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150만원 회원제 콘도, 에어비앤비서 40만원 팔린다

중앙일보

입력 2021.05.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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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제 고급 리조트가 공유 숙박 업체 ‘에어비앤비’에서 저렴한 가격에 팔리고 있다. 회원권을 소유한 회원이 돈을 받고 방을 빌려주는 편법 행위다. 사진 에어비앤비 캡처

신혼여행을 준비하던 30대 K씨. 제주도 리조트 중에서도 별채로 운영하는 호화 객실을 예약하려다 급히 일정을 취소했다. 리조트 공식 사이트에서 1박 150만 원대에 팔리는 객실이 공유 숙박 사이트 에어비앤비에 40만 원대에 올라와 있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회사원 L씨도 에어비엔비를 둘러보다 눈을 의심했다. 부산의 B회원제 리조트 객실이 상품으로 나와 있었다. 하룻밤 46만원이면 150㎡(45평)짜리 객실에 머물 수 있다고 안내돼 있었다. B리조트는 회원이 아니면 객실을 이용할 수 없다. 따라서 비회원 객실 요금 자체가 없다.

 
두 리조트만이 아니다. 19일 오후 8시 관광객이 몰리는 제주도·강원도·부산·경주 지역의 숙소를 에어비앤비에서 검색한 결과, 개인 호스트가 판매하는 특급호텔이나 회원제 리조트 객실이 10개가 넘었다. 가격은 모두 덤핑 수준이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법적으로 문제는 없을까.  
 

슈퍼 호스트의 수상한 방 장사

에어비앤비에 올라온 A콘도는 고급 별장으로 이름난 곳이다. 최대 350㎡(약 105평) 규모 독채를 30개 이상 보유하고 있다. 분양가는 10억 원 이상이다. 피트니스와 수영장, 스크린 골프, 라운지 모두 입주민 전용이다. 최근 일부 독채를 재단장하면서 일반 투숙객도 이용할 수 있게 됐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다. 1박 패키지가 150만원 대에 이른다. 에어비앤비에선 숙박료가 3분의 1 이하 가격에 올라와 있다.

회원제 리조트는 일반인이 이용하기 쉽지 않은 호화 시설을 자랑한다. 사진 픽사베이

A콘도 객실을 에어비앤비에 내놓은 판매자는 365일 객실을 이용할 수 있는 회원권 소유자라는 게 A콘도 측 설명이다. 이 판매자는 에어비앤비에서 ‘슈퍼 호스트’ 등급을 달고 있다. 슈퍼 호스트가 되는 조건은 퍽 까다롭다. ‘숙박 10건 이상 호스팅’ ‘응답률 90% 유지’ ‘예약 취소율 1%’ ‘평점 4.8점 이상 유지’ 등의 조건을 갖춰야 한다. 고급 콘도 회원이 오랜 기간 작정하고 방 장사를 해왔다는 뜻이다.
 

회원이라고 주저하는 리조트 

콘도 회원의 객실 재판매는 리조트 입장에서 여러모로 골칫거리다. 유통 질서가 교란되는 데다 다른 회원의 항의도 뒤따르기 때문이다. 회원만을 위한 고가의 독립 시설에 외부인이 출입하는 게 달가울 리 없다. 조치도 쉽지 않다. A콘도 관계자는 “객실 임대가 불가능하다는 약관이 엄연히 존재한다”면서도 “몰래 방을 판매하는 사람도 고액의 분양권을 가진 고객이어서 강력히 제재하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1박 40만 원대에 팔리고 있는 부산의 B리조트 역시 회원제 콘도미니엄이다. 회원 전용 시설이어서 회원이 아니면 묵을 수 없다. 회원권 소유자에 한해 연간 약 30박 이용이 가능하다. 최고급 시설이어서 회원도 1박에 30만원 정도 이용료를 내야 한다. B리조트 회원 약관에는 회원이 몰래 객실을 팔다가 적발될 경우, 회원 자격을 3개월간 정지한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B리조트 관계자는 “자체 규정일 뿐, 법적인 제재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취재 들어가자 주의 공문 보낸 서귀포시

강원도 강릉의 회원형 호텔 객실도 일반인 호스트가 에어비앤비에서 판매하고 있다. 사진 에어비앤비 캡처

현행법상 숙박 영업을 하려면 관광숙박업이나 휴양펜션업, 농어촌민박업, 외국인 관광 도시민박업으로 등록해야 한다. 도시민박업으로 등록하고 내국인을 받거나, 업무용 오피스텔을 돈 받고 빌려주는 행위는 엄연한 불법이다. 일반인이 리조트나 호텔 객실을 재판매하는 경우는 아직 단속 사례가 없다. 위법 여부에 대한 논의도 명쾌히 정리된 게 없다. 
 
우선 지자체 입장을 들었다. 제주도 서귀포시 관광진흥과 장충성 주무관은 “일부 회원이 벌이는 객실 재판매에 대해 이번에 알게 됐다”고 인정하면서 “리조트 차원에서 신고가 들어온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취재가 시작되자 서귀포시는 지난 21일 지역 32곳의 콘도미니엄에 공문을 보냈다. 위법 소지가 있는 판매 사례가 있으니 주의해달라는 내용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위법 소지가 높다는 입장이다. 문체부 임성환 관광산업정책과장은 “세무서나 지자체에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은 사람이 리조트 객실을 판다면 위법으로 볼 수 있다”며 “에어비앤비를 비롯한 온라인여행 플랫폼에 무허가 호스트를 걸러내도록 권고했지만, 국내법을 적용받지 않는 외국 사업자라는 이유로 시정을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 사업자 핑계 대는 문체부 

대표적인 공유 숙박 플랫폼인 에어비앤비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빈 방을 공유하는 '공유 경제' 모델로 출발했다. 요즘은 민박, 펜션, 호텔 등 다양한 숙소를 예약할 수 있다. 사진 에어비앤비 캡처

서귀포시와 문체부 모두 불법행위라는 데 인식을 같이한다. 문제는 처벌 여부다. 제주도는 업체 신고가 없어 단속을 못 했다는 입장이고, 문체부는 외국 사업자인 에이비엔비에 책임을 미루고 있다. 공유민박업 법제화가 불법 영업 근절의 대안이라고 여행업계와 정부가 공감하면서도 관련 법은 수년째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한양대 관광학과 이훈 교수는 “불법 판매는 공유 경제가 아니라 ‘치팅(Cheating, 부정행위)’이다. 상업적으로 악용하는 개인 판매자들이 있는 데도 법이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며 "법으로 제재해야 하고, 개인 판매자에게도 세금을 물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에어비앤비 한국사무소는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분위기다. 유휴 공간을 숙박시설로 활용하는 게 에어비앤비의 사업 모델이어서다. 에어비엔비 음성원 미디어정책총괄은 “호스트에게 국내 법규와 관련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고, 플랫폼의 역할에 대한 정부의 제도 마련 논의에도 참여하고 있다”고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최승표·백종현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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