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일 첫 공연을 한 뮤지컬 ‘프리다’ 중 한 장면이다.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1907~54)의 실제 삶을 소재로 한 이 작품에는 프리다를 둘러싼 고통이 등장한다. 여성이 이해할 수 있는 아픔인 유산, 실연, 기회의 박탈, 남편의 외도가 나온다. 여기에 소아마비, 교통사고, 죽음의 공포까지 겹친다. 프리다 역으로 출연 중인 최정원 배우는 기자간담회에서 “가장 처절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고 했다. EMK뮤지컬컴퍼니가 만든 창작 뮤지컬로 2020년 시험 공연을 거쳤다.
여성 중심 뮤지컬 '프리다' '리지' 공연중
여성의 고통, 억압과 연대를 중심으로 한 무대
비극적 삶의 화가, 살인 용의자의 이야기에 공감대
김태형 연출은 이번 공연에서는 설명하는 장치들을 덜어내고 리지 보든의 행동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지금까지의 극적 작품에서 남성 캐릭터는 훨씬 많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이해를 구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살인을 한 여성 캐릭터 역시 더 뻔뻔하게 굴어도 되겠다 싶었다.” 그는 리지가 도끼를 집어 들어 부수는 대상이 단지 특정 인물이 아니라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시스템이라는 점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프리다’와 ‘리지’에는 남성 배우가 한 명도 출연하지 않고, 각각 4명씩의 여배우가 무대를 채운다. 프리다의 남편 디에고 역시 여배우 중 한 명이 연기한다. 이에 대해 추정화 연출은 “프리다를 제외한 3명은 프리다를 지켰던 천사 같은 사람들이다. 그 ‘수호신’들 중 하나가 디에고를 맡아줬으면 했다”고 했다. 여기에서 ‘수호신’은 극 중의 허구적 인물들. 이들은 프리다가 겪은 고통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고 위로하거나 각성시키는 역할을 한다. 프리다는 이런 과정을 거쳐 결국 고통에서 벗어난다.
이처럼 여성들의 연대는 두 작품에서 중요한 키워드다. ‘리지’에서는 옆집에 사는 여성 앨리스가 리지의 정신적 안식처. 서로 의지하고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다. 리지의 언니 엠마, 가정부 브리짓은 리지와 함께 법정에 서서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에 록 음악 창법으로 반격한다.
두 작품 모두 가상의 화려한 콘서트로 막을 내린다. ‘프리다’는 장애와 고통에서 벗어난 프리다가 세 수호신과 함께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를 열창하며 춤춘다. 속박과 부자유에 괴로워했던 프리다의 한풀이와 같은 장면이다. ‘리지’ 또한 1800년대에서 벗어나 화려한 콘서트 방식으로 배우들이 강렬하게 노래하며 끝난다.
두 작품의 현대적인 콘서트는 21세기 관객과 옛 여성의 연결 고리다. 김태형 연출은 “1892년의 리지가 2022년에 다다라서 어떤 모습이 되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긴 세월을 거쳐온 여성들이 지금 여기에 있다는 동시대성을 보여주기에 콘서트 장면이 적합했다”라고 했다.
이처럼 100여년 전의 여성이 겪었던 폭력과 억압에 대한 스토리가 현대 한국 관객의 지지를 받고 있다. 김태형 연출은 “관객들이 여성 서사의 에너지를 시원하게 받아들여 준다. 앞으로도 여성의 삶을 다룬 무대가 계속되리라 본다”고 했다. 티켓 판매 사이트인 인터파크에 따르면 ‘리지’의 여성 관객 비율은 2020년 94.2%였고, ‘프리다’는 22일 기준으로 86.6%다. 최정원ㆍ김소향이 주연을 나눠 맡는 ‘프리다’는 5월 29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전성민ㆍ유리아ㆍ이소정 등이 출연하는 ‘리지’는 6월 12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