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얼굴만 본다"…전주 한옥마을 3년 살아보니 뜻밖 행운 [더오래]

중앙일보

입력 2021.11.21 11:00

수정 2021.11.2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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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106)  

 
나는 관광지에 산다. 은퇴 후를 대비해 10여 년 전에 집을 사놓고 3년 전에 서울에서 이주한, 전주 한옥마을 주민이다. 내가 한옥마을에 산다고 하면 대개는 “무슨 장사 하세요?”하고 묻는다. 관광지답게 상점이 많고 여행자도 붐비지만, 나처럼 순수하게 거주목적으로 사는 주민도 있다.

 
요즘 ‘○○마을’로 소개되는 관광지가 많다. ‘마을’은 주민이 사는 곳이고, 그 생활 모습 자체가 관광 콘텐트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동네에는 유서 깊은 한옥도 있고, 신축 한옥도 있고, 우리 집처럼 생활 편의를 위해 조금씩 고쳐가며 사느라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집도 있다. 우리 집은 적당한 크기의 마당을 가진, 60년 된 한옥이다. 이런 평범한 집도 외지인에게는 볼거리가 되는지, 골목에 들어와 꽃을 배경으로 사진 찍고 때로는 담장 너머로 사적 공간을 빤히 쳐다봐 우리를 당황하게 하기도 한다. 가끔 “이런 데서 저렇게 욕심 없이 살아도 좋을 거야” 식의 이야기도 들린다. 악의 없는 말이지만, 난데없이 나의 정체성을 평가받는 건 좀 황당하다(내가 욕심이 없었나?). 아무튼 아파트가 일반화된 시대에 어린 시절 정취를 느끼는 것 같다.

 

관광지 주민으로 살다 보니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얼굴을 자주 접할 수 있어 좋다. [사진 박헌정]

 
사람들이 묻는 게 또 있다. “거기 복잡하지 않아요?” 관광지에 살기 괜찮냐는 뜻이다. 복잡하지 않을 턱이 있나. 주말, 특히 봄가을 나들이 철에는 발 디딜 틈도 없다. 코로나 이전에 그랬고, 요즘 들어 다시 그렇다. 내 생활공간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게 피곤한 일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어디다 푸념할 만큼 나쁠 것도 없다. 대로변 상점가 아닌 이상 주중에는 생활에 큰 불편 없고, 주말에는 우리도 다른 곳으로 놀러 나간다.

 
오히려 장점도 있다. 주요 관광지답게 시에서 환경에 늘 신경 쓰니 쾌적하다. 물론 시의 초점은 ‘관광환경’이겠지만, 밝은 밤거리, 곳곳의 보안카메라, 청소와 조경 같은 건 쾌적한 주거환경과도 연결된다.


 
그리고 사람들의 행복한 얼굴을 언제나 볼 수 있다. 여기에 대단한 볼거리가 있고 없고를 떠나, 가족 또는 연인끼리 찾아와 전동카트 타고 다니며 구경하고, 한복 빌려 입고 예쁜 사진 찍고, 길거리 음식 사 먹고, 웃고 즐기며 추억을 만든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그렇게 밝은 얼굴만 보며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깨닫는다.

 

[사진 박헌정]

작년 봄에는 한옥마을이 텅 비었었는데, 올가을은 코로나 이전보다 더 붐빈다. 찾는 사람이 많으면 상인들은 좋겠지만 주민 생활은 아무래도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곳 생활이 만족스럽다. [사진 박헌정]

 
물론 다녀간 사람들에게서 가끔 “한옥이 뭐 그러냐?”, “전주 음식 실망이다” 같은 반응도 나오는 것 같다. 기대보다 못했는지 서운한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하여튼 나는 여기에서 얼굴 찌푸린 사람을 별로 못 본다. 살가운 옛 정취를 기대하고 한옥마을에 왔는데 너무 상업화되었다고 느낄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만일 그런 것 없이 옛날 기와집만 빼곡히 들어차 있다면 관광지로 뜰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물론 나는 그런 모습을 기대하며 이곳에 터를 잡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무조건 상업화를 옹호하는 건 아니다. 나는 관광객이 붐빌수록 상업적 이득 대신 생활의 불편이 가중되는 주민의 한 사람이다. 과속이나 역주행하는 전통카트도 있고, 골목에는 담배꽁초가 보이고(마을 전체가 금연 구역이다), 주차된 차들 위에는 음료 컵이 몇 개씩 놓인다. 가장 힘든 건 소음이다. 놀이공원만큼은 아니겠지만 여기도 관광지라 다들 마음이 들뜨는지 기본적으로 목소리가 커지고, 가끔 괴성도 들린다. 얼마 전에는 새벽에 집 옆에서 세 사람이 취해서 오랫동안 소리치며 울고불고하길래 옷 입고 나가 여기는 주민 생활공간이라고 조심스레 이야기했더니 잠시 조용하다가 다시 시끄러워졌다. 이웃들도 밤새 잠을 설쳤을 것이다. 늦게까지 하는 거리공연도 어떤 때는 신경 쓰인다.

 
그렇지만 괜찮다. 사실 가족 단위 여행객이 많아서 그런지 대부분 점잖고, 기쁨과 함께 터져 나오는 약간의 소란 정도는 견딜 수 있다. 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관광지의 ‘번잡함’을 ‘활력’으로 치환하면 처음 반했을 때 느꼈던 매력을 고스란히 느끼며 살 수 있다. 아마 이곳 전주 생활 자체가 만족스러워서 그럴 수 있는 것 같다. 아내는 관광지에 살다 보니 늘 여행 온 기분이 든다고 하는데, 뿌리내리고 사는 주민으로서 그게 가능할까 싶지만 나쁠 것 같지는 않다. 아이들도 서울에서 가끔 내려올 때마다 아빠 집의 편안함과 여행지의 설렘을 동시에 느끼는 것 같다.

 

어느 관광지든 기대만큼 완벽하기는 힘들겠지만 불편했던 기억보다 그렇게 즐거웠던 추억을 가지고 돌아가면 좋겠다. [사진 박헌정]

 
SNS 시대에 여행지의 첫째 조건은 ‘사진 잘 나오는 곳’이다. 전주 한옥마을은 여기 부합하고, 전주는 음식이나 공연 같은 관광인프라도 좋은 곳이다. 벌써 지난달부터 위드 코로나 분위기 속에서 코로나 이전보다 손님이 더 찾아온다. 작년 봄의 썰렁하던 거리를 생각하면, 상인들과 관광객들의 밝은 모습이 보기 좋다. 예전 같으면 11월은 겨울로 접어드는 무거운 시기인데, 이제 반대로 긴 겨울이 지나고 새 생명이 솟는 봄처럼 느껴진다. 이대로 손님이 많이 와서 활력 넘친다면 대환영이다. 그리고 가뜩이나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 시절인데, 모처럼 시간 내서 즐거운 추억 만들려고 왔으니 기대보다 다소 부족하고 섭섭한 게 있었어도 행복한 기억만 가지고 돌아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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