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기준 우리나라 한부모 가구는 152만 가구로, 전체 가구의 7.2%나 된다.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정재훈 교수는 "가족의 형태와 개념은 시대와 사회 상황에 따라 변화한다.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산업화 세대의 가족 개념이 후기 산업사회에서 빠르게 희석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가정 폭력과 학대로 희생된 정인이에게 수목장을 제공한 경기도 양평 청란교회 송길원 담임목사(행복가정 NGO 하이패밀리 대표)는 정상·비정상 가족 논란에 대해 "가족의 형태보다는 내용과 실질이 중요하다. 심각한 병리 현상을 드러낸 가족 생태계를 건강 가정으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렇다면 실제 비혼모·비혼부로 살아가는 젊은 엄마·아빠들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불거진 정상·비정상 가족 논란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을까. 정부의 가족 정책에 대한 시각도 들어봤다.
박 대표는 "비혼모에 대한 편견을 깨는데 도움을 준 사유리 씨의 용기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혼자서 아이 키운다고 비정상 가족으로 보는 시선이 문제다. 우리도 똑같은 엄마이고 동시에 엄마·아빠 역할을 맡은 가장"이라고 했다. 권수경씨는 "두 부모 가족이라도 학대받거나 죽음으로 내몰리는 가정이 많다. 아이가 건강하고 행복하면 그것이 정상가족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임수정씨는 "한부모·다문화·조손 가족 등 가족 유형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선진사회"라고 했다.
임수정씨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못 가는 비혼모 자녀들이 많다. 어린이집에 맡기려 해도 아이가 셋 이상인 '다자녀 한부모 가정'보다 우선순위가 밀리는 '일반 한부모 가정'이라 계속 대기하니 힘들다"고 했다. 그는 "일정 소득 기준에 안 맞으면 한부모 증명서를 발급받지 못해 월급을 고스란히 베이비 시터에게 바친다. 일이 있어도 저축을 못 하니 비혼모 가정은 가난을 벗어날 수 없어 악순환이 계속된다"고 전했다.
직접 만난 비혼모들은 아이를 최대한 잘 키워보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이들은 역대 정부가 저출산 대책에 200조원을 투입했다는 보도가 딴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고 입을 모았다. 박 대표는 "예산이 제대로 쓰였으면 우리도 뭔가 도움을 받았을 텐데 전혀 체감할 수 없다. 그 많은 돈이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이와 관련, 비혼 한부모 생활시설인 애란원(서울 서대문구) 강영실 원장은 "특정 가족 유형에 국한한 지원에서 이제는 다양한 가족의 욕구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부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친생부에 대한 비혼모들의 시각은 양육비 등의 갈등이 준 상처 때문인지 여전히 싸늘한 반응이 다수였다.
김 대표는 "생모가 버리고 간 아이를 책임지고 키우겠다는 비혼부들이 요즘엔 생각보다 많아졌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가족관계등록법이 일부 개정됐지만, 여전히 비혼부가 아이를 출생신고부터 양육하는 과정에 불이익과 차별이 많아 힘들다고 호소했다. 실제로 그는 '혼인외 출생자의 신고는 모(엄마)가 해야 한다'는 민법의 친생 추정 조항(가족관계등록법 46조 2항) 때문에 2013년 태어난 사랑이(7)를 출생 16개월 만에야 친생 딸로 출생신고할 수 있었다. 그의 노력 덕분에 제정된 '사랑이법'에 따라 이제는 생모의 인적사항 등을 알 수 없는 경우라도 비혼부의 출생신고가 가능하다. 하지만 여전히 비혼부가 키우는 아이는 출생신고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 때문에 아이들이 각종 복지 혜택을 적기에 못 받아 기본권이 침해되고 차별받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고 김 대표가 전했다. 예를 들어 생모가 일방적으로 출생신고를 거부하는 경우 오랜 소송 대결로 가야 하고, 생모가 외국인인 경우에는 반드시 혼인신고를 선행해야 출생신고가 가능하다. 생모가 혼인관계 파탄 중에 다른 남자와 혼인해 출산한 경우 친생 추정 조항을 따져야 한다.
김 대표는 이런 과정에서 공무원들의 행정적 일 처리에 따른 시간과 비용 부담을 생업도 벅찬 비혼부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예컨대 비혼부 자녀가 건강보험 적용을 받으려면 출생증명서, 가정법원 출생신고 관련 소송 접수증, 유전자 검사 결과 서류 등을 내야 한다.
게다가 친부 확인을 위한 유전자 검사를 받기 위해서는 판사의 명령장을 받아야 한다. 김 대표는 "아이의 기본권을 우선하는 선진국과 달리 행정 확인 절차를 우선하는 것은 본말전도"라고 비판했다. 비혼부들은 "병원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의사가 출생 사실을 국가기관에 알리는 '보편적 출생 등록제'를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이 제도는 국가인권위가 이미 권고했지만, 여성들의 병원 밖 비밀 출산 확산에 따른 부작용 우려 등으로 도입되지 못하고 있다.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은 "혼인으로 맺어진 전통적 가족에만 정부 예산을 지원해서는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경북과학대 보육복지계열 강라현 교수는 "한부모가족지원법에 따른 지원 액수가 미미하다. 생애주기별 서비스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장에서 들어보니 정부의 한부모 가족 정책에 대한 비혼 부모들의 불만이 한둘이 아니었다. 여성가족부를 비롯한 정책 당국자와 국회가 관련 법과 제도를 시급히 점검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