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인 남성의 성향, 행동이 계승되고 재생산되고 복제된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죠.”
13일 개봉한 공포 영화 ‘멘(Men)’은 소설가 출신인 그가 감독 데뷔작인 SF ‘엑스 마키나’(2012), ‘서던 리치: 소멸의 땅’(2018)에 이어 각본‧연출한 세 번째 장편. 남편의 죽음을 목격한 충격을 달래기 위해 외딴 시골에 간 하퍼(제시 버클리)가 마을 남자들의 기묘한 습격에 시달리며 겪는 공포를 그렸다.
숲에서 그를 쫓아오는 발가벗은 부랑자부터 부랑자를 신고한 하퍼를 오히려 과민반응으로 모는 경찰, 하퍼에게 남편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강요하는 교회 목사, 바텐더, 동네 소년 등. 하퍼에게 다가온 남자들은 자신은 다른 척하지만 결국 하퍼를 통제하려 든다. 이처럼 같은 본성의 남자들을 배우 로리 키니어가 1인 9역을 도맡아 연기한 것부터 신선하다.
부천영화제 개막작 "욕 먹을 각오로 틀었다"
개봉 당일 화상 인터뷰로 만난 가랜드 감독은 이 영화를 15년 전 처음 구상했다고 밝혔다. 올해 15살인 그의 딸이 태어났을 무렵이다. “남자들을 가르치려고 만든 게 아니라 오히려 영화를 만들며 저 스스로 학습하는 강의 같았다”는 그는 “이 영화를 보며 스스로 느낀 공포도 있었다”며 “나도 모르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오랜 관습이나 생각하는 방식, 남성들의 전형성”을 예로 들었다. “예를 들어 하비 와인스타인(할리우드 거물 제작자)은 ‘미투’ 가해자로 유명한 악마 같은 사람인데, 그가 한 행동을 조금씩 수위를 낮춰보면 (평범한 남성도) 어느 순간 ‘나네? 나도 이런 행동을 하네?’하는 지점이 있다”면서다.
13일 개봉 공포 영화 '멘' 알렉스 가랜드 감독
SF '엑스 마키나' 데뷔 후 인간의 오만함 비판해와
'멘'에선 남성 폭력적 속성 기이한 판타지로 표현
칸 평가 엇갈려·부천영화제 "욕먹을 각오로 틀었다"
- -15년 전 이야기를 구상한 계기는.
- -극중 남성들이 물리적인 공격 외에도 미묘하게 하퍼를 거슬리게 하는데, 어디서 영감을 얻었나.
- -로리 키니어에게 1인 9역을 맡긴 의도는.
- -이 역할에 가장 중요했던 캐스팅 기준은.
공포 영화 공식 비틀어…"남성성 속성 탐구했죠"
자연음과 배우의 목소리를 섞어 서늘한 긴장감을 주는 ‘멘’의 사운드는 그가 쓴 동명 소설이 원작인 영화 ‘비치’(2000)부터 각본에 참여한 ‘28일 후’(2002) 등 전작을 모두 함께해온 음향감독 글렌 프리맨틀의 솜씨. 영화에서 터널 장면은 본격적인 공포가 펼쳐지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가랜드 감독이 공포영화의 공식을 깨려고 시도한 장면이다. “보통 공포영화를 보면 하지 말라는 걸 해서 끔찍한 일이 생겼다는 식인데 그에 대들고 싶었어요. 이 어린 여성이 비극적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시골에 와서 아름다운 소리를 발견하고 단순하지만 힐링을 했을 뿐인데도, 마치 당연히 겪어야 한다는 듯 공포가 이어지죠. 그 여성이 잘못한 게 없는데도 이런 공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식의 스토리 전개를 하고 싶었습니다.”
- -하퍼를 기존 공포영화 여성 캐릭터와 차별화한 점은.
가랜드 감독은 “살다 보면 어떤 규칙이나 관습을 특별히 의아해하지 않고 따르게 되는데 어느 순간 멈춰서 ‘왜 그렇지?’ 자문해보면 그 안의 모순점과 위선을 보게 된다. 이 영화를 만드는 건 저에게 그런 탐구의 과정이었다”고 했다. “저 역시 (남자로서) 어릴 때 사람들과 문제가 있으면 싸우면서 해결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배웠어요. 폭력이 내적인 문법 같은 게 된 거죠. 개인적으론 이번 영화를 통해 이런 경험이나 폭력, 남성성의 관습‧속성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해본 것 같습니다. 관객분들도 각자의 해석을 해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