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현지시간) 독일 연방 선거관리위원회는 전날 치러진 총선에서 299개 선거구 개표 결과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사민당)이 25.7%를 득표해 1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메르켈 총리의 기민·기사련(24.1%)을 1.6%포인트 차로 제친 신승이다. 녹색당이 3위(14.8%)에 올랐고, 자유민주당(자민당, 11.5%), 독일을위한대안(AfD, 10.3%), 좌파당(4.9%)이 뒤를 이었다.
선거보다 더 복잡한 합종연횡, ‘연정’이 관건
사민당이 총선 승리로 얻은 건 ‘연정 구성 우선권’이다. 올라프 숄츠(63) 사민당 총리 후보는 총선 결과가 나온 직후 독일 ZDF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유권자의 선택은 명백하다. 독일을 위해 훌륭하고 유능한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사민당에게 부여된 임무”라면서 연정 협상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기민·기사 연합의 아르민 라셰트(60) 총리 후보 역시 “연정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나섰다. 사민당이 1당 자격으로 먼저 연정 협상을 주도하다 실패할 경우, 2위인 기민·기사련이 연정 구성 권한을 넘겨받는다. 일단 양측 모두 늦어도 크리스마스 전까진 연정 협상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이다.
AP통신, 도이치벨레 등에 따르면 두 당의 구애 대상은 동일하다. 기후변화를 주요 의제로 내건 녹색당, 친 기업 성향의 자민당이다. 전통적으로 녹색당은 사민당과, 자민당은 기민·기사 연합과 협력해왔지만 이들 모두 이번 연정 국면에서는 어느 당이든 협상하겠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정당의 상징 색깔에 따라 사민당(빨강)과 녹색당(초록)·자민당(노랑)의 연정이 성사되면 ‘신호등 연정’, 기민련(검정)과 녹색당·자민당이 손을 잡으면 자메이카 국기색을 빗댄 ‘자메이카 연정’이 이뤄진다. 독일 전후 역사상 정당 3곳의 연정을 추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능성은 낮지만 사민당과 기민련이 손을 잡는 대연정도 가능하다. 대연정은 402석, 신호등 연정은 416석, 자메이카 연정은 406석으로, 어떤 조합이든 전체 의석(735석)의 과반을 채울 수 있다. 현재로서는 ‘신호등 연정’과 ‘올라프 숄츠의 차기 총리 등극’이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다.
좌파 정당의 정권 탈환, 독일 좌경화되나
전문가들은 특히 지난 총선 대비 51석을 추가하는 등 역대 최다 의석(118석)에 최고 득표율을 올린 녹색당이 연정에 든다면 기후 변화 대응 정책이 가속화될 것으로 봤다. 녹색당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수준 대비 70% 줄이는 목표를 제시해 현 독일 정부의 목표(65%)보다 높게 잡았다. 또 현 정부는 2038년까지 석탄발전소 가동 중단을 계획했지만 녹색당은 2030년 이전까지 이를 마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카르스텐 브르제스키 ING 거시연구 글로벌부문장은 “녹색과 진보 진영의 연정으로 독일 정부 사상 가장 새로운 혁신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증세 기조의 확대 재정 속에 부채 증가 문제가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게 시장의 우려다.
'엄마 총리' 다음은 '로봇'…사민당 일등공신 숄츠
숄츠는 사민당 출신이지만 당 내에서도 중도에 가까운 인물로 꼽힌다. ‘기계’ ‘로봇’이라는 별명으로 불릴만큼 무뚝뚝하고 재미없다는 평이 많지만 동시에 성실한 재정관리자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메르켈 정부에 대연정으로 참여해 재정 긴축을 옹호했다. 사민당 총리 후보로 선거를 치르면서 자신이 집권하면 메르켈 정부가 유럽 재정위기 당시 도입했던 정부 지출 제한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숄츠는 지난해 세계 최저법인세 도입을 주장하면서 국제적인 이목을 끌었고 코로나19 이후 긴급 구호 프로그램을 이끌면서 내부적으로 좋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라이벌 정당이지만 국민적 신뢰가 두터운 메르켈 총리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그의 후계자를 자처했다.
애초 메르켈 후임으로 주목 받았던 기민련의 아르민 라셰트 총리 후보는 지난 7월 독일 서부 대홍수 현장에서 다른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모습이 언론에 실리면서 지지율이 급락했다. 지난 4월 30% 초반대였지만 이달까지 10% 안팎으로 쪼그라들었고 정당 지지율도 동반하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