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가 아닌 사람을 미워한 '별건수사'…범죄와 범죄자 구분하라 [Law談-윤웅걸]

중앙일보

입력 2022.03.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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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은 로마시대 초대 교회 교부로서 그리스도교의 이론적 기초를 다진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가 한 말로 전해진다. 이 말은 그리스도교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법학도와 법률가들에게는 하나의 법언(法諺)으로 여겨지고 있다.

공관병 '갑질' 의혹은 '별건 수사'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지난 2017년 박찬주 전 육군대장이 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검찰단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러한 정신은 서양뿐 아니라 동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중국 전한의 공부(孔駙·공자의 9대손)는 「공총자(孔叢子)」라는 책에서 ‘옛날 재판하는 사람은 죄를 범한 마음은 미워하되, 그 사람은 미워하지 않았다(古之听言公 惡其意 不惡其人)’고 적고 있다. 미워할 대상은 범죄 행위이지 그러한 행위를 한 사람은 아니라는 사상이 동서양을 관통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범죄와 범죄자를 분리하여 바라본다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려운 일이고, 인간의 보복 감정에 반하는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하여 인권이 무시당하고 인격적으로 모독당하는 일이 당연시 돼서는 안 된다. ‘자백은 증거의 여왕(Confessio est regina probationum)’이라고 불리던 시절 자백을 얻기 위해 고문이 허용되었던 것은 죄와 죄인을 분리하지 못하고 인간에 대한 존중과 애정을 상실한 데서 온 불상사이다. 
 
어떤 사람이 한 번 걸린 김에 또는 제거 대상이 정해진 김에 문제가 된 행위 자체보다 문제가 된 그 사람의 전 인생을 뒤져 털끝 하나라도 찾아내려는 행위는 자칫 없는 죄도 만들어 내는 야만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생각에 검사 등 수사 종사자들이 지배당하게 된다면 위와 같은 야만의 결과는 더욱 가중되게 된다.
 
문제가 된 행위에 국한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하는 것이야말로 이성이 지배하는 문명사회에서 통용되는 근대적 법정신이다. 그런데 수사를 하는 주체는 그 수사의 대상이 된 사람을 어떻게든 처벌하려는 심리를 가지게 된다. 그러한 심리가 과도하게 작용하면 수사의 동기였던 사안이 처벌할 수 없는 것으로 판명되더라도 수사를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반드시 구속할 만한 다른 사안, 즉 별건을 찾아내는 데 혈안이 되게 된다. 이를 이른바 ‘별건 수사’라고 한다.


최근에 일어난 사건 중에서 행위가 아닌 행위자를 잡기 위한 별건 수사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이른바 ‘공관병 갑질 의혹사건’을 꼽을 수 있다. 현역 육군 대장의 공관병 갑질 의혹이 불거지자 국민의 분노가 극에 달하고 대통령마저 “이번 기회에 군내 갑질 문화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공개지시를 내리게 됐다. 이에 군 검찰은 갑질의 당사자인 박찬주 전 육군 대장에 대해 수사를 개시했으나 문제로 제기된 갑질 의혹은 법리상 직권남용으로 인정하기 어렵게 되자, 별건인 뇌물수수 혐의를 밝혀내 박 전 대장을 구속하고야 만다.
 

서울 서초동 중앙 지검 모습. 연합뉴스

결국 박 전 대장은 당초 문제가 되었던 갑질 의혹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되고 별건인 뇌물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됐으나, 그 뇌물 혐의조차 대법원에서 무죄선고를 받게 된다. 박 대장이 최종적으로 받은 처벌은 별건 수사 과정에서 나온 부정청탁및금품수수금지법(청탁금지법) 위반에 대한 벌금 400만원으로, 그 혐의는 금품수수나 대가 없이 ‘고향에서 부모님을 봉양하며 직을 수행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부하 중령의 청탁을 듣고 하급자들에게 배려해 주도록 지시했다는 내용에 불과하다.
 
필자가 위 사안을 언급한 것은 박찬주라는 사람의 부적절한 행위를 옹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위 사건 발생 초기 필자도 군에 아들을 입대시킨 부모로서 당연히 분노했고, 박 전 대장에 대한 합당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 수사 진행 상황을 지켜보면서 당초 문제가 된 갑질 의혹이 아닌 소액의 뇌물수수를 밝혀내 구속까지 하는 것을 보고 이는 전형적인 별건 수사로서 수사의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평가했다. 
 
박 전 대장의 이른바 ‘공관병 갑질’ 행위가 범죄로 인정된다면 그에 적합한 처벌을 받으면 된다. 그리고 만약 그의 행위가 법리상 범죄로 인정되지 아니한다면 군의 신뢰상실 등 비위 항목에 해당하는 징계나 도덕적 지탄의 대상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위 사안은 ‘공관병 갑질’이라는 행위에 국한시키지 못하고 박찬주라는 사람을 어떻게든 구속해야 하는 대상으로 만든 것이다. 
 
분노한 군중이 ‘누군가’에게 돌팔매질을 하더라도 법률가, 특히 검사는 끝까지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그가 행한 ‘행위’에 대해서만 합당한 처벌이 내려지도록 해야 한다. 검사가 범죄에 대해 적개심을 갖는 것은 정의의 영역이나,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까지 적개심을 갖는 것은 인간에 대한 존중과 애정을 저버리는 일이다. 검사는 처벌하고자 하는 대상이 그 누구이든 간에 죄와 사람을 구분함으로써 인간애를 잃지 않으면서도 범죄척결로 정의를 세워야 하는 어려운 사명을 수행해내야 한다.
로담(Law談) : 윤웅걸의 검사이야기
검찰의 제도와 관행, 검사의 일상과 경험 등을 알기 쉽게 소개함으로써 한국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검사와 검찰에 대한 이해를 돕고, 이를 통해 바람직한 형사 사법제도의 모습을 그려 보고자 합니다. 

윤웅걸 변호사

※윤웅걸 법무법인 평산 대표변호사. 서울지검 2차장검사/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제주지검장/전주지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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