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통업계서 쏟아지는 이 같은 ‘신박’한 아이디어의 뒤에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태난 젊은 층)가 있다. 단순 아이디어 제안 차원이 아니라 기획·실행·마케팅까지 주도한다는 점에서 예전보다 업그레이드됐다. 성공 사례가 쌓이면서 조직 내에서 MZ 직원의 의견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가상 세계서 ‘오픈런’ 해볼까
이번 가상 오픈런 아이디어는 이 회사의 아이디어 경연대회 ‘SSG 아이디어톤’에서 나왔다. 아이디어톤은 아이디어 회의와 마라톤을 합성한 용어다. 아이디어톤 경연에 참여한 총 36개팀 150여 명의 사원 중 90% 이상이 20~30대 MZ세대였다. ‘메타버쓱 오픈런’ 아이디어는 26세 개발자와 29세 마케팅팀 직원으로 이뤄진 팀에서 나왔다. SSG닷컴 관계자는 “원래는 ZEP 사이트에 로그인까지 해야 했지만 이 장벽을 20대 개발자가 해결했다”며 “‘메타버쓱 오픈런’이라는 이름도 제안한 그대로 진행했다”고 전했다.
길거리 티셔츠가 홈쇼핑에, 이런 파격
CJ온스타일과 ‘김씨네 과일가게’의 만남은 입사 3년차인 김현지(28) MD에서 시작됐다. 우연히 SNS에서 판매 공지를 보고 줄을 서서 티셔츠를 산 뒤 새로웠던 ‘경험’을 홈쇼핑 채널에 풀어냈다. 히트 예감은 적중했다. 준비 물량 4000장이 약 15분 만에 매진되며 주문 금액만 1억원에 달했다.
무엇보다 50대 이상이 절반을 차지하는 기존 홈쇼핑 고객이 아닌 10~20대 구매자 비중이 72%, 30대가 23%를 차지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주문 고객의 37%가 휴면 계정이거나 비회원이었다는 사실도 이 프로젝트가 신규 MZ 고객 유치에 도움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줄 서는 동묘 와인바에 ‘홈마카세’ 까지
마블나인은 투플러스(1++) 등급에 마블링 최상급에 해당하는 한우만을 다루는 롯데마트의 한우 브랜드로 오는 4일 정식 출시된다. 대형마트에서 선보이는 최고급 한우를 고급 레스토랑에서 먼저 맛 보인다는 야심을 담은 기획이다. 총 14코스로 진행되는 미식 경험을 집에서도 즐길 수 있도록 고기를 부위별 패키지 형태로 만든 ‘홈마카세’ 키트도 하루 10개 한정으로 팝업 레스토랑에서 판매했다.
오마카세 팝업 기획은 롯데마트 마케팅팀의 입사 5년차(91년생), 입사 6개월차(96년생) 직원 두 명이 자발적으로 모여 시작한 ‘관심급구 프로젝트’의 두 번째 활동이다. 지난 4월에는 롯데의 세 번째 시그니처 와인 ‘LAN멘시온’ 출시를 기념해 서울 동묘에 와인바 팝업을 선보이기도 했다. Z세대 사이에서 ‘빈티지 패션 성지’로 꼽히는 서울 동묘 거리의, 아는 사람만 아는 와인바 ‘동묘830’에서 마트 판매가 그대로 와인을 팔아 연일 만석 기록을 세웠다.
인스타그램 ‘관심급구’ 계정을 직접 운영하기도 하는 이의섭 담당은 “서울 시내 오마카세 음식점을 다니면서 제안서를 전달하고 부위별 양념까지 골랐다”며 “주도적으로 일하다 보니 몰입도가 굉장히 높고, (웃으면서) 너무 일을 벌려서 주변에서 말릴 정도”라고 전했다.
나가서 창업하지 말고 회사에서 풀어라
어느새 기업의 주축이 된 MZ 직원들의 마음을 잡기 위한 시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기존 보수적 조직문화에서는 실무단에서 좋은 기획을 내도 위로 올라가면서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았다. 젊은 직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도 필요한 방식”이라며 “나가서 창업하지 말고 회사에서 풀라는 취지”라고 해석했다.
최근에는 MZ 사원들의 아이디어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면서 이들의 의견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침대와 관련 없는 철물점·식료품점 등을 내며 MZ세대 사이 반향을 일으켰던 시몬스침대는 ‘디자인 스튜디오’ 소속 10명 안팎 직원을 모두 MZ세대로 운영하고 있다.
김성준 시몬스침대 부사장은 “기업들의 마케팅 메시지가 유튜브·SNS 등 플랫폼에서 ‘소셜 트렌드’를 타고 이동하는 시대이다 보니, 이런 플랫폼과 동시대에서 함께 살아온 MZ세대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며 “다만 이들의 아이디어를 ‘선택’하기보다 아예 권한을 넘겨 맡기고, 임원은 회사를 설득하거나 예산을 집행하는 식으로 위계가 아닌 기능을 분리하는 조직문화가 뒷받침될 때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