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은퇴 후 하고 싶은 일 1위 여행…실제는 TV시청

중앙일보

입력 2022.01.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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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104)

어느 사람이 죽어 하늘에 올라가니 사람들이 길게 줄을 이어 무언가를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도 행렬 뒤에 서서 앞에 있는 사람에게 이게 무슨 줄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느님이 방금 하늘에 오른 사람들을 면담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앞을 보니 하느님이 한 사람 한 사람 붙들고 “너는 내가 준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느냐” 하며 묻고 있었습니다. 그도 줄에 서서 기다리다가 그의 차례가 다가오자 슬그머니 뒤로 돌아가 다시 끝줄에 섰습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하느님에게 드릴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어쩔 수 없이 그의 차례가 왔습니다. 하느님은 그를 보고 빙그레 웃으시며 너는 세상에서 한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한참 망설이다가 말했습니다. “하느님, 저는 잘한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자 하느님은 누구나 세상에서 한 일이 있을 거라며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하십니다. 그는 마지못해 울면서 대답했습니다. “하느님, 길가의 돌 하나 주어 신작로 끝에 옮겨 놓은 것밖에 한 일이 없습니다.”
 

먼 훗날 하느님 앞에 섰을 때 과연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보니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사진 pxfuel]

 
위의 글은 정종수 시인의 ‘길가의 돌’을 나름대로 각색한 것입니다. 시인이 어떤 배경으로 이 시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내용이 꼭 저를 겨냥한 것 같아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시의 주인공은 아마 살아생전 큰일은 하지 못했고 사람들이 다칠 것을 염려하여 길가의 돌을 하나 주어 옮겨 놓았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겸손하게 하느님에게 답한 것입니다.
 
글을 읽고 난 후 내가 죽어 하느님 앞에 섰을 때 과연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보니 그와 마찬가지로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하다못해 돌 하나라도 신작로에서 치워 놓은 일이 있었던가 하며 지난 생을 돌아봅니다. 어쩌면 일부 사람에겐 돌 하나를 주어 옆으로 치워 놓는 게 뭐 그렇게 대수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일도 생각만 하지 정작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보기 드뭅니다.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어느 날 길모퉁이에 서서 웃고 있었습니다. 길을 가던 행인이 그에게 “무엇을 보고 그렇게 웃고 있냐”며 물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저 길 한가운데 있는 저 돌이 보이시오? 내가 오늘 아침 여기 온 이후로 열 명의 사람이 그곳에 걸려 넘어졌고 그걸 불평했지요. 그러나 그들 중 아무도 다른 사람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그 돌을 치워 놓는 사람은 없더라고요.”
 
일전에 어느 연구소에서 은퇴를 앞둔 직장인들에게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설문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1위는 여행이었습니다. 누구나 이처럼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실제로 하는 취미활동은 TV 시청이었습니다. 왜 여행을 가지 않는지 물어보니 돈이 들어서 그렇답니다. 흔히 여행을 멀리 가는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사실은 집 밖에 나서기만 하면 여행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 2위는 자원봉사였습니다. 자신도 이제는 우리 사회를 위하여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은퇴한 시니어들이 실제로 봉사하는 비중은 7%에 그쳤습니다. 사람들은 가끔 이렇게 머리와 몸이 따로 움직입니다.
 
봉사하는 비율이 왜 그렇게 적은가 알아보니 자원봉사를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고 또 막상 하려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마 자원봉사를 한다면 어려운 사람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야 하는데 그런 일 하기에는 너무 힘들 것 같고,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은 또 누군가 하겠지 하는 마음에서 지나칩니다. 그러다 보니 어려운 일도 안 하고 쉬운 일도 안 하고 결국 생각에만 그치고 맙니다.
 

배가 제일 안전한 곳은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지만 그게 배가 존재하는 이유는 아니다. 사람도 그렇다. [사진 pixabay]

 
배가 제일 안전한 곳은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입니다. 그렇지만 그게 배가 존재하는 이유는 아닙니다. 배는 파도라는 위험을 무릎 쓰고 대양을 헤쳐나가기 위해 건조된 것입니다. 인간도 이 지구별에 가서 여러 가지 모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워오라고 하느님께서 삶이란 선물을 우리에게 주신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나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은 신이 주신 능력을 10%도 활용하지 못하고 죽는답니다. 모험을 너무 두려워하고 현실에만 안주하기 때문입니다.
 
전반기 생을 너무 안이하게 살았다면 남은 생은 하느님이 주신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생각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도전해보기를 권합니다. 물론 실수도 하겠지만,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많은 걸 배울 겁니다. 나 혼자 달라진다고 우리 사회가 변하겠느냐고 물을 필요는 없습니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하여 하늘에 올랐을 때 하느님의 질문에 답할 몇 가지는 지니고 있어야겠습니다. 먼저 살았던 사람이 주는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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