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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가난하지만…하루종일 웃음 넘치는 세네갈 마을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103)

직장에 다닐 때는 은퇴를 기다리다가 막상 그때가 되면 퇴직을 다시 고민합니다. 준비가 미흡한 것도 있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매월 꼬박꼬박 월급을 주는 직장에 근무하다가 전혀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는 두려움이 이처럼 누구에게나 있을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비교적 은퇴를 일찍부터 준비했다고는 하나 미지의 세계에 발을 내민다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이런 저에게 용기를 준 책이 있습니다. 단순한 삶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은 책입니다. 덕분에 소박한 생활을 하는 사례를 많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미국의 한 젊은이가 스무 살 때 아프리카 세네갈의 작은 마을에 봉사하기 위해 찾아갔습니다. 그곳엔 수도, 전기, TV, 카메라 등 문명의 이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시골이었습니다.

세네갈 어느 마을 사람들은 항상 식량이 부족했고 언제 비가 내릴지 모르는 데서 오는 근심도 있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누구보다 행복했으며 더 친밀하고 보람 있는 공동체 생활을 했다. [사진 pixabay]

세네갈 어느 마을 사람들은 항상 식량이 부족했고 언제 비가 내릴지 모르는 데서 오는 근심도 있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누구보다 행복했으며 더 친밀하고 보람 있는 공동체 생활을 했다. [사진 pixabay]

400여 명의 주민은 몇 개의 오솔길을 따라 올망졸망 모여 있는 수수한 진흙 움막에서 살았습니다. 마을을 통틀어 자동차는 한 대도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저자가 방문한 해는 7년 동안의 가뭄이 시작된 해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인생의 어떤 일도 그때의 일만큼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회상합니다.

세네갈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의 미국인들보다 유쾌하고 활발했으며 정다웠습니다. 사람들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 때나 들판에서 일할 때나 항상 웃고 노래하고 놀았습니다. 어디서나 웃음이 넘쳐흘렀습니다. 그 마을에서는 배를 잡고 웃지 않고는 15분도 견딜 수 없었다고 얘기합니다. 화나는 일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풀었고 곧 웃음이 뒤따랐습니다.

물론 세네갈 작은 마을의 생활이 좋았던 것만은 아닙니다. 마을 주민들은 영양실조와 피부병과 기타 질병으로 고생했습니다. 언젠가는 죽어가는 아기를 품에 안고 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 마을에는 항상 식량이 부족했고 언제 비가 내릴지 모르는 데서 오는 근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어려운 여건과 절망에도 불구하고 그 마을 주민들은 누구보다 행복했으며 더 친밀하고 보람 있는 공동체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세네갈에서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와 대학을 졸업합니다. 그리고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결혼해 예의 미국인처럼 풍요로운 생활을 즐깁니다. 하지만 그런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선 항상 시간에 쫓기고 바빴습니다. 10년 동안 변호사로 일하며 성공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결국 그는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 단순한 삶을 살아가기로 작정합니다.

편리함을 버리면 사람이 보인다. 물질적 안락함을 포기하면 내적인 평화를 얻는다. [사진 pxhere]

편리함을 버리면 사람이 보인다. 물질적 안락함을 포기하면 내적인 평화를 얻는다. [사진 pxhere]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이 TV에 방영되었습니다. 좀 더 쉽고 좀 더 빠르게 살기 위해 만들어진 인간의 조건들. 이를테면 휴대전화, TV, 자동차가 없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실험에 참여했던 주인공들은 자동차 없이 살면서 그동안 잊어버렸던 산책의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다. 편리함을 버리자 사람이 보였던 겁니다. 그도 그랬습니다.

물질적 안락함을 포기하자 내적인 평화가 왔습니다. 그러니까 단순한 삶은 풍요로움보다는 자유를 선택한 것입니다. 생을 살면서 느끼지만 많은 걸 동시에 얻을 순 없습니다. 어느 하나를 택하면 다른 또 하나를 포기해야 합니다. 편리함을 추구한다면 공해 속에 사는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고 좋은 환경을 원한다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이치입니다.

그는 단순한 삶을 살면서 자연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 대해 일체감을 느꼈습니다. 당연히 지구자원을 보존하는 데 관심을 가졌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쓰레기가 버려지고 있는데 어찌 보면 그 쓰레기가 우리 후손의 삶을 위태롭게 할지도 모릅니다. 더 나아가 티베트의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가 존재한다면 우리가 내다 버린 그 쓰레기 속에서 다시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지구 환경보존을 언급하다 보니 또 한 사람이 떠오릅니다. 존 로빈스입니다. 그는 세계적인 아이스크림 기업 배스킨라빈스의 유일한 상속자였으나 상속을 거부하고 환경운동가가 되었습니다. 존은 축산업의 문제점에 대해 침묵하면서 아이스크림을 통해 돈만 벌려고 하는 아버지와 결별하고 아내와 같이 캐나다 빅토리아의 외딴 지역으로 떠납니다.

그곳에서의 생활비는 1000달러 이하로 줄였다고 해요.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100만 원 남짓한 돈입니다. 사실 먹고 사는 것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곳에서 태어난 아이도 자기가 받았습니다. 그는 10년 이상을 방 하나짜리 통나무에서 칩거하며 본인의 생각을 글로 펴냅니다. 이렇게 살다 보니 당연히 아버지와의 관계는 멀어졌습니다. 심지어 아버지는 그가 미쳤다고까지 말하지요.

그러나 자식을 이기는 아버지가 어디 있나요. 결국 세월이 지나면서 뒤늦게 아버지는 자식과 화해를 합니다. 특히 임종을 앞둔 그의 어머니가 한 말이 인상 깊습니다. “얘야. 네가 물질적으로 부자라고 할 수는 없으나 사랑이 아주 많다는 건 분명하구나.” 어머니는 긴 호흡을 하고 다시 말했습니다. “사실 결국엔 그게 더 중요하지.”

얼마 전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맞물려 언론 매체에서 여러 정보를 쏟아낸 적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은퇴자금이 얼마나 필요한가 입니다. 과연 은퇴자금 얼마나 있어야 할까요? 일부 금융회사에선 7억원이 필요하다, 또는 10억원이 필요하다며 많은 사람을 주눅 들게 합니다. 왜 그렇게 목돈이 필요한가 물었더니 그 돈을 자기네 회사에 맡기면 매월 생활비에 상응하는 이자를 준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겸연쩍게 웃으며 사실은 자사 상품을 팔기 위한 공포마케팅이라고 고백합니다.

소비수준이 높다면 많은 돈이 필요하겠지만 검소한 삶을 산다면 생활비가 그리 많이 필요한 건 아닙니다. 연구기관들의 조사 결과를 보면 두 사람의 부부가 살아가는데 월 200여만 원이 필요하답니다. 그렇다면 그런 생활비가 나올 수 있도록 현금흐름을 만들어 놓으면 됩니다. 직장 생활을 정년이 될 때까지 한 사람이라면 우선 국민연금으로 그 반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집 한 채 정도는 있을 겁니다. 이 집을 통해 주택연금으로 나머지 반을 조달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정년까지 근무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직장 생활을 하며 틈틈이 개인연금을 통해 그런 틈새를 메울 수 있도록 대비하여야 합니다.

한편 돈을 모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씀씀이를 줄이는 겁니다. 남의 눈을 의식해 경조사에 지나치게 돈을 쓴다든가 기업의 광고에 휘둘려 명품 핸드백이나 외제 자동차 같은 불필요한 생필품에 큰돈을 지출한다든가 하는 소비를 자제해야 합니다. 그리고 생활비의 최저선을 낮추면 낮출수록 당신은 더 자유스러울 수 있습니다. 흔히 ‘시간은 돈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시간이 돈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돈이야 노력하면 지금이라도 벌 수 있는데 시간은 그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돈이 많은 부자가 될 것인가, 시간이 많은 부자가 될 것인가. 그것은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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