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희의 맛따라기]
무엇보다 위치와 준비한 공간이 특별하다. 경희궁 뒤, 신축 빌딩 경희당 맨 위층(8층)에 자리를 펼쳤다. 건물 부지 안에서 궁의 담장 터가 발굴됐을 만큼 궁궐과 가까운 곳이다. 실내를 돌아보면 경희궁 후원과 인왕산·안산의 편안한 능선이 눈앞에 보인다. 청와대 뒤 백악산과 멀리 북한산 보현봉·문수봉도 산수화처럼 배경이 된다. 고층빌딩 사이로 남산타워가 지척에서 손짓한다. 옥상에 가면 그 장쾌한 파노라마가 한눈에 들어온다. 근대화 이전 서울 풍광이 저절로 그려진다.
메인 홀 벽에 걸린 족자 형태의 대형 미디어 월에서는 민화를 주제로 한 40분짜리 영상 작품이 돌아간다. 영상은 한국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주제로 정기적으로 바뀐다. 대관 행사 때는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이용할 수도 있다. 요즘 말로 ‘경치 맛집’은 떼어 놓은 당상이겠다.
‘세계인이 찾아오는 한식 레스토랑’ 목표
식당을 연 고품격 투어 전문 여행사 ‘뚜르 디 메디치’ 서현정(55) 대표는 “한국문화를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을 꾸며 서울에서 단 한 번만 식사할 수 있다면 꼭 가고 싶은 레스토랑을 만든다는 의욕으로 작업했다”고 말한다. 이를 뒷받침할 공간 치장과 기물·식자재 조달은 동원이 가능한 국내 정상급 손길을 두루 빌렸다.
이토록 공을 들이는 이유는 “세계인이 찾아오는 한국 대표 한식 레스토랑”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여러 분야의 한국문화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 이때, 한국음식이 세계로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울에서 외국인들에게 본토 한국음식을 즐기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서 대표 여행사는 ‘주은’ 주변의 포시즌·조선·플라자·롯데 등 고급 호텔 외국인 투숙객들을 대상으로 국내 미식 여행 상품도 만들어 운영할 계획이다.
내부는 3개 구역으로 구성했다. 식사 공간은 메인 홀, 룸 2개, 반 개방 룸 1개로 되어있다. 그리고 주방과 주방 옆에 작은 스튜디오가 있다. 두 개의 룸 내부는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 중 내금강 부분 이미지를 원용한 ‘금강산실’과 백자 달항아리를 경쾌하고 단순한 선으로 표현한 ‘백자호실’로 꾸몄다. 장응복 작가 솜씨다. 스튜디오에서는 요리 교실을 열거나 미식 여행 외국인을 위한 공간, 또는 셰프와 함께 음식을 해 먹는 ‘셰프의 테이블’로 이용할 예정이다.
매니저는 지난해 소믈리에대회 우승자
음식 맛을 뒷받침할 주류와 홀 관리를 담당하는 매니저 겸 소믈리에도 실력자를 영입했다. 김주용(42) 매니저는 미쉐린2스타 레스토랑 정식당·임프레션·알렌의 총괄 매니저를 거쳤으며, 지난해 한국 국가대표 소믈리에대회에서 우승했다.
그러나 음식점이므로, 이 모든 것들보다 앞에 음식이 있다. 박 셰프는 “좋은 재료로 사계절과 각 지역 특색을 담는 순수 한국음식을 추구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가을 문 닫은 조희숙(64) 셰프의 ‘한식공간’ 출신이다. 거기서 함께 일한 젊은 요리사 7명을 모두 이끌고 새 둥지로 옮겼다. 조 셰프를 뺀 8명 전원이 호흡을 다시 함께하게 된 것이다.
임시영업 기간인 지난 13일, 조희숙 셰프가 주방 팀을 격려하러 간식을 한 보따리 사 들고 찾아간 자리에 끼어 함께 점심을 먹었다. 점심이지만 저녁 코스로 차린 이 날의 음식은 다음과 같다.
①식전 음료: 김명성발효연구소의 사과식초 물에 당귀 잎 즙을 탔다.
⑥쑥 도다리 만두: 도다리 살을 양념해 소로 넣은 만두 쑥국. 도다리 쑥국의 새로운 해석이다.
⑧갈비증(蒸): 찜솥에 증기로 찐 한우 떡갈비 위에 찐 밤 보숭이(고물)를 도톰하게 올리고, 어린 겨자잎 샐러드를 곁들였다. 『진주 허씨 묵동댁 내림음식』의 갈비찜을 응용한 요리.
⑨주칠(朱漆) 쟁반에 차림 반상: 수향미로 지은 냉이 무쇠솥밥에 바지락 된장국과 칠게 강정, 주꾸미 원추리 무침, 김치가 한 상으로 나오고, 솥밥 누룽지를 삶아 토하젓과 함께 다시 내왔다. 조선 시대 주칠상은 임금님 수라상으로만 썼다.
전 중앙일보 기자. 늘 열심히 먹고 마시고 여행한다. 한국 음식문화 동향 관찰이 관심사다. 2018년 신문사 퇴직 후 한동안 자유인으로 지내다가 현재는 경희대 특임교수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