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행 담당 애널리스트로 IMF 외환위기(1997년),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를 다 겪으셨는데요. 그동안 은행산업은 많이 레벨업 됐는데, 주가 측면에선 그렇지 못하죠.
- “요즘 투자자들은 이해 못 하시겠지만, 1998년부터 2008년까지 10년은 은행주가 주식시장의 ‘아웃퍼포머’였죠. 이전엔 없던 가계대출이란 새로운 시장이 생긴 데다, 2000년대 들어 금리가 꾸준히 내려가고 돈이 많이 풀린 덕분이었죠. 그렇게 은행업이 호황을 누리다가 금융위기(2008~2009년) 때 살짝 어려움을 겪었고, 2013~2014년부터 다시 회복됐어요. 문제는 이익 늘고 수익성 좋아지는데 주가가 재미없는 시대가 돼버렸어요.”
- 2010년대 중반부터 생겨난 현상이군요.
- “은행주 가치 평가는 주로 PBR(주가순자산비율)을 쓰는데요. 업계 톱 은행도 PBR 0.5배가 될까 말까예요. 한마디로 지금 당장 은행을 청산하면 남는 금액이 1주당 10만원인데, 주가는 5만원인 거죠. 2008년 이전엔 대체로 1배가 넘었거든요. 은행의 자기자본은 꾸준히 오르는데 PBR은 떨어진 게 지난 10년간의 변화예요.”
- 금융지주 순이익이 5~6년 전과 비교하면 2배 수준으로 올랐죠. 연간 당기순이익이 4조원대(KB금융, 신한지주)까지 나왔고요. 이 정도로 이익이 늘어난 산업이 별로 없을 텐데요.
- “만약 지난 5년간의 이익 성장세를 쭉 이어갈 거라고 주식 투자자들이 생각한다면 은행주 주가는 지금의 두 배 정도이겠죠. 그런데 그게 확실히 아니라고 투자자들이 보는 거죠.”
- 그래도 은행 실적은 금리에 민감하니까, 앞으로 1-2년 금리가 더 오른다면 실적 자체는 좋아질 수밖에 없겠죠?
- “지금 추세대로라면 3년쯤 뒤 대형사는 연간 5조원 당기순이익을 기록할 수 있을 겁니다. 은행 입장에선 ‘수익을 내기에 적정한 금리 영역’이 있어요. 예컨대 예금금리가 10%인 나라에선 대출금리 15% 매겨도 욕먹지 않지만, 일본처럼 예금금리가 0%대이면 가산금리를 엄청 많이 붙여도 대출금리가 2%가 채 안 되거든요. 그래서 금리가 너무 낮으면 은행은 예대마진(예금과 대출의 금리 차이)이 줄어들어요. 팬데믹 초반은 은행 입장에선 너무 낮은 금리였고, 이젠 적정구간으로 올라가고 있죠. 그런데 만약 금리가 막 8%로 치솟는다면? 은행주 주가는 떨어집니다.”
- 적정금리 수준을 넘어서서요?
- “한국 경제성장률이 2%, 물가상승률이 2%이면 대략 4%가 적정금리인데요. 은행 대출금리가 8%라면 4%포인트는 신용위험, 즉 은행이 돈을 떼일 거란 가정이 들어갔단 뜻이죠. 그런 경제상황이라면 은행주를 팔아야죠. 과거 2008년이 그랬는데요. 물론 지금은 1~2년 새 그렇게 갈 것 같진 않고, 적정선에서 오를 겁니다.”
- 금융소비자 입장에선 금리가 오르니 대출받아 투자하긴 어려워졌네요.
- “2월 은행 신규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3.88%이었는데요. 서울 강남의 30억 아파트 월세가 400만~500만원이니까 월세 환원율이 2% 안팎인 거예요. 지금은 돈 빌려서 주택에 투자하기엔 굉장히 비효율적인 금리 수준이죠.”
- 과거와 비교하면 국내 은행은 상당히 건전해졌는데요. 최근 보고서에서 ‘자산건전성이 개선돼 은행 실적의 경기민감도가 낮아졌다’고 분석하셨죠.
- “요즘 은행 대손비용률이 0.3%밖에 안 돼요. 100억원을 빌려줘도 1년에 3000만원밖에 손실이 안 난다는 거죠. 경기가 더 좋아진다고 한들 이게(대손비용률) 얼마까지 가겠어요. 0.2%로 낮아져도 고작 1000만원 더 버는 거죠. 그렇게 된 건 저금리 효과인데요. 저금리로 은행이 담보로 가진 부동산 가치가 올라가면서 돈 떼일 염려가 줄었죠. 애널리스트들도 여전히 자산건전성을 체크는 하지만 핵심 요인이 아니에요.”
- 은행 주가엔 예대마진이 중요하지 경기나 건전성은 주요 변수가 아니군요.
- “사실 애널리스트 입장에선 2000년대 초반이 더 좋았던 것 같아요. 그땐 주가 등락폭도 크고, (은행주 주가를) 나쁘게 전망할 만한 합당한 이유가 많았던 시절이죠. 당시엔 경기가 나빠지고 부실여신이 많아지면 은행주 주가가 많이 빠졌고요. 반대로 바닥일 때 잘 추천하면 (애널리스트가) 칭찬도 받았고요. 그런데 지금은 나쁜 요인이 있어도 은행주 주가가 크게 떨어질 이유가 없고, 좋은 게 있어도 딱히….”
- 올해 실적을 생각했을 때 금리 인상이 은행주 주가엔 호재라고 보시는 거죠?
- “경험으로 볼 때, 은행주 주가가 상반기 중엔 강세로 가다가 예금금리가 빠르게 올라오면 지지부진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게 한 8~9월 정도가 될 거예요. 2분기 실적까진 괜찮을 텐데 그 이후엔 ‘계속 순이자마진(NIM)이 올라갈까’라며 주춤할 겁니다. 사실 은행한테 가장 좋은 건 금리가 서서히 올라서 고객들이 대출금리 올라가는 걸 잘 못 느끼게 올리는 건데요. 지금은 워낙 시장금리가 빨리 올라가서, (은행주 주가엔) 만점짜리 환경은 아닙니다.”
- 인터넷은행이 등장하고 카카오뱅크는 쑥쑥 크는데 기존 은행은 변화가 너무 느린 것도 주가가 덜 오르는 이유 아닐까요.
- “카카오뱅크가 높은 시가총액에 상장되면서 기존 금융지주 경영진이 조금 각성한 계기가 됐어요. 잘 된 변화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들이 마음 속으로는 아직 못 받아들이지만요.”
- ‘어찌 저런 인터넷은행 따위와 비교해’라는 거겠죠.
- “시가총액은 지금 당장 이 기업을 청산하면 나오는 가치가 아니고, 영속적이라는 걸 가정하거든요. 저는 카카오뱅크 시가총액이 너무 높다고만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100년 후엔 어떻게 돼 있을지 모르지 않습니까. 25년 전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이 국내 1, 2위 은행이 될 것’이라고 했으면 대형은행들이 콧방귀를 뀌었을 거예요. 마찬가지로 앞으로 일은 모르고, 토스뱅크가 1등하게 될 수도 있는 거죠. 고평가냐 저평가냐를 함부로 논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요.”
- 카카오뱅크는 상장 전에 목표주가 2만원대를 제시한 증권사도 있었죠.
- “제가 상장 전에 제일 높게 썼죠. 6만4000원. ‘아저씨인데 의외로 과감하게 높이 썼네’라는 평가를 해주셨죠(웃음).”
- 주가가 좀더 오를 만한 은행주는 뭘까요?
- “은행 업종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성과가 더 좋을 걸 고르는 건데요. 사실 큰 성과차이가 없거든요. 다만 트렌드를 볼 때 가장 활발하게 M&A와 주주환원정책을 해온 곳은 KB금융이고요. 남들보다는 지방은행을 좋게 봅니다. 지방과 수도권의 (경제) 격차가 너무 벌어져서 정부 차원에서 대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어요.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때 공기업 지방이전에 준하는 특단의 조치가 나오지 않을까 라는 면에서 지방은행은 좀 장기로 투자하기 괜찮아 보여요.”
※이 기사는 4월 25일 발행한 앤츠랩 뉴스레터의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