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제갈량같은 완벽주의자 리더 모시는 부하의 고충

중앙일보

입력 2021.05.1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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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최인녕의 사장은 처음이라(30)  

초가집을 세 번 방문한다는 뜻의 삼고초려(三顧草廬)는 유비가 제갈량의 마음을 얻기 위해 제갈량의 집을 세 번 찾아갔다는 말에서 유래됐다.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량은 모든 면에 능통하고 다재다능한 특급 인재다. 한왕조의 후예라는 명분 외에 아무것도 없는 유비가 촉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제갈량이라는 인재 영입과 권한 위임이다.
 
유비의 전적인 믿음과 지원을 받은 제갈량이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를 이끄는 과정을 보면 신출귀몰하다. 전략과 전술을 짜는 것부터 전쟁터에서 직접 진두지휘하는 것까지, 1인 다역으로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처리해내며,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다 과로로 병세가 악화돼 54세로 생을 마감한다.
 
모든 면에 완벽한 제갈량은 자신보다 부족한 점이 더 많은 다른 사람을 믿고 일을 맡기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만약에 제갈량이 자신의 재능을 ‘승리를 이끄는 사람’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까?


제갈량 같은 완벽주의자 리더

리더는 팀원이 자신의 강점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업무에 배치되어있는지 계속해서 성찰하는 게 필요하다. [사진 pxhere]

 
U사 제갈팀장은 오전에는 사내 회의, 오후에는 고객과 파트너 회의, 저녁에는 전략과 실행 계획 세우는 것으로 바쁜 일과를 보내며, 퇴근 후에는 실행되는 업무를 모니터링 한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며 회사의 주요 사항을 파악해 즉각적으로 보고하는 제갈팀장은 U사장에게 든든한 부하직원이다. 제갈팀장은 사장이 자신을 신뢰하고 지원하기에,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실수를 줄이고자 노력하며 회사 일에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팀장님, 이번 계약 건은 제가 책임지고 맡겠습니다.” 장과장은 이 업계의 영업통이다. 이번 일을 자신의 계획대로 진행하기를 원했다.
 
“어떻게 진행할 것인데요?” 제갈팀장은 지난번 경쟁사에 고객을 뺏긴 장과장을 향해 날카롭게 질문했다. “고객사 담당자가 제 지인의 친구입니다. 경쟁사에서 제시한 조건을 입수해서….” “우리나라에서 장과장의 지인 아닌 사람이 있나요?” 장과장은 호언장담했지만, 제갈팀장에게 무안만 당했고, 결국 조대리와 함께 팀장이 지시한 내용대로 해야 했다.
 
장과장은 업계에서 원만한 대인관계 능력자로 소문났다. 그런데, U사장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제갈팀장과 일하면서부터 의기소침하게 되었고, ‘팀원들이 제갈팀장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며 자주 불만을 토로했다. 장과장은 요즘 이직을 고민하고 있다.
 
한편, 장과장과 함께 일하는 조대리는 일에 대한 성취 의지가 강하며 제갈팀장의 탁월한 업무 능력과 열정을 존경한다. 그러나 회사를 위해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는 제갈팀장처럼 살기를 원치 않는다. 회사일 외에 개인의 삶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조대리는 제갈팀장과 오래 일할 생각은 없다. A부터 Z까지 팀의 모든 업무를 보고받고, 세세하게 지시하는 제갈팀장 아래에서는 성장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제갈팀장은 최근 사업 2팀을 추가로 맡게 되면서, 야근하는 것이 다반사가 되었다. 사업2팀의 팀장이었던 권차장은 제갈팀장의 팀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우직하고 성실한 권차장은 제갈팀장보다 사업분야에 경험과 노하우가 많지만, 제갈팀장은 평소 자신의 방식대로 팀원들 개개인과 면담하며 업무지시를 하기에 권차장의 도움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았다. 권차장은 강등되어 자존심도 상하고 마음도 편치 않았지만, 제갈팀장이 야근하는 동안 함께 남아 책을 읽거나 인터넷 검색으로 시간을 보내며, 필요할 때 도움이 되고자 했다.
 
제갈팀장의 업무 몰입도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매우 높다. 그런데, 다른 팀원들은 어떤가? 장과장은 남들이 인정할 만한 대인관계 능력이 있으나 이직을 고민하고 있다. 성장과 성취 의지가 강한 조대리는 자신의 성과를 인정받기 어려운 조직에서 떠날 생각을 하고 있다. 노련하고 우직한 권차장 역시, 업무와 동떨어져 시간만 보내고 있다. 결국 팀원들은 업무에 몰입하지 않고 있다. 팀장의 업무 몰입이 오히려 팀원의 업무 몰입에 장애가 되고 있다.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살피며 한 치의 실수 없이 성과를 이끄는 제갈팀장은 U사장에게 믿음직하고 훌륭한 부하직원임은 틀림없다. 이런 제갈팀장은 팀원들에게도 믿음직하고 훌륭한 리더일까?


완벽주의자 리더, 팀원의 업무에 방해

완벽주의 리더 아래의 팀원들은 오로지 리더가 시키는 것을 완벽하게 해내는 데만 집중해서 몰입과 책임감을 갖기 어렵다. [사진 pxhere]

 
완벽주의자 리더는 팀원을 본인만큼 신뢰하지 않는다. 제갈팀장은 리더인 자신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일에 쏟고 있으니,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본인이 일에 대해 가장 잘 안다고 믿는다. 일을 계획하고, 실행하며, 모니터링까지 모두 직접 해야 좋은 성과가 나온다고 믿기 때문에 팀장인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이 점점 많아지는 반면, 팀원들은 일에 몰입할 필요 없이 팀장의 지시를 기다리는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
 
제갈팀장은 팀의 성과를 이끄는 리더가 아닌, 리더 자신만의 몰입과 성과로 팀을 이끌어 간다. 모든 업무를 본인 혼자서도 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팀원마다 가진 강점을 강화해 적합한 업무에 배치하거나, 팀원이 특정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도록 권한 위임을 하지 않는다. 팀원들은 완벽주의 리더가 시키는 것을 완벽하게 해내는 데에 집중하며, ‘본인의 업무’라는 몰입과 책임감을 갖기 어렵다. 따라서 제갈팀장의 팀에서는 시키는 일을 잘하는 직원이 나올 수는 있지만, 탁월한 리더로 성장하는 직원이 나오기 어렵다.
 
완벽주의자 리더의 시야에는 오직 일과 이슈만이 존재한다. 이런 리더에게 승진은 기회가 아닌 위기로 이어진다. 더 많은 일을 하면서 정신적·체력적 소진을 하게 되어 일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거나, 넓어진 업무 영역에 공백이 생겨 일 처리 능력이 떨어지는 저성과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리더의 모습을 오케스트라 지휘자에 비유한다. 리더는 수준급 연주자가 아닌, 연주자들이 합을 맞춰 수준급의 연주를 하도록 이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즉, 조직 내에서 리더는 일 잘하는 직원 이상의 역량을 갖춰야 하며, 자신의 시야에 사람과 일을 같이 두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리 완벽주의자 리더라도 신입 직원 때부터 모든 업무를 완벽하게 해낸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일 잘하고, 좋은 성과를 내는 완벽한 리더로 성장하기까지 나에게 권한 위임을 해준 상사, 내가 업무 몰입을 해서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믿어준 팀과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에 완벽주의자 리더로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만 보이고 사람 안 보이는 리더

일을 하면서 내 시야에 일 외에도 ‘사람’을 둔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일도, 조직 관리도 완벽하게 잘하는 리더가 되기 위해 팀원 모두 제쳐두고 자신은 일만 보고 있지 않은지, 본인만큼 팀원도 업무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지, 팀원이 자신의 강점을 활용해 좋은 성과를 내도록 적절한 업무에 배치됐는지 계속 성찰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INC 비즈니스 컨설팅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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