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엄마 셔틀’ 덕에 차 안에서 경험한 10분 명상

중앙일보

입력 2022.02.0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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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현주의 즐거운 갱년기(81)

 
이번 겨울방학에는 ‘엄마 셔틀’ 횟수가 늘었다. 아이가 중3이 되니 학원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셔틀버스를 타고 오기 어려운 데다, 그렇다고 노상 피곤하다고 이야기하는 아이에게 시내버스를 타라고 말하기가 안쓰러워 학원이 끝나는 시간이면 매번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다. 이제 겨우 중3인데 밤늦게까지 밖에서 공부하는 게 맞나 싶다가도, 학원 외에 다른 대안을 찾기도 쉽지 않아 늘 고민 중이다.

 
그 날은 오랜만에 혼자 나섰다. 평소에는 잠깐 바람이나 쐬자며 남편과 동행하는데, 그 날은 남편이 일이 있었다. 학원 근처 골목에 차를 주차했다. 아이가 나올 때까지 10분 정도 남았고, 시동을 껐다. 순간 차 안이 조용해졌다. 적막한 밤, 차창 밖 골목이 오롯이 눈에 들어왔다. 9시 이후 모든 식당과 숍들이 문을 닫아 그런지 걸어 다니는 사람도 드물었다. 간판의 불은 꺼진 지 오래고, 골목 양옆 건물의 사무실도 대부분 비어 있어 보였다. 갑자기 마주한 고요한 순간, 마음이 편안해졌다.

 

명상의 시간은 의식해서 만들지 않아도 된다. 일상 속 한 순간에 호흡을 고르고 나에게 집중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시작인 것이다. [사진 Jane Palash on unsplash]

 
그러고 보니 나에게 소리가 없는 시간은 드물다. 아침에 일어나면 유튜브를 켜고 요가를 하고,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뉴스를 틀어 놓는다. 출근길에도 퇴근길에도 라디오와 함께하고, 잠시 혼자 걷더라도 팟캐스트 채널 속 패널들의 입담에 빠지거나 음악을 골라 듣는다. 사무실에서는 동료들의, 집에서는 가족들의 목소리가 옆자리를 채우고, 카페나 식당을 가도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BGM이 가득하다. 음악도 뉴스도 누군가의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작은 공간, 사람도 차도 지나가지 않는 어두운 밤거리. 이상할 정도로 차분해졌다. 이런 게 평화로운 상태(shanti, 샨티)라는 건가. 차창 밖의 시선을 나에게로 돌리고, 내 몸의 작은 움직임과 숨소리에 집중했다.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10여 분이 그렇게 충만할 수 없었다. 명상이라는 게 나에게 집중하고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잠깐 차 안에서 머무는 동안에도 가능하다니. 주변의 모든 것과 거리를 두고 한 가지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잠깐이라도 마련할 수 있다면 일상 속에서도 얼마든지 명상을 할 수 있다!

 
명상을 하면 마음이 안정되는 것과 동시에, 몸에 에너지가 조금씩 차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얼마 전에 만난 선배는 차 명상 수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차가 전하는 향과 맛에 집중하고 그것을 음미하는 자신에게 집중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의 행복감을 전하며 나에게도 해보라며 권했다. 선배의 얼굴이 이전보다 훨씬 맑아진 듯했다. 명상으로 박사과정을 마친 선배도, 스님이 진행하는 명상 수업을 꾸준하게 듣는 선배도 있다. 심리학 공부를 마친 뒤 명상과 상담 클래스를 운영하는 후배도 있다. 회사의 동아리 중 하나도 명상 수업을 함께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주변의 많은 사람이 자신을 찾아가려 노력 중이다. 코로나19 이후 마음 둘 곳을 찾고 싶은 이들이 많아진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 생각한다.


 

행복해지는 기본 조건은 행복한 상태를 우리가 의식하는 데 있으며, 이것의 토대가 되는 것이 마음챙김이라고 전하는 틱낫한 스님의 책 '모든 발걸음마다 평화'. [사진제공 불광사]

 
지난주 세계적 명상 지도자 틱낫한 스님이 입적하셨다. 스님의 여러 가르침 중 걱정과 불안, 망상에 한눈팔지 말고 호흡과 발밑에 마음을 집중하라는 ‘걷기명상’에 감화되어, 한동안 따라 했던 적이 있다. 작년에 재출판된 스님의 책 『모든 발걸음마다 평화-매일의 삶에서 실천하는 마음챙김의 길』(불광출판사)은 실생활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 방법으로 ‘호흡’과 ‘미소’에 관해 이야기한다. 숨을 쉴 때 어떻게 들이마시는지, 내쉴 때 어떻게 내쉬는지 인식하고 바라보고 느껴보는 과정. 이렇게 호흡에 집중하다 보면 내가 숨 쉬고 있는 ‘현재(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사람임을 알게 되고 과거에 대한 회한과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적혀 있다. 또 의도적으로라도 미소를 띠는 시간을 가져보라 권한다. 미소 짓는 연습은 수 백개의 얼굴 근육을 이완시키고, 이렇게 근육을 움직이다 보면 실제로 즐거울 때 보이는 신경계 반응을 끌어내는 효과를 일으킨다고 한다.

 
스님의 부고 기사를 찾아 읽으며 ‘호흡’하고 ‘미소’지으며 ‘걷는’ 시간을 다시 한번 챙겨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주변에 신경을 쓰고, 그것을 통제하기 위해 애쓰고, 마음대로 안 되면 상처받는 일상에서 잠시 비켜나 힘을 빼고, 숨을 쉬고, 나 스스로에게 미소 짓는 시간 말이다. 혼자 차 안에 앉아 아이를 기다리는 10분을 사용하든, 명상의 경험을 함께 나누는 동호회나 수련회에 참여하든, 어쨌든 ‘마음챙김’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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