로그] 비언어 행동분석 전문가 임문수 지음과깃듬 소장은 ‘우리, 자연사하자’ 곡이 역주행하기 전부터 미미시스터즈의 팬이었습니다. 임 소장이 꼽는 최애곡은 ‘우리, 다해먹자’로, 강의를 할 때마다 이 곡을 먼저 듣고 시작한다고 하네요. 임 소장은 “사회적 의미를 담은 가사와 개성이 뚜렷한 곡도 좋지만, 미미들의 인간성은 더 좋다”며 미미시스터즈의 홍보대사를 자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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