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츠랩]연말엔 국내산 블록버스터 항암제 볼 수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2022.04.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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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기업. ‘기업이 착한 게 가능한가?’ 싶지만 몇몇 회사가 떠오르긴 합니다. 유한양행도 그중 하나일 텐데요. 100년에 가까운 역사(1926년 창업) 속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긴 건 사실. 창업주(유일한 박사)부터 모범적인 기업인이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히는데요. 독립운동 자금부터, 어려웠던 시기 기부도 많이 했죠.

바이오 이미지. 셔터스톡

기업 경영 방식도 파격적. 국내 최초로 종업원 지주제(1939년)를 도입했고, 상장도 매우 빨랐죠. (1962년) 유 박사가 은퇴(1969년)하면서 전문경영인에게 사장직을 넘겨준 것도 당시로선 놀라운 일이었는데요. 전문경영인 체제는 5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지 중. 업계 최초로 정년 연장을 시행(2010년)하는 등 화합적 노사 관계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크고 작은 제약사에 투자도 많이 해서 업계의 맏형 느낌이랄까?
제약회사가 착하기만 하면 안 되죠. 약을 잘 만들어야. 사업군은 크게 비처방약과 처방약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비처방약으론 안티푸라민(1933년 출시)이 대표적. 먹어본 적은 없어도 들어본 적은 있는 삐콤씨도. 처방약 중엔 당뇨병 치료제 트라젠타, 고혈압 치료제 트윈스타, B형 간염 치료제 비리어드 등이 주력 제품입니다. 요즘은 코로나 치료제 팍스로비드, 라게브리오 국내 유통도 담당.
 
지난해 실적은 그럭저럭 선방. 매출액(별도 기준)은 전년 대비 3.6% 늘어난 1조6241억원이었는데요. 주력인 처방약 매출이 7.6%, 비처방약이 18.0% 각각 증가. 영업이익은 612억원으로 47.4%나 감소했습니다. 2020년 1556억원이던 라이선스 수익(기술 수출 수익)이 1000억원 이상 줄었기 때문. 라이선스 수익은 연구 진행 단계에 따라 다르고, 매년 똑같은 금액을 받는 게 아니어서 본업에 큰 문제가 없다면 일시적인 것으로 볼 만합니다.

유한양행 본사. 유한양행

주가는 오르락내리락했지만 1년 전과 거의 유사한 수준입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제약·바이오주 대부분이 하강 곡선을 그렸는데요. 이와 비교하면 그럭저럭 잘 버텼습니다. 금리 인상 여파로 성장주 외면이 뚜렷했던 올 1분기에도 차분한 모습.
안정감은 좋은데 뭔가 서운한? 그렇습니다. 올해와 내년을 기대할 만한 이벤트가 있죠.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인데요. 2018년 글로벌 제약사 얀센과 1조4000억원 규모의 기술 수출 계약을 맺었던 그 약입니다. 유한양행이 2015년 국내 바이오 업체 오스코텍으로부터 기술을 이전해 개발에 착수했죠.
 
폐암은 암세포의 크기에 따라 소세포암과 비(非)소세포암으로 구분. 암세포가 크면 비소세포폐암인데 폐암의 대부분이죠. 이 중 40% 정도의 환자에게서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 변이가 관측. 이런 환자에겐 EGFR 표적치료제(암세포만 집중적으로 공격)를 쓰는 데 일단 효과가 있지만 내성이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폐암치료제 렉라자. 유한양행

그러면 2차 표적치료제를 쓰는데 대표적으로 ‘타그리소(아스트라제네카)’. 타그리소 역시 내성에서 자유롭지 않은데요. 그다음엔 마땅한 치료 방법이 없습니다. 렉라자가 바로 그 대안 중 하나. 임상 2상에서 돌연변이 양성 환자 76명의 ‘객관적 반응률(ORR, 암이 의미 있는 수준으로 줄어든 환자의 비율)’이 58~72%, ‘무진행 생존 기간(PFS, 암이 커지지 않는 기간)’은 11~13.2개월.
의학적으로 굉장히 고무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는데요. 폐암 치료의 또 다른 난제 중 하나인 ‘뇌 전이’ 환자에게서 우수한 효능을 나타낸 점도 반가운 대목. 지난해 식약처의 조건부 허가(임상 완료 전이지만 중증 환자의 치료 기회를 위해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된 신약의 판매를 예외적으로 허가하는 제도)를 받아 정식 출시할 수 있었던 이유인데요.
 
지난해 하반기부터 처방이 이뤄져 약 64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올해는 300억원 이상으로 늘 전망. 지금은 2차 치료제지만 1차 치료제로 추가로 허가를 받으면 국내 시장만 3000억원대로 확 커집니다. 그러려면 임상 3상 결과가 중요한데요. 올해 12월쯤 결과가 나올 거로 예상(환자가 오래 생존할수록 결과 발표가 지연).

바이오 이미지. 셔터스톡

렉라자를 얀센의 아미반타맙과 병용하는 연구도 현재 진행 중(3상)인데요. 지난해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사실상 다른 치료법이 없는 환자의 경우에도 객관적 반응률이 41%로 매우 높았습니다. FDA 허가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평가. 그렇게 되면 일단 대규모 기술 수출료가 들어오겠죠. 원래 계약대로라면 아직 1조2000억원 정도 받을 돈이 남았습니다. 
렉라자의 경우 국내는 유한양행, 글로벌은 얀센이 상업화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EGFR 처방 시장 규모는 조만간 10조원을 넘어설 전망. 타그리소와의 경쟁을 고려해도 승인만 받으면 수조원대 매출은 무난할 거란 게 업계의 예상입니다. 유한양행도 상당한 액수의 로열티를 받겠죠. 


아직은 성패를 논하기 이르지만 렉라자의 뒤를 이을 후보군도 탄탄. 특히 독일 베링거잉겔하임에 기술 수출한 알코올성지방간염(NASH) 치료제에 거는 기대가 큰데요. 지난해 11월 유럽 내 임상 1상에 착수. 알레르기(아토피 등) 치료제는 국내 임상 1상을 진행 중입니다. 오랜 숙제였던 퇴행성 디스크 치료제 ‘YH14618’은 미국 스파인바이오파마와 손을 잡고 다시 도전하는 중.

출시 90년 안티푸라민. 유한양행

신약 이외엔 동물의약품(AHC)과 건강기능식품에 힘을 싣고 있는데요. AHC 부문의 매출 비중은 아직 2% 정도지만 성장세가 매력적입니다. 지난해에도 매출이 107%가량 증가. 축산용 의약품부터 반려견 알츠하이머 치료제 ‘제다큐어’까지 영역을 확대 중이죠. 건기식 브랜드(데일리케어)와 유산균(엘레나)도 지난해 매출이 각각 610%, 134.8% 증가.
‘안정감+신약 기대감’을 동시에 충족할 몇 안 되는 제약주인 건 분명해 보입니다. 다만 향후 주가는 절대적으로 렉라자의 FDA 승인 여부에 달렸다고 봐야 하겠죠. 렉라자 임상 완료까진 대략 1년 정도의 시차가 있는데요. 일단 올해는 가끔 들려올 임상 소식에 귀를 잘 기울여야 할 듯.
 
 
결론적으로 6개월 뒤:
60년 연속 배당, 때때로 무상증자. 착한 기업 맞음.
 
이 기사는 4월 11일 발행한 앤츠랩 뉴스레터의 일부입니다. 이번 콘텐트가 마음에 드셨다면 주변에 소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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