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찐프로' 드물고 '자칭 프로' 흔한 댄스스포츠계

중앙일보

입력 2021.11.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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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강신영의 쉘 위 댄스(68)  

우리나라에서 댄스스포츠가 대학교에 정식 학과가 생겼고 전국체전 종목에도 들어가는 등 지위가 격상되고 인식도 좋아져서 여건도 향상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자리를 잡았다고 얘기하기는 미흡한 점이 많다.
 
우선 댄스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대체로 어둡다. 그간 댄스에 대한 편견과 어두운 역사 때문에 그럴 것이다. 부부 간에도 한 사람이 댄스스포츠를 배운다고 할 때 배우자가 허락하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몰래 배우는 사람이 많다. 배우는 사실을 숨기는 경우도 있고 댄스 배운다는 말을 먼저 하지는 않는다는 정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댄스화나 댄스복까지 눈에 띄지 않아야 하므로 고충이 많다.
 

여러 조건이 맞아 댄스에 물이 올라도 수많은 애로사항에 부딪힌다. 댄스계 인프라 구축이 덜 되어 관행적으로도, 실무적으로도, 법적으로도 미흡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사진 pxhere]

 
댄스를 배우는 사람 중에는 사회 지도층인 교수도 있고 의사도 있다. 그런데도 단체 사진이라도 찍으려 하면 숨는 사람이 있다. 같이 배우는 사람끼리는 충분히 댄스스포츠가 건전하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므로 알려지게 되면 구설에 휘말리기 싫다는 것이다.
 
댄스스포츠는 남녀가 같이 추는 커플 댄스이기 때문에 남녀의 성비가 맞아야 하는 것도 걸림돌이다. 일단 여성은 육아 때문에 자녀가 어느 정도 장성하기까지는 취미 생활을 하러 밖으로 나오기가 어렵다. 50세 이후에나 그나마 여건도 되고 시간이 난다. 또, 가족들 저녁 식사 준비를 해야 하므로 낮에 주로 활동하고 저녁 무렵에는 귀가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남자는 댄스 쪽에 그리 큰 관심이 없다. 댄스를 배운다 하더라도 직업이 없는 사람이 아니고는 낮에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낮에는 남자가 모자라고 저녁 시간에는 여자가 모자랄 수밖에 없다.


배우고 나서도 혼자서는 남들 앞에서 댄스를 보여줄 수 없는 것도 난점이다. 파트너가 있어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데, 일단 댄스스포츠를 배웠다고 하면 “춤 좀 춰보라”며 부추긴다.
 
요즘처럼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 상황에서는 댄스 배우기가 더욱 어렵다. 대면을 금하고 있는 형편에 마스크를 쓴다고 해도 맞잡고 춤을 출 수가 없다. 백신이 상용화해 코로나 사태를 잠재우기 전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파트너와 손을 맞잡아야 하고 마주 보고 춤을 춰야 하는데 코로나 사태로 가장 타격이 심한 분야 중 하나가 댄스 분야일 것이다. 댄스 파티를 연다고 해도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참석하기 꺼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연중 열리던 댄스경기대회도 모두 취소되어 기량을 겨룰 기회도 없어지고 댄스 자체에 대한 붐도 갑자기 식었다.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 한창 댄스에 물이 올랐을 때도 여러 가지 애로사항에 부딪힌다. 아직 댄스계 인프라 구축이 덜 되어 미흡한 부분도 많다. 관행적으로도, 실무적으로도, 법적으로도 답답한 구석이 많다.
 
댄스계가 발전하려면 관련 업종이 많고 사업도 잘돼야 한다. 요즘 인기가 치솟고 있는 당구계를 보면 당구와 관련 없는 금융계, 생활용품 회사는 물론 당구 관련 업종이 스폰서로 거액의 상금을 걸고 연중 대회를 치른다. 댄스스포츠도 그래야 하는데 댄스와 관련 없는 회사의 금전적 후원을 받아내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회사 내부에서도 댄스 대회에 스폰서로 참가하자고 결재를 올리면 상사가 댄스계를 이해하고 받아줄지도 의문인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댄스계 스폰서라고 해봐야 몇몇 댄스복, 댄스화 제작 및 판매 업체, 그리고 영세한 댄스 학원이 고작이다. 그러니 대회 개최 자체가 어려운 것이다.
 

프로는 그야말로 춤추는 것이 직업인 사람을 말하지만, 현재 댄스 프로의 문턱은 무딘 편이다. 우리나라 프로는 댄스 경기 대회 프로 부문에서 뛰기만 하면 자칭 프로가 되는데 아무런 제지가 없는 것이다. [사진 pxhere]

 
댄스파티를 하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하다. 100여명 이상의 인원이 모이는 장소를 빌리는 데만 해도 큰돈이 들어간다. 흔히 호텔 볼룸을 빌려서 카펫 위에 조립식 마루를 깔아야 한다. 마루를 까는 비용은 추가비용이다. 호텔 볼룸의 이용요금은 참석자 식사비용과 음향, 조명 등 부대비용까지다. 운영 요원에게 교통비라도 지급해야 한다. 여기서 대회를 한다면 선수는 참가비용을 내기는 하지만, 상금과 심사위원 수고료 등을 지출해야 한다. 그러므로 큰돈이 들어간다.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큰손 스폰서가 없는 한 참석자가 돈을 낼 수밖에 없다. 참석자가 스스로 자리를 채워주면 좋지만, 그렇게 되기 어려우므로 강제성을 띄기 마련이다. 지인들에게 테이블당으로 떼어 넘기는 수밖에 없다. 회원이 많으면 회비로 충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모임은 많지 않다. 그러므로 매번 티켓을 파느라고 고생을 많이 한다. 단체명을 걸고 하는 대회라면 강제로 자리를 떠맡겼을 때 참사 선수의 성적 순위 등 보이지 않는 보상이 가게 마련이다. 호텔에서 요구하는 메뉴는 대부분 비프스테이크다. 가격이 10만원 내외다. 호텔에서 하는 행사는 두 개의 대회를 겹쳐 시행하는 등, 어차피 장소를 빌리는 것은 온종일이므로 편법으로 무리하게 행사를 진행하게 된다.
 
물론 대부분의 댄스파티는 자체 학원에서 한다. 그럴 때는 비용이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일년에 한두 번은 멋진 장소에서 댄스파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원래 댄스스포츠는 볼룸댄스라 해 호텔 볼룸에서 하는 것이 정석이다. 분위기라는 것을 무시 못 한다. 그런 데서 해보면 안다.
 
다음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프로의 문턱이 너무 낮다는 점이다. 프로는 그야말로 춤추는 것이 직업인 사람을 말한다. 따라서 기량도 그에 걸맞게 잘 춰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프로는 댄스 경기 대회 프로 부문에서 뛰기만 하면 자칭 프로가 된다. 아무런 제지가 없다. 물론 기량이 안 되는 사람이 프로 부문에서 경합한다면 성적은 형편없을 것이다. 이런 사람을 위해 편법으로 프로암, 프로 A, 프로 골드 등 별도의 부문을 만들기도 한다. 프로 부문 아래에는 성인의 경우 아마추어, 일반부, 장년부, 대학부, 등이 있다. 아마추어 부문은 스탠더드, 라틴 공히 5종목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나머지는 단 종목, 2종목, 3종목, 4종목 등으로 세분해 출전할 수 있다. 그러므로 5종목을 할 줄 알면 프로 부문에서 뛸 수 있다. 그러나 댄스계에서 서로 잘 알고 있는데 갑자기 프로 부문에 이름을 들이댄다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편법으로 프로 A, 프로 골드 등으로 부문을 더 만들어 운영하는 대회도 있다. 진정한 프로는 프로 부문에서 뛰게 하고 그 기량에 못 미치는 사람을 위해 새로 준프로 부문을 신설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프로 부문에서 뛰고 싶어 하는 이유는 호칭 때문이다. ‘~프로’ 소리를 들어야 개인 교습이나 그 계통에서 대우를 받는 풍토 때문이다. 골프연습장에서 초보자에게 골프를 가르치는 사람들도 호칭은 ‘~프로’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모두 프로 자격시험을 보고 합격한 사람들은 아니다.
 
댄스 학원 운영의 법적인 문제도 있다. 댄스스포츠학원은 건전학원으로 인정받고는 있지만, 막상 학원을 운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법적으로 상당히 고역을 겪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댄스스포츠를 주로 가르치는 댄스 학원인데도 ‘동호회 연습장’, ‘에어로빅’ 등 간판을 내걸고 있는 이유는 풍속법, 청소년 보호법, 건축법 등 관련 법규가 명확히 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법적으로는 상업지구에 학원이 들어서야 하고 그러자면 제약조건이 많다. 정작 청소년이 참가하는 댄스 대회도 있고 학교에서도 장려하고 있는데 댄스학원에서는 배우기 어렵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일단 민원이 들어가면 경찰에 불려가서 댄스스포츠 학원은 건전학원이라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 진땀을 빼야 한다. 건축주도 그런 일 때문에 골치 아픈 업종이라고 생각되면 재계약 자체를 꺼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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