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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 후계자는 라이벌 당에서?…초박빙 독일 총선 스타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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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 은퇴를 선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정계 은퇴를 선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16년의 집권을 마치고 정계 은퇴를 앞둔 앙겔라 메르켈(67) 독일 총리의 후계자를 정하는 독일 총선이 26일(현지시간) 시작됐다. 조용한 은퇴를 준비 중이던 메르켈은 사회민주당(사민당)의 약진으로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아지자 막판 선거운동에 직접 나서며 보수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사민당 VS 기민·기사연합, 오차범위 내 초박빙

AP통신·로이터통신·워싱턴포스트(WP)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독일 연방하원 총선 투표가 이날 오전 8시(한국시간 오후 3시) 전국 299개 선거구에서 시작됐다. 독일은 의원내각제 국가여서 연방하원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정권을 잡는다. 총선을 앞두고 실시한 최종 여론 조사에서는 중도좌파 성향의 사민당이 보수당인 기독교민주당(기민당)·기독교사회당(기사당) 연합을 근소한 차이로 앞섰다. 메르켈 총리는 기민·기사 연합 소속이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 2005년 독일 역사상 첫 여성, 동독 출신 총리로 선출된 뒤 2009년, 2013년 2017년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네 차례 연임했다. 2018년 말 메르켈이 차기 총선 불출마 및 정계 은퇴를 선언하면서, 이번 선거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역사상 처음으로 현직 총리가 출마하지 않은 선거가 됐다.

퇴임을 준비하며 선거와 일정한 거리를 둬왔던 메르켈이 막판 구원투수로 등반한 건 최종 여론조사 결과 때문이다. 지난 21일 여론조사기관 포르사에 따르면 사민당 지지율이 25%로 1위, 기민·기사 연합은 22%로 오차범위 내 2위다. 이어 녹색당 17%, 자유민주당(FDP·자민당) 11% 순으로 나타났다. 선거 결과가 이대로 나타나면 메르켈은 ‘가장 인기있는 총리’이자 ‘16년 만에 정권을 내놓은 총리’로 퇴임하게 된다.

메르켈은 선거 하루 전인 25일 기민·기사 연합의 총리후보인 아르민 라셰트(60) 기민당 대표의 지역구인 아헨을 찾아가 “이번 총선은 여러분과 여러분 자녀, 부모의 미래에 대한 선거”라면서 “독일의 미래를 위해 보수연합에 한 표를 행사해달라”고 호소했다. 전날에는 독일 우파진영의 본산인 뮌헨을 찾아 보수성향 유권자의 표심을 집중 공략했다.

2005년 총선에서 승리해 독일 첫 여성 총리가 된 앙겔라 메르켈(오른쪽). [중앙포토]

2005년 총선에서 승리해 독일 첫 여성 총리가 된 앙겔라 메르켈(오른쪽). [중앙포토]

메르켈 후광효과, 라이벌 사민당이 챙겨 

당초 독일 총선은 현직 총리이자 독일에서 가장 인기있는 지도자인 메르켈에 대한 높은 지지도에 힘입어 기민·기사 연합의 압승이 예고됐다. 선거 초반에는 기민·기사 연합이 사민당과 20%포인트 이상 격차를 벌이며 멀찍이 앞서갔다.

하지만 메르켈의 후광 효과는 라이벌인 사민당이 챙겨 갔다. 메르켈 총리의 연립 내각에서 재무장관과 부총리를 지낸 올라프 숄츠(63)를 앞세워 ‘메르켈의 후계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노동법 전문 변호사 출신인 숄츠는 평소 로봇처럼 무뚝뚝한 편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이며 독일 국민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사민당의 한 의원은 WP에 “숄츠는 합리적이고 안정적이고, 따분하다”면서 “이런 점이 메르켈과 매우 비슷한 느낌을 준다”고 평가했다.

사민당의 총리 후보 올라프 숄츠. 메르켈 연립 내각에서 재무장관과 부총리를 지내 라이벌 정당임에도 '메르켈 후계자' 이미지를 쌓았다. 연합뉴스

사민당의 총리 후보 올라프 숄츠. 메르켈 연립 내각에서 재무장관과 부총리를 지내 라이벌 정당임에도 '메르켈 후계자' 이미지를 쌓았다. 연합뉴스

반면 메르켈의 실제 후계자인 라셰트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라셰트는 총리 후보로 지명될 당시부터 기사당 대표인 마르쿠스 죄더에게 지지도가 한참 밀리는 약체 후보로 꼽혔다. 코로나19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기후위기에도 미온적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 특히 지난 7월 140여 명이 목숨을 잃은 독일 역대 최악의 홍수 피해 현장을 찾아가 동료들과 농담하다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이 보도된 것이 지지율 하락의 결정타였다. 당시 독일 언론은 “온 나라가 우는데 라셰트만 웃었다”고 비판했고, 피해 지역 주민은 “역겹다”며 분노했다.

아르민 라셰트 기독민주당 대표가 지난 17일 홍수 피해 지역을 방문했다가 웃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돼 구설에 올랐다. [AFP]

아르민 라셰트 기독민주당 대표가 지난 17일 홍수 피해 지역을 방문했다가 웃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돼 구설에 올랐다. [AFP]

16년만의 세대교체…40% 부동층이 관건

AP통신은 사민당과 기민·기사 연합 중 어떤 당이 승리하더라도 좌파 성향의 녹색당, 친 기업적인 자민당과 연정을 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차기 정부에서 녹색당의 총리 후보인 안나레나 배어보크(40)가 핵심 부처 장관을 맡을 확률이 높고, 독일은 지금보다 강력한 친환경 정책정책을 밀고 나갈 것으로 예상했다.

독일 총선 출마자들의 포스터. 왼쪽부터 독일 녹색당 총리 후보 안나 배어보크, 사민당의 올라프 숄츠, 기민·기사연합의 아르민 라셰트. 연합뉴스

독일 총선 출마자들의 포스터. 왼쪽부터 독일 녹색당 총리 후보 안나 배어보크, 사민당의 올라프 숄츠, 기민·기사연합의 아르민 라셰트. 연합뉴스

초박빙 접전에다 부동층도 두터워 선거 결과는 여론조사와 다를 거란 예상도 나온다. 알렌스바흐 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투표 2주 전까지 독일 유권자의 40%가 지지할 정당을 선택하지 못했다. 데이비드 빌프라는 한 시민은 WP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선거는 한 사람이 집권한지 16년 만의 세대교체”라며 “그 이유만으로도 독일인들은 어떤 후보를 지지해야하는지 확신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태”라고 말했다. 포츠담의 비즈니스 컨설턴트인 마이클 쇤헤르(42)는 “이번 선거의 후보자들은 국가보다 자기 자신에 몰두하고 있다”며 “최적의 후보를 뽑는 선거가 아니기 때문에 유권자들이 더욱 결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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