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수성 근위축증(Spinal Muscular Atrophy, SMA)이라는 질병이 있습니다. 신생아 1만 명당 1명꼴로 발생하는 희귀한, 그리고 치명적인 병입니다. 이 병을 앓는 아동은 대부분 2세 이전에 사망하고, 생존하더라도 평생 호흡 보조장치를 차야 합니다. 대대로 유전되는 집안 내력 유전병 같은 건 아니고, 우연히 해당 유전자를 가진 평범한 부부가 만나 아이를 가지면 나올 수 있는, 재난에 가까운 질병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수장이시니 국내에 200명 정도의 생존자가 있다는 걸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이 병은 치료가 불가능했습니다. 다행히 '스핀라자'라는 약이 나와, 첫해에는 주사를 6번, 다음 해부터는 연간 4번씩만 맞으면 환자들 증상이 무척이나 좋아질 수 있었습니다. 걷지 못하던 환자가 걸을 수 있게 됐고, 스스로 호흡을 못 해 호흡 보조장치를 차야 하던 환자들이 스스로 숨을 쉴 수 있게 됐습니다. 물론 이같은 기적에는 대가가 따랐습니다. 주사 1번 맞는데 1억 원이 들거든요. 환자 한 명당 매년 4억 원이란 돈을 내야 합니다. 보험적용을 해주지 않다 최근에야 건강보험 적용을 해줬습니다. 치료법이 없으면 몰라도, 치료법이 있는데도 돈이 없어 자녀를 떠나보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최근까지 이어진 것이죠.
그런데 정작 제가 의문이 가는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희귀난치병 아동들에게 쓰는 돈이 아까워 희귀병 치료제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을 두 차례나 거부했던 건강보험 공단에서 어째서 한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엔 1500억 원이란 큰돈을 쓰기로 했을까요?
文 캠프 출신 한의협회장 1500억 타내
건강보험공단에서는 2020년부터 첩약에 보험을 적용해주는 시범사업을 시작합니다. 규모는 약 1500억원.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속 생명을 담보로 한 게임을 서너 번 개최할 수 있는 큰돈이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공교롭게도 최혁용 회장이 한의사협회장에 당선된 뒤 한의계 숙원 사업들이 복지부와 건보공단의 문턱을 쉽게 넘기 시작했습니다. 물리치료 요법인 추나요법이 2019년부터 건강보험 적용을 받기 시작했고, 덕분에 매달 100억원가량의 건강보험 재정이 한의원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교통사고 후 한의원에만 들어가면 최대한의 보상이 나온다는 자동차보험 금액은 뺀 수치입니다.
국회에서 관련 사업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자, 김 이사장님은 “첩약 급여화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결정사항이고, 건보공단은 이 결정의 한 참여자일 뿐이다. 이 문제를 다시 이야기하려면 건정심이 재결정해야 하는 난점이 있다”는 답변을 내놓셨습니다. 위원회 결정 사항이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는 주장인데, 이 정부 최고 실세 그룹인 참여연대 출신이자 노무현 정부 청와대 사회수석, 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까지 지내신 분이 그런 결정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게 잘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건보공단 역사상 최초로 연임에 성공한 이사장이 정말 그렇게 힘없는 자리인가요?
문 케어 지출 증가로 희귀질환·신약 지원 한계
김용익 이사장님. 보험의 기본 원리는 드물게 일어나는 재난을 보험 가입자들이 같이 나눠서 짊어지기 위함입니다. 당장 나는 아니더라도, 내가 그런 일을 겪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기에 사회적 연대를 발휘하여 위험을 분산시키는 것이지요. 10개월의 기다림 끝에 태어난 내 아이가 1만 명당 1명꼴로 나타나는 희귀질환을 갖고 태어난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은 거기에 해당하지 않습니까? 20억 원만 있으면 아이를 살릴 수 있는데, 그 돈이 없는 사람들은 아이를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선 캠프 보은용 한방 진료비만 아껴도 연간 27명의 난치병 아이를 고칠 돈은 충분히 쓸 수 있습니다. 문재인 케어 성공을 위해 낭비한 예산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디 보험의 원리 그대로 재난에 부딪힌 이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