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로 세상을 바꾸겠다" 이 위험한 유혹 벗어나려면 [Law談-윤웅걸]

중앙일보

입력 2022.02.0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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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사법연수원을 수료하던 1990년대 초반 한 월간지에서 ‘경찰, 군, 안기부 등이 그간 맡아왔던 역할을 향후 10년간은 검찰이 맡게 될 것’이라고 분석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민주화가 되면서 권력 유지를 위한 통치 수단이 검찰로 바뀔 것이라는 내용이 주요 골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후 검찰은 몇 차례의 대선에서 주요 후보에 대한 수사를 유보하거나 반대로 강력한 수사를 진행하면서 그 당락에 영향을 미쳤고, 대통령의 가족이나 주변을 수사하고 전직 대통령을 구속하는 등 정치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한편 권력은 검찰의 힘을 이용하기 위해 끊임없이 검찰을 장악하려 해왔고, 자신들에게 칼을 들이대거나 말을 듣지 않는 검찰에게는 그 힘을 빼려는 시도를 해왔다.

그간 검찰은 수사를 통해 정치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권력 역시 검찰을 장악하거나 힘을 빼려는 시도를 해왔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모습. 뉴스1

그간 검찰은 수사를 통해 정치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권력 역시 검찰을 장악하거나 힘을 빼려는 시도를 해왔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모습. 뉴스1

검찰을 통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권력과 그러한 권력에 기생하거나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검찰 사이의 역학 관계가 10년이 아닌 3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검찰이 정치에 막대한 영향을 줄 것이라는 위 월간지 기사는 ‘향후 10년’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검찰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오늘날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은, 권력은 검찰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자신들에게 칼을 들이댈 수 없도록 검찰의 권한을 몰수한 반면 현직 검찰총장은 그 직을 그만두자마자 바로 제1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돼 권력 자체를 추구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의 전개다.

권력을 쥔 사람은 검찰을 통치 수단 중 하나로 인식하고 이를 통치에 이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검찰을 통치 수단으로 본다는 것은 권력자들이 검찰을 통해 정적은 제거하면서 자신들은 보호받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례는 권력자의 그러한 의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이 선택한 제프 세션스 당시 법무부 장관(미국은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을 겸직하는 제도로서 연방검사를 지휘·감독하고 이에 ‘Attorney General’이라고 한다)이 트럼프 전 대통령 자신이 연루된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할 특별검사로 로버트 뮬러 전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임명할 길을 터주자, 인터뷰를 통해 “충성심 때문에 세션스를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했으나, 이제는 그 결정을 후회한다. 나는 법무부 장관이 없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런 발언에 대해 미국 언론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세션스 전 장관에 대한 개인적인 배신감을 넘어 자신이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과 분노를 여과 없이 표현한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법무부 장관이 ‘대통령 개인’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식의 공개적인 분노 표출은 대통령의 발언으로서는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 연방검사를 지낸 조이스 밴스는 “트럼프는 법무부 장관이 아니라 법률 고문을 원하는 것 같다.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이 아니라 미국인들을 지키는 자리라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인식이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결국 자신을 보호하지 않은 세션스 당시 법무부 장관(검찰총장)을 해임하고 만다.

지난 2017년 미국 대선 당시 상원의원 중 트럼프 지지를 가장 먼저 선언했던 제프 세션스(왼쪽). 트럼프와 함께 선거 유세에도 적극 나섰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세션스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지만, '러시아 스캔들'자신의 반하는 의사 결정을 했다며 해임했다. 중앙포토

지난 2017년 미국 대선 당시 상원의원 중 트럼프 지지를 가장 먼저 선언했던 제프 세션스(왼쪽). 트럼프와 함께 선거 유세에도 적극 나섰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세션스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지만, '러시아 스캔들'자신의 반하는 의사 결정을 했다며 해임했다. 중앙포토

권력이 검찰을 통치 수단으로 삼는 행위가 비판받아 마땅한 것처럼, 반대로 검사들 또한 특정 정치 세력에게 유리하게 검찰권을 행사하는 등 정치에 영향을 주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한국 검찰청법 제4조는 ‘검사는 그 직무를 수행할 때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사가 수사나 기소를 행함에 있어서 권력으로부터 달콤한 보상을 받을 목적으로, 검사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실현할 목적으로, 또는 검사 이후의 정치적 입지를 다질 목적 등으로 검찰권을 행사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일본의 전 검사총장(검찰총장) 요시나가 유스케는 “검사는 수사가 정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생각하면 안 된다. 수사로 세상이나 제도를 바꾸려 하면 ‘검찰 파쇼’가 된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검찰은 오물이 고여있는 도랑을 청소할 뿐이지 그곳에 맑은 물을 흐르게 할 수는 없다”라고 했다. 그는 다나카 가쿠에이 전 수상을 구속하는 등 정권 실세들을 법정에 세운 ‘록히드 사건’의 주임검사로 살아있는 권력의 전방위적 압력과 회유를 극복하고 권력 비리를 파헤쳐 도쿄지검 특수부의 신화를 일궈낸 인물이다. 일본 검사의 상징처럼 존경받던 그가 퇴임할 당시 일본 언론은 “우리는 오늘 한 명의 뛰어난 검사를 잃은 대신 또 한 명의 훌륭한 원로를 얻었다”라며 진심 어린 찬사를 보냈다. 그의 말을 가볍게 여겨서는 아니 될 것이다.

검찰이 권력으로부터 장악당하거나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되는 것을 검찰의 ‘독립성’이라고 한다면, 검찰이 정치에 영향을 주거나 검찰 스스로 정치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을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라고 할 수 있다. 검사가 충성해야 할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국가와 국민일 뿐,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 세력이 아니며 더군다나 검찰조직 자체도 아니다. ‘검사는 권력이 아니라 국민을 지키는 자리’라는 조이스 밴스 전 연방검사의 말은 이를 잘 나타내고 있다.

한편 ‘수사로 세상을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라는 요시나가 유스케 전 검사총장의 말은 검사가 정치에 영향을 주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아니 됨은 물론 검사 스스로 권력기관 즉 ‘파쇼’가 돼 세상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도 벗어나라는 것으로 새겨야 한다. 검사가 겸허한 자세로 공정하고 정의로운 수사를 한다면 좋은 세상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로담(Law談) : 윤웅걸의 검사이야기
검찰의 제도와 관행, 검사의 일상과 경험 등을 알기 쉽게 소개함으로써 한국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검사와 검찰에 대한 이해를 돕고, 이를 통해 바람직한 형사 사법제도의 모습을 그려 보고자 합니다.

윤웅걸 변호사

윤웅걸 변호사

※윤웅걸 법무법인 평산 대표변호사. 서울지검 2차장검사/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제주지검장/전주지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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