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스마트폰 단어 검색보다 더 쓸모 있는 낡은 영어사전

중앙일보

입력 2021.11.07 11:00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105) 

오래전 책을 다시 꺼내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사 때마다 버릴까 말까 망설이다가 ‘언제 한번 읽어야지’하며 다시 집어넣던 30~40년 전 책들. 종이는 누렇다 못해 검게 변했고…. 이미 시대와 맞지 않거나, 여전히 중요한 고전이라도 새로 번역되거나 보완된 책에 비할 수 없다. 책 욕심도 점점 없어져, 다음번에 정리할 때는 웬만한 것은 치우려고 한다.

그런데 요즘 다시 꺼내서 보는 책이 있다. 오래된 범우사 영어사전이다. 뒤늦게 대학원에 입학해 영어 원서를 보느라고 고생 중인데, 모르는 단어는 물론이고, 알던 단어도 도저히 감 잡지 못할 때가 잦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보면 대표적인 뜻 몇 개만 나와 갑갑한데, 그럴 때는 구관이 명관이라고, 두툼한 종이사전을 펴야 ‘이런 뜻도 있었네’ 하며 문맥에 맞는 뜻을 발견한다. 물론 ‘homepage’, ‘metaverse’ 같은 단어는 없지만, 공부에 필요한 단어는 다 나온다. 한번은 ‘cover’의 의미 가운데 12번째로 나온 ‘보도하다’를 발견하고 퍼즐 조각처럼 끼워보니 아무리 쳐다봐도 난해하던 문장이 술술 풀려 전체 번역문이 완성되었다.

35년 전 아버지 직장 상사께서 선물해주셨던 영어사전. [사진 박헌정]

35년 전 아버지 직장 상사께서 선물해주셨던 영어사전. [사진 박헌정]

이 사전은 35년 되었다. 대학에 입학하던 해 아버지가 서울시에 근무했는데, 당시 염보현 시장이 대학생이 된 직원 자녀들한테 한 권씩 선물한 것이다. 참 고마운 선물이었다. 그때만 해도 사전은 큰돈 드는 책이었고, 형제 많은 집에서도 1인 1권씩 필요했다. 이전 세대는 술 마시고 돈 없으면 손목시계 다음으로 많이 맡긴 게 영어사전이라고 했다.

다시 영어공부를 시작하게 될 줄 몰랐다. 어릴 때부터 영어를 접한 세대와 달리 50대 이상은 영어에 대한 부담이 크다. 그토록 많은 시간을 투자했건만 좀처럼 다가오지는 않고, 오히려 평가 수단이 되어 사람을 옥죄기도 하는 까칠한 친구다. 그러니 영어 덕분에 평생 여유롭게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영어에 주눅 들고 때로는 한까지 맺힌 사람이 훨씬 많다.

핑계 같지만, 영어를 배울 여건이 되지 않았다. 학교 영어 선생님을 봐도 ‘정말 미국인과 대화할 수 있나’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대학 때에도 마찬가지라 학원비는 비쌌고, 인터넷도 없고, 심지어 서양사람 보기도 힘들었다. 할부로 산 회화 테이프를 워크맨에 넣고 늘어지도록 듣는 게 전부였다. 어문학과를 나와도 그 나라 말 한마디 못 하는 사람이 꽤 되었고, 그래도 ‘대졸 사원’으로 어딘가에 취업은 되던 시대였다. 입사시험에 대비해 토플이나 ‘Vocabulary 22000’을 붙잡고 단어와 문법 실력을 키워놓은 게 그나마 우리 세대로서는 최선이었다.

나 역시 고등학교 때 단어만 열심히 외워 학력고사 영어시험을 ‘선방’해 국문과에 입학했고, 대기업 홍보실에 입사한 후에는 드디어 영어 부담에서 해방된 줄 알았다. 그런데 사회에 나와도 영어가 필요성 여부를 떠나 사람을 평가하고 등급 매기는 수단으로 쓰이는 것은 학교 때와 똑같았다.

아버지 직장의 상사께서 주신 영어사전을 몇십 년 만에 다시 꺼내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표지 책 제목에 ‘current’라고 적혀 있지만 ‘homepage’ 같은 단어는 나올 리 없다.

아버지 직장의 상사께서 주신 영어사전을 몇십 년 만에 다시 꺼내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표지 책 제목에 ‘current’라고 적혀 있지만 ‘homepage’ 같은 단어는 나올 리 없다.

매년 보는 회사 영어시험에서 60점 이하면 대리 진급이 힘들다고 하는데, 늘 턱걸이로 60점대였다. 그러니 ‘세계화 시대에 이래서야 어디…’ 하는 고민을 했고, 게다가 첫 직장의 첫출발이 뭔가 기대만큼 근사한 것 같지도 않아, 사표 던지고 재형저축을 깨 뉴욕에 가서 1년 지냈다. 과연 시간과 돈의 투자는 어느 정도 효과를 가져와 영어는 꽤 발전했고, 국제업무가 많은 회사에 입사할 때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회사에서 토익점수에 따라 수당을 준다고 해 자신만만하게 치러봤더니, 비참한 점수가 나왔다. 외국인과 말할 때는 잘 통하는데, 토익시험은 뭔 말이 후루룩 지나가니 속수무책이었다. 학원에 한 달 다닌 후 다시 봐서 800점대는 받았지만, 더 이상의 도전은 포기했다. 이미 안정된 직장에 몸담았고 해외 업무도 거의 없는 부서라 돈 몇 푼에 일요일(시험일) 늦잠을 포기하기 싫었다.

그러니 토익 도전을 포기한 그 시점부터 지금까지 영어는 꾸준히 퇴보해, 결국 태국 같은 곳에서 새우 볶음밥이나 사 먹는 정도 수준에 이르고서야 다시 영어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처음에는 걱정되고 심란했다. 사실 서양 역사를 전공하려면 영어 독해력이 필수라는 것도 미리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도 듣고 말하기가 아니라 독해와 번역이라 그럭저럭 따라가는 중이다. 처음에는 꽤 힘들었지만, 한두 달 지나자 옛날에 배운 문형과 문법이 차츰 기억난다. 외국어는 안 하면 녹슨다고 하는데, 뭔들 안 그럴까. 눈을 통해 머리로 들어갔으면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어느 상황에선가 조금씩 나오지 않을까 싶다. 물론 진작에 축적한 양이 얼마 되지 않는 건 아쉽다.

노곤한 오후 시간에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씩 마시곤 하는데, 그때마다 책과 사전을 가지고 나가 한 시간 정도씩 뒤적이곤 한다. 다들 노트북이나 패드 같은 걸 펴놓고 있는데 나만 두툼한 사전 꺼내놓고 돋보기 쓴 채 들여다보고 있자면, 주변 화면과는 많이 동떨어진 것 같긴 하다. 그렇지만 이런 아날로그 방식도 꽤 괜찮다.

지금부터 영어를 공부해 큰 발전이 있을까만, 도전할 목표가 생기는 건 반가운 부담감이다. 머리 써서 집중하는 자체가 즐겁고, ‘지금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걸 내가 먼저 읽고 있는 거지’ 하는 뿌듯함도 있다. 역시 공부도 원초적 놀기의 중요한 부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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