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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암 환자가 투병 의지 불태운 병원 음악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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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101)

은퇴한 어느 연주자의 일화입니다. 미국 코네티컷주의 한 병원에서 나이가 들어 소속 연주단체에서 퇴직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매주 한 번씩 자원봉사자로서 병실을 순회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병실을 돌아다니면서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출신 지역을 묻었습니다. 환자가 아일랜드라고 답하면 곧 아일랜드의 자장가와 민요를 연주했습니다. 독일인이라면 로렐라이, 한국인이라면 아리랑이 되겠지요.

각각의 환자에게 친숙한 고향의 노래를 침대 옆에서 연주해주면 환자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리운 멜로디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자신의 어린 시절 또는 젊은 시절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사람들은 머지않아 마음을 열고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많겠습니까. 아울러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적극적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를 다짐하기도 했고요.

우리 주변에 환자를 위해 음악회를 갖는 연주자나 단체가 많다. 분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조이앙상블도 그중 하나다. [사진 pixnio]

우리 주변에 환자를 위해 음악회를 갖는 연주자나 단체가 많다. 분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조이앙상블도 그중 하나다. [사진 pixnio]

일제 강점기에 동경음악대학을 졸업하고 보리피리, 나의 조국 등을 작곡하며 민족혼을 불러일으켰던 우리나라의 원로 작곡가 조념 선생님도 그런 음악가 중 한 사람입니다. 조선생님이 폐암이 심해져 폐의 기능이 40% 정도에 그치자 치료를 중단하고 호스피스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자신도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있는 말기 환자를 위하여 병실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습니다.

폐암은 숨을 쉬기가 곤란하여 여러 암중에서도 가장 고통이 심한 암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귀에 익은 음악을 환자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연주를 들은 병동의 환자들에게는 음악뿐만 아니라 그의 모습에서 큰 위안을 얻었습니다. 병원 관계자는 일그러진 얼굴로 들어왔던 환자가 하루 이틀 지나며 환한 얼굴로 변하는 모습을 보며 호스피스가 얼마나 소중한 치료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 주변에도 환자를 위해 음악회를 갖는 연주자나 단체가 있습니다. 분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조이앙상블도 그중 하나입니다. 한국조이앙상블은 해외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돌아와 대학에서 후진을 가르치고 있는 강사들이 2003년 결성한 연주단체입니다. 요즘은 코로나로 쉬고 있지만 매월 둘째 금요일 분당 서울대병원 로비에서 환자들과 그 가족을 위한 음악회를 열었습니다.

성남아트센터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아트뷰의 객원기자로 글을 쓸 때입니다. 하루는 이들을 취재하기 위해 분당 서울대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단원들은 병원 로비에서 환자를 위한 음악회를 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음악을 감상하고 있는 객석 옆에서 어느 여인이 눈물을 닦고 있는 겁니다. 이미 공연을 마친 단원 한 사람이 그를 찾아가서 무슨 일인지를 물었고 저는 그 모습을 어깨너머로 바라보았습니다.

음악회에서 연주한 음악이 환자에게 큰 위로를 주었듯 자신이 의식하지 않았던 일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사진 pixabay]

음악회에서 연주한 음악이 환자에게 큰 위로를 주었듯 자신이 의식하지 않았던 일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사진 pixabay]

음악회가 끝나고 단원들과 차를 한 잔 마시며 그때 무슨 얘기를 나누었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암이 재발이 되어 병원을 다시 찾아온 환자였다고 전합니다. 몹시 상심하여 고민하고 있던 차에 음악 소리를 듣고 잠시 고개를 돌렸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내가 앞으로 이런 음악을 듣기 어렵겠구나’하고 생각했는데 음악을 듣다 보니 ‘어떻게 해서든지 암을 극복하여 이 음악을 다시 듣도록 해야지’하는 강한 의지가 생겼답니다.

연주자들은 이 얘기를 전해 듣고 모두 표정이 환해졌습니다. 그날 이들은 의도를 했던, 의도를 하지 않았던 그에게 큰 도움을 준 셈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내가 하는 일이 이웃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망설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이렇게 우연히 한 생명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할까 말까 고민이 될 때는 적극적으로 행동에 옮기기를 권합니다.

일상생활을 하며 우리가 행한 일이 어떤 형태로든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겁니다. 이를 불가에선 업이라고 합니다. 불교 뿐만 아니라 인도 전통에선 모든 행위가 이번 생이 아니면 다음 생에서라도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고 믿습니다. 이런 업 때문에 후생에 가서 과연 어떤 결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능하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좋은 업을 쌓아야겠습니다. 그래야 자신도 기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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