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크론 무차별 확산…방역완화 무방비 정부

중앙일보

입력 2022.03.19 00:02

수정 2022.03.19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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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가 창궐하는 가운데 정부는 거리두기를 또다시 완화했다.
 
18일 0시 기준 신규 확진자는 40만 7017명이다. 전날보다 21만명 줄었지만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인구 100만명당 신규 확진자 역시 7500명(7일 이동평균 기준)으로 가장 많다. 영국은 지난 1월 초, 미국은 1월 말 각각 2500명 안팎으로 정점을 찍은 후 확산세가 현저히 감소했다. 문제는 우리가 언제쯤 정점을 찍을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 오미크론 확진자가 급증하기 시작하고 대략 4주 후에 신규 환자 수가 정점에 달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1월 말 이후 급격한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인구 100만명당 신규 확진자는 250명 안팎에서 7주 만에 30배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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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정부는 이같은 확진자 폭발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 1월 25일 “정부와 일하는 전문가들은 3만명 정도에서 정점일 것이라 예상한다”고 말했다. 2월 7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도 “2월 말 확진자 13만~17만명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감염에 의해 자연 면역을 획득한 사람이 적고, 인구가 밀집한 우리나라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 화를 불렀다고 지적했다.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2월 들어 오미크론 변이가 퍼지기 시작할 때부터 정부가 모든 방역을 포기하고 방치해 현재 마스크만 안 벗었지 국민은 거의 코로나 이전처럼 생활하고 있다”며 “국민의 희생을 전제로 집단면역을 실험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날 역대 두 번째로 많은 301명이 코로나로 숨졌다. 확진자 규모에 비해 사망자 수가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100만명당 사망자는 5.11명으로 최상위권이다. 미국과 영국의 경우 확진자가 최대치를 기록한 뒤 2주에서 4주 후에 사망자가 가장 많았다. 현재 정점을 지나고 있다고 가정해도 다음달까지는 사망자가 계속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계절 독감 사망자는 1년에 2000~3000명인 반면 코로나 사망자는 벌써 1만명을 넘어섰다”며 “독감 치사율은 0.01%인데 코로나19는 0.14%고, 고령자는 치사율이 확 높아지는데 정부는 되레 거리두기를 완화했다”고 비판했다.   


의협 “코로나 환자들 무더기 사망 가능성 높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현행 6명인 사적모임 인원 제한을 8명까지 늘리는 사회적 거리두기 조정안을 내놨다. 식당·카페 등 다중이용시설의 영업시간 제한은 오후 11시로 유지하기로 했다. 오는 21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2주 동안 시행된다. 권덕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1차장(보건복지부 장관)은 18일 열린 중대본 회의에서 “오미크론 대유행과 의료 대응 체계 부담, 유행 정점 예측의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대폭 완화는 우려가 크다”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생업 고통을 덜고 국민의 일상 속 불편을 고려해 인원수만 소폭 조정하는 것으로 격론 끝에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앞서 거리두기 조정안을 논의한 일상회복지원위원회에서는 분과별로 의견이 갈렸다. 중대본에 따르면 방역의료 분과 측 전문가들은 아직 정점이 도래하지 않은 상황에서 거리두기 완화는 부적절하며, 정점 이후 완화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반면, 경제민생 분과에서는 거리두기의 효과성 저하와 민생 경제의 어려움을 들며 거리두기 완화를 주장했다. 사회문화·자치안전 분과에서는 현행 유지와 거리두기 완화 의견이 절반씩 나왔다.
 
정부가 거리두기를 소폭 완화한 것은 아직 유행 정점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이 큰 부담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정점이 분명해져서 감소세로 전환되고, 의료대응 여력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고 평가하기 전까지는 거리두기 전면 해제는 위험하다는 것이다. 이기일 중대본 제1통제관(보건의료정책실장)은“현재는 (유행) 정점 부근에 있다고 보고 있다”며 “이번주 또는 늦어도 다음 주에는 정점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 코로나19대책전문위원회는 이날 “코로나 환자들의 적절한 치료를 위한 의료기관 이송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라 무더기 사망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방역완화 중지를 강력히 촉구한다”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현재 사망자 수로도 인구 대비 전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여기엔 짧은 격리기간 해제 후 사망한 사람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며 “오미크론 감염 후 기저질환의 악화로 인한 사망도 증가하고 있어, 현재 집계되는 사망자 수는 오히려 과소평가된 것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위드 코로나’로 전환하는 방향은 맞지만 주먹구구식으로 추진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확한 정점 시기와 규모에 대한 예측도, 제대로 된 대응 방안도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피해만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치료제인 팍스로비드만 잘 써도 치명률 낮출 수 있는데 지금은 초기에 별 증상 없다고 하면 처방도 안 하고 다시 전화도 안 한다”며 “정부가 정말로 오미크론을 독감처럼 생각한다면 확진자가 언제든 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치료제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부터 구축해야 했다”고 말했다.
 
지난 4일에도 정부는 거리두기를 일주일 앞당겨 완화했다. 당시 신규 확진자 수는 26만 명을 넘어서며 연일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었던데다 방역패스와 밀접접촉자 자가격리 등 주요 방역 조치가 한꺼번에 풀렸던 시기였다. 결국 하루 확진자가 60만명까지 늘었다. 정재훈 가천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백신으로 획득한 면역과 감염으로 획득한 면역 모두 시간이 지나면 감소한다”며 “코로나19는 생명을 잃지 않더라도 여러 부작용이 생기는 위험한 감염병”이라고 말했다. 최재욱 교수는 “지금이라도 국민에게 확진자가 세계에서 가장 많고, 오미크론 사망자만 5000명을 넘을 수 있다는 현실을 알려 방역에 힘써달라고 간절히 부탁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