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가 목숨을 걸어야 때…중남미는 마약수사, 한국은 [Law談-윤웅걸]

중앙일보

입력 2021.12.14 05:00

업데이트 2021.12.14 11:08

Law談

Law談’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용기는 ‘씩씩하고 굳센 기운 또는 사물을 겁내지 아니하는 기개’를 말한다. 직업 중에 용기를 필요로 하는 직업이 있다면 대표적으로 군인이 있을 것이다. 육군사관학교에 가면 ‘내 생명 조국을 위해’라는 글귀가 새겨진 커다란 비석이 있다. 사관생도들이 매일 그 비석을 올려다보며 목숨을 바쳐서라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한 대의를 위해 하나뿐인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다니 그만한 용기가 어디에 또 있을까? 군인의 용기와 충정이 절로 느껴진다.

검사들은 임관시 '검사 선서'에서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있는 검사'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로비에 검사 선서가 보인다. 연합뉴스

검사들은 임관시 '검사 선서'에서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있는 검사'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로비에 검사 선서가 보인다. 연합뉴스

검사의 사명을 다 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용기가 필요할까? 검사가 실제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용기가 필요한 나라가 있다고 한다. 물론 한국의 이야기는 아니다. 필자가 검사 시절 법무연수원에서 외국 검사들을 교육하는 업무를 담당할 때, 중남미 국가에서 온 검사로부터 “나는 마약 담당 검사인데 24시간 중무장 경호를 받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자기 나라의 마약 담당 검사 중에 “마약조직에 납치돼 잔인하게 살해된 검사도 있다”면서 “한국 검사들은 안전하게 검사 생활을 하느냐”고 되묻기까지 했다.

필자는 이러한 대화를 통해 한국의 검사들은 검사의 직무를 수행하는데 목숨을 거는 용기까지 필요하지 않음에 감사하게 됐다. 한국도 오래전에 조직폭력배가 보낸 사시미 칼이 검사 집에 배달된 적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기는 하지만, 1990년대 ‘범죄와의 전쟁’ 이후 검사를 물리력으로 제압할 만한 폭력 조직이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한국에도 검사를 위축시킬 수 있는 압력은 존재한다. 그것은 검사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정치권력이다. 정치권력과 그 주변의 비리를 수사하는 경우나 정치권력의 입맛에 맞지 않는 수사를 하는 경우, 검사들은 권력의 부당한 압력과 보복성 인사 조처를 종종 경험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권력에 영합하는 검사도 일부 있을 수 있는데, 이러한 때 검사에게는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과 함께 ‘바람이 불기도 전에 먼저 눕는 풀’이라는 비아냥도 듣게 된다.

한편으로 또 다른 검사들은 권력의 부당한 압박을 견뎌내면서 ‘거악을 편히 잠들게 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정의를 세운 사례도 많이 있다. 그로 인해 보수 정권에서든 진보 정권에서든 검사들이 권력에 밉보여 한직을 전전하거나 쫓겨나는 일이 적지 않았다.

검사들은 임관하면서 ‘검사 선서’를 통해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가 되겠다는 다짐을 한다. 검사들이 추구하는 형사 사법의 정의는 현실에 적용되는 실천적 정의다. 정의를 실현하고자 할 때 이를 저지하는 ‘불의의 어둠’이 있기 마련이다. 검사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이러한 불의의 어둠을 걷어낼 수 있는 용기와 기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공무원 신분인 검사가 인사상의 불이익까지 감수하면서 외압에 맞서는 것은 그야말로 목숨을 거는 용기에 버금가는 일로 쉬운 일이 아니다. 검사가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는 이러한 압력에 맞서 이른바 ‘목숨 거는 용기’가 필요한 때가 있다.

몇 년 전 대검찰청은 미국의 제임스 스튜어트 기자가 쓴『용기 있는 검사들』이라는 책을 ‘검사들이 올해 읽어야 할 10권의 책’ 중 하나로 선정했다. 아마도 검사가 갖추어야 할 덕목 중 하나인 ‘용기’를 검사들에게 강조하려는 뜻이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은 미국 검사들이 맥도널 더글러스 항공회사 증뢰사건, 에드윈 미즈 법무부 장관 독직 사건 등 미국의 6대 의혹사건을 파헤치는 활약상을 그려냈다.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은 유신 시대와 5공화국 시대에 걸쳐 검사로 일했던 성민경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군사 독재가 시퍼렇던 그 시절에 여러 건의 정관계 고위층 비리를 수사하다가 청와대 등 권력으로부터 수사중단 압력을 받았으나, 이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비리를 파헤치는 바람에 정권에 밉보이고 좌천됐다. 그는 결국 승진에서 탈락하고 검찰을 떠났다.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이 “성 검사는 정의를 사랑하고 불의를 미워하는 검사였다”고 회고했다 하니 성 검사의 용기와 정의에 대한 신념은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특별검사는 일반 검사에 비해 권력의 인사권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지난 5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특검 사무실에서 열린 현판식 모습.연합뉴스

특별검사는 일반 검사에 비해 권력의 인사권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지난 5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특검 사무실에서 열린 현판식 모습.연합뉴스

성 검사는 검찰을 떠난 후 길지 않은 변호사 생활을 통해 위 책을 번역했으나, 출간을 앞두고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그가 죽은 지 두 달이 지난 1989년 8월 그가 살아서 몸소 보여주었던 것을 웅변하듯 원제가 『검사들(The Prosecutors : Inside The Offices Of The Government's Most Powerful Lawyers)』이었던 위 책은 『용기있는 검사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검찰이 권력 앞에서 머뭇거렸던 권력 비리에 대한 수사를 특별 검사가 잘 해내는 경우가 있다. 이는 특별 검사가 일반 검사보다 특별히 실력이 더 있거나 용기가 더 있어서가 아니다. 검찰은 권력의 인사권에 종속돼 있지만, 특별검사는 하나의 사건만 처리하면 종료되는 한시적 조직으로 권력의 인사권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물론 검사들이 공정성에 용기를 더했더라면, 그리고 그러한 모습으로 국민에게 비쳤다면 특별 검사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불러들인 것을 누구에게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다만 검사들이 권력 비리를 수사함에 있어서 굳이 목숨을 걸 정도의 용기가 아니라 다소 소박한 용기만 있어도 될 정도의 제도적 보완은 필요하다고 본다. 권력의 의중에 따라 검사의 목이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로담(Law談) : 윤웅걸의 검사이야기
검찰의 제도와 관행, 검사의 일상과 경험 등을 알기 쉽게 소개함으로써 한국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검사와 검찰에 대한 이해를 돕고, 이를 통해 바람직한 형사 사법제도의 모습을 그려 보고자 합니다.

윤웅걸 변호사

윤웅걸 변호사

※윤웅걸 법무법인 평산 대표변호사. 서울지검 2차장검사/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제주지검장/전주지검장.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