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만t 곡물 수출"…푸틴발 식량위기에 '흑해 문지기' 떴다

중앙일보

입력 2022.06.03 18:23

수정 2022.06.03 18:55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서 평화 협상을 중재했던 터키가 이번에는 세계 식량 위기 해결사로 나섰다. 양국의 전쟁으로 수출길이 막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산 곡물 2000만t 운송을 돕기로 했다. 
 

터키, 우크라·러 곡물 2000만t 수출 돕는다

 

터키 해군의 기뢰 대응 군함이 지난 3월 흑해로 향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터키 관영 아나돌루통신은 2일(현지시간) "UN(유엔)의 후원으로 세계 식량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로드맵이 마련됐다. 터키 이스탄불에 곡물 회랑 관련 지휘본부를 설립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나온 약 2000만t 곡물과 해바라기씨를 해상(흑해)을 통해 세계 시장으로 전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우크라이나·터키·유엔이 함께 참여하는 회의가 이스탄불에서 열릴 예정이다. 4자 회담에서는 곡물의 운송 경로, 보험, 선박 안전뿐 아니라 흑해의 기뢰 제거 등 폭넓은 현안에 대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르면 오는 8일이 될 수 있다. AFP 통신에 따르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군 관계자와 함께 8일 이스탄불을 방문해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장관을 만나 흑해의 곡물 회랑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급박해진 식량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이 자리에 우크라이나와 유엔 관계자가 참석할 수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터키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흑해에 설치한 기뢰를 제거하고, 곡물 선박을 안전하게 수송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로이터 통신은 "터키는 흑해에 호위함 2척, 잠수함 2척, 순찰선 6척 등을 보유하고 있어 곡물 회랑을 빨리 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터키가 러시아의 제재 해제 요구를 어떻게 풀지는 미지수다. 앞서 러시아는 서방이 자국을 상대로 한 제재를 해제해야 해상 봉쇄를 풀고 식량과 비료를 수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흑해는 북쪽으로 우크라이나, 동쪽으로 러시아와 조지아, 남쪽으로 터키, 서쪽으로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와 접하고 있다. 구글 지도 캡처

프랑스·독일·이탈리아, 푸틴 설득 실패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전 세계 밀 수출량의 30%가량을 차지하며 세계 식량 공급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지난 2월 말 러시아의 침공 이후, 곡물 수출의 80%를 담당하는 흑해 항구가 막혀 약 2200만~2500만t 곡물이 운송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3월 서방 제재에 맞서 곡물과 비료 등을 수출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면서 세계 식량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지난달부터 서방에선 식량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유럽연합(EU)은 철도를 이용해 육로로 우크라이나 곡물 운송을 도왔지만 해상 수출량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해상 루트를 찾기 위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 등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설득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흑해 문지기' 터키, 푸틴·젤렌스키 중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그러자 흑해 출입구를 지키는 터키가 본격적으로 나섰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잇따라 통화해 전쟁과 식량 위기 등 역내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식량 위기 책임을 놓고 서로를 비난하며 평행선을 달리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지난 3월 평화 협상을 중재했던 터키가 나서자 대화의 물꼬를 텄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식량 운송을 위한 지휘본부를 이스탄불에 구성하는 제안에 우크라이나, 러시아 모두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앞서 흑해 봉쇄를 풀기 위해서는 터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전문가 의견이 많았다. 터키는 흑해 출입문 격인 보스포루스와 다르다넬스 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다. 1936년 맺은 몽트뢰 협약으로 민간 선박의 자유로운 통행은 보장하나 흑해 국가에 속하지 않는 해군 함정의 통행을 제한한다. 영국·리투아니아 등에서 군함을 보내 우크라이나 곡물 선박을 호위하자는 제안이 나왔지만 이 협약때문에 적극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 
 
터키가 등판하자 식량 위기 해법을 찾던 유엔도 한숨 돌렸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터키가 흑해 상황을 해결하고 유엔을 지원해줘서 매우 감사하다"고 전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