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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매달려 몸·마음 뒷전…연출이 나를 해방시켰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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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인생에서 계속 한 스테이지(stage)가 끝나면 다음 스테이지가 펼쳐지는 데에 압박을 느껴왔다”는 문근영은 스스로 얻은 깨달음을 연출 데뷔작 ‘심연’에 담아냈다. [사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인생에서 계속 한 스테이지(stage)가 끝나면 다음 스테이지가 펼쳐지는 데에 압박을 느껴왔다”는 문근영은 스스로 얻은 깨달음을 연출 데뷔작 ‘심연’에 담아냈다. [사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한 관객이 세 단편 모두 맨발이 나온다고 의미를 둔 거냐고 묻더군요. 맨발에 큰 의미를 둔 게 아니었는데, 무의식에 있던 자유로운 연기의 갈망이지 않았나 싶어요.”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 감독 데뷔작인 단편 영화 3편을 공개한 배우 문근영(35)을 10일 만났다. 그가 각본·연출한 단편 ‘심연’ ‘현재진행형’ ‘꿈에 와줘’가 신진감독 단편을 소개하는 ‘엑스라지’ 부문에 초청됐다. 연출 데뷔작 ‘헌트’(8월 10일 개봉)로 올해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배우 이정재, 지난해 단편 연출에 도전한 이제훈·손석구·박정민·최희서 등에 이은 배우 출신 감독의 탄생이다.

‘감독’ 문근영의 단편들은 9~15분 길이다. 세 작품 다 대사 없이 배우의 몸짓과 표정, 미술과 조명, 음악 등으로 표현한 게 특징이다. ‘심연’은 문근영 자신의 이야기를, ‘현재진행형’ ‘꿈에 와줘’는 각각 주연배우 정평과 안승균이 각자 이야기를 토대로 문근영과 공동 각본을 썼다. 문근영과 영화 ‘유리정원’(2017)을 함께한 신수원 감독은 “배우의 얼굴과 몸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작품”이라 평했다.

직접 주연을 맡은 ‘심연’은 푸른 물속에서 수렁에 갇힌 여자(문근영)가 또 다른 빛을 찾아 나가는 모습을 그렸다.

‘심연’이 자신의 이야기라 했는데.
“‘나’의 주체가 내가 되니까 연기가 다시 보이기 시작하더라. 그런 깨달음을 담은 작품이 ‘심연’이다. 인생은 끝없는 반복이고, 그것조차 내가 사랑해야 할 삶이란 걸 깨달았다.”
9분 내내 수중 촬영 만으로 찍었는데.
“주인공이 숨 쉬는 걸 잊을 정도로 심취해 있다. 제가 연기를 너무 좋아해서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는 의미도 함축된 것 같다.”
문근영이 각본·연출 맡은 단편 ‘심연’. 그가 지난해 꾸린 창작집단 바치 동료 배우들과 만든 작품으로, 바치 창작집단 공식 유튜브 계정에서도 관람할 수 있다.

문근영이 각본·연출 맡은 단편 ‘심연’. 그가 지난해 꾸린 창작집단 바치 동료 배우들과 만든 작품으로, 바치 창작집단 공식 유튜브 계정에서도 관람할 수 있다.

‘현재진행형’은 무대 위 한 남자(정평)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조명 빛과 쫓고 쫓기기를 거듭하는 흑백영화에 가까운 색감의 작품. ‘꿈에 와줘’는 서울의 밤거리를 걷던 남자(안승균)가 애타게 그리워하던 연인(이다겸)과 꿈에서 만나 춤추는 과정을 짧은 무용극처럼 그렸다.

‘현재진행형’은 주인공인 배우와 대중적 관심을 연상시키는 조명이 술래잡기를 하는 듯한 작품인데.
“제목을 ‘숙명’ ‘굴레’로 하려다 지금 제목이 됐다. 배우라는 직업에 ‘살’이 꼈는지,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나지 못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에서 시작됐다.”
문근영이 각본·연출 맡은 단편 ‘현재진행형’. 그가 지난해 꾸린 창작집단 바치 동료 배우들과 만든 작품으로, 바치 창작집단 공식 유튜브 계정에서도 관람할 수 있다.

문근영이 각본·연출 맡은 단편 ‘현재진행형’. 그가 지난해 꾸린 창작집단 바치 동료 배우들과 만든 작품으로, 바치 창작집단 공식 유튜브 계정에서도 관람할 수 있다.

2019년 드라마 ‘유령을 잡아라!’(tvN)까지 쉴 새 없이 작품 활동을 했던 문근영은 3년 공백기 동안 여행하고 쉬면서도 고민에 빠졌다고 했다. 1999년 영화 ‘길 위에서’로 데뷔해, KBS 드라마 ‘가을동화’(2000)의 흥행 이후 ‘국민 여동생’으로 사랑받았다. “연기하느라 내 몸과 마음은 늘 뒷전이었다”는 그는 2010년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KBS2), ‘매리는 외박중’(KBS2), 연극 ‘클로저’ 세 작품을 몰아 하면서 처음으로 회의가 들었다고 했다. “‘연기란 뭐지, 나는 뭐지, 현장이란 뭐지’라는 생각이 휘몰아쳤다”고 했다.

가장 자유롭게 연기한 기억은.
“‘가을동화’와 ‘장화, 홍련’(김지운 감독, 2003) 때다. 어리고 아무것도 몰라서 촬영장에서 마음대로 했다. 감독님들이 ‘더 해, 뭐 하고 싶어’ 물으시면 ‘저라면 이렇게 할 것 같다’며 연기했다.”
무엇이 자신을 힘들게 했을까.
“생각이 많아졌다. 더 잘하려고, 나아지려고, 항상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다 보니 스스로 구속하게 됐다. 연출의 경험이 그런 나를 해방시켜줬다.”
카메라 뒤에 서니 뭐가 새롭던가.
“‘케어’받는 입장에서 ‘케어’하는 입장이 되니, 내가 온전히 서 있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자각했다. ‘감독이 참 외롭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배우들을 보니 연기가 더 하고 싶어졌다.”

문근영 감독 작품이 또 나올 수 있을까. 독특한 꿈을 잘 꾼다는 그는 꿈과 일상의 감정, 음악을 들으며 떠오른 장면 등을 꾸준히 기록했다. “내가 원하는 감정을 표현하고, 이야기를 들려줄 캐릭터를 직접 만들기 위해 동료 배우들과 ‘바치 창작집단’을 만들었다”고 했다.

최근엔 짧은 공포영화 시나리오도 써봤단다. “완전 ‘병맛’ 공포에요. 저 ‘병맛’ 되게 좋아하거든요. 연출은 다른 분을 구할 수 있지만, 글은 계속 써보려고요.” 그는 “이번 작품 편집기사가 ‘작품이 따뜻하다’고 칭찬해줬다”며 “내 자식 같은 작품이 잘 뛰어노는 걸 보고 싶다. 자유롭게 봐주시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배우로서 연기 스타일에 대해선 “연기를 좋아하지만, 연기가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며 웃었다. “연기할 땐 제가 무한했으면 좋겠어요. 신인 때부터 변하지 않은 목표예요. 자유롭고 틀에 박히지 않는 무한함과 가능성, 그리고 기대치를 만족시킬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이 있으면 좋겠어요. 욕심이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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