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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실감하며, 참여하며…새롭게 박물관 체험하기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현주의 즐거운 갱년기(80)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란 문구를 읽는 순간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사유의 방’이라니. 작년 11월 국립중앙박물관에 마련된 이곳은 넓은 전시실 안에 오롯이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두 점만이 전시되어 있다. 번잡한 머릿속을 비우고 고요 속에서 무념무상하는 시간은 생각만 해도 매력적이지 않은가. 이미 다녀간 사람만도 10만명이 넘었다고 하니,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나만이 아닌 듯했다.

기온이 뚝 떨어진 주말 오후 남편과 함께 박물관으로 나섰다. 다른 전시장은 제쳐 두고 2층으로 올라갔다. 어두운 방, 극장에 들어가듯 새어 나오는 불빛을 따라 걸음을 옮기니 마치 무대 위에 앉아 있는 것처럼 두 점의 반가사유상이 나란히 놓여 있었고, 객석의 관람객들은 불상이 전하는 느낌을 담고 싶은 듯 연신 사진을 찍고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위치한 '사유의 방'. 잠시의 사유를 원하는 관람객이 조용히 반가사유상 주변을 돌며 감상을 하고 있는 모습 자체도 또 다른 감상의 소재가 된다. [사진 김현주]

국립중앙박물관에 위치한 '사유의 방'. 잠시의 사유를 원하는 관람객이 조용히 반가사유상 주변을 돌며 감상을 하고 있는 모습 자체도 또 다른 감상의 소재가 된다. [사진 김현주]

“반가의 자세는 멈춤과 나아감을 거듭하며 깨달음에 이르는 움직임 가운데 있습니다. 한쪽 다리를 내려 가부좌를 풀려는 것인지, 다리를 올려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들어갈 것인지를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반가의 자세는 수행과 번민이 맞닿거나 엇갈리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살짝 다문 입가에 잔잔히 번진 ‘미소’는 깊은 생각 끝에 도달하는 영원한 깨달음의 찰나를 그려 보게 합니다. 이 찰나의 미소에 우리의 수많은 번민과 생각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불상을 설명하는 글을 읽고 나니 불상의 얼굴이 달라 보였다. 사유하고 번민하는 모습이 친근했고, 깨달음의 미소가 부럽기도 했다. 반가사유상을 보며 ‘치유와 평안’을 얻는다는 말이 이런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감상이 증폭되는 건 공간의 역할이 컸다. 들어오는 문과 나가는 문이 달리 배치된 어두운 전시실은 흡사 동굴처럼 고요했고, 섬세하게 비치는 조명은 오로지 불상만을 집중하게 하였다. 오감을 인식하게 만드는 실감 콘텐트가 관심을 받고 있는 요즘, 이곳에서 머문 시간은 다른 의미의 실감을 전해주기에 충분했다.

실감 영상관에서 감상한 두 편의 작품이다. 금강산이 찬란하게 변하는 모습에 압도당했고, 왕의 행렬에 흥이나 저절로 어깨가 들썩였다. [사진 김현주]

실감 영상관에서 감상한 두 편의 작품이다. 금강산이 찬란하게 변하는 모습에 압도당했고, 왕의 행렬에 흥이나 저절로 어깨가 들썩였다. [사진 김현주]

생각 난 김에 ‘문화유산을 소재로 한 실감 콘텐트’를 전하는 디지털 실감 영상관으로 향했다. 이곳 역시 개장 이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아오고 있는 곳이라 알고 있었지만 들어가 보는 건 처음이었다. 영상관 입구에서 만난 ‘책가도’는 관람자가 참여할 수 있는 반응형 영상이었는데, 거기서부터 눈이 휘둥그레졌다. 영상 속 책장 그림에 직접 물건을 골라 담을 수도 있고, 액자에 자신의 얼굴을 넣을 수도 있었다. 전시장에 방문한 아이들의 얼굴이 책장 가득 놓여 있는 조선시대 그림이라니, 문화재를 이런 방식으로 친근하게 접할 수 있게 된 것이 반가웠다.

영상관 1에서는 두 편의 실감 영상이 펼쳐졌는데, 그중 하나가 금강산의 사계를 담은 ‘금강산에 오르다’였다. 정선의 ‘신묘년풍악도참’, 김하종의 ‘해산도첩’, 김홍도의 ‘해동명산도첩’을 바탕으로 웅장한 금강산의 아름다움이 음악과 함께 영상으로 구성되었다. 다음 영상은 정조의 화성행차와 낙성연을 소재로 한 ‘왕의 행차, 백성과 함께 하다’였는데,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때문인지 더 몰입해 감상할 수 있었다. 두 편의 영상이 방에 가득 비치는 동안 금강산 한중간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화성 축제에 참여하는 백성이 된 것 같기도 했으니 문화재와 확실히 소통은 한 셈이다. 박물관과 전시회에 영상 등 디지털 기술이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기술을 통해 얼마나 작품에 가까이 갈 수 있는지 직접 체험해보니 예상한 것보다 몰입감이 높았다. 작품에 대한 친근감과 호기심이 더 생기고 이해도 빨라지는 것 같았다.

서울공예박물관의 ‘공예작품 설치 프로젝트 Object9’. 작품의 시작부터 결과까지를 연결시켜 보여주는 전시 방식이 흥미로웠다. [사진 김현주]

서울공예박물관의 ‘공예작품 설치 프로젝트 Object9’. 작품의 시작부터 결과까지를 연결시켜 보여주는 전시 방식이 흥미로웠다. [사진 김현주]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서울공예박물관의 전시를 보면서도 작품을 전달하는 새로운 방식에 감탄했다. 공예문화부흥을 위해 서울시가 2021년 개관한 이곳은 박물관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공예작품을 체험할 수 있다. 박물관 내부와 외부 공간을 공예가와 함께 만드는 ‘공예작품 설치 프로젝트 Object9’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 9점이 박물관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데, 작품처럼이 아니라 관람객이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생활의 도구처럼 놓여 있었다. 이를테면 박물관 외벽의 한쪽을 감싸듯 설치한 4000여개의 도자기 조각은 강석영 작가의 ‘무제’이고, 박물관에 들어서서 처음 만나는 천장에 설치된 붉은 색 유리 오브제는 김현철 작가의 ‘시간의 흐름’이라는 작품이다. 이런 식으로 9명의 공예작가의 작품은 관람객의 의자가 되기도, 안내데스크 역할을 하기도 하며 실감의 대상이 된다. 게다가 작가의 코멘터리와 작업과정을 담은 영상, 작업할 때 사용한 소재와 도구들이 작품별로 목조 설치물 안에 전시가 되어 있어, 작품에 대한 이해와 친근감을 배가시켰다. 결과물로서의 작품뿐 아니라 그것의 발원지인 작가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이 하나의 작품이 되는 흥미로운 체험이었다.

한동안 박물관을 안 가봤더니 이렇게 달라져 있다. 단순히 지식과 정보를 전하는 공간이 아닌 그것을 통해 예술의 과정을 체험하고, 그 안에서 쉴 수 있게 하는 공간이 된 듯했다. 디지털 뉴딜, 과연 모든 것을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 창조해야 하는 때다. 하긴 ‘사유의 방’도 ‘힐링동산’이란 이름으로 제페토 안에 만들어졌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다양한 실감을 경험하기 위해 캐릭터와 함께 가상 공간에 만들어진 ‘사유의 방’에도 들어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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