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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도 못했다, 코로나 시대 두 가족의 '아픈 이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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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지난 3월 코로나19 1차 대유행 와중에 폐렴으로 숨진 고3 정유엽(18)군의 부모가 지난 18일 경북 경산 천주교 성당 묘지에서 아들의 비석을 쓰다듬고 있다. 부모는 "정부의 의료 정책과 인재 때문에 살릴 수 있는 아들을 못 살렸다"며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촉구했다. 장세정 기자

지난 3월 코로나19 1차 대유행 와중에 폐렴으로 숨진 고3 정유엽(18)군의 부모가 지난 18일 경북 경산 천주교 성당 묘지에서 아들의 비석을 쓰다듬고 있다. 부모는 "정부의 의료 정책과 인재 때문에 살릴 수 있는 아들을 못 살렸다"며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촉구했다. 장세정 기자

고3의 꿈을 피워보지도 못한 정유엽 군이 지난해 가을 가족여행 때 찍은 사진. 장세정 기자

고3의 꿈을 피워보지도 못한 정유엽 군이 지난해 가을 가족여행 때 찍은 사진. 장세정 기자

우려하던 코로나19의 3차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이제 누가 감염되더라도 놀랍지 않을 정도로 코로나가 한국사회에 깊숙이 퍼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8월 수도권의 2차 대유행 당시 숨진 70대 어르신 가족, 앞서 지난 2~3월 대구·경북을 강타한 1차 대유행 당시 숨진 경북 경산의 고3 정유엽(18)군 가족을 만났다.

[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코로나 시대 '아픈 이별' 두 가족 이야기] #작별도 못하고 황망하게 떠나보내 #방호복 입으면 임종하게 해줘야 #코로나 희생자 존엄성도 존중을 #엉터리 마스크 대책 와중에 숨져 #진상 규명해 '제2 정유엽' 막아야 #일반 응급 환자 대책도 마련해야 #망자와 유족에 사회적 배려 절실

 아픈 기억을 되살리는 이유가 있다. 3차 대유행이 시작된 상황에서 코로나에 감염돼 세상을 떠나는 환자와 유족을 좀 더 세심하게 배려하고, 코로나 와중에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희생되는 안타까운 사례를 최소화하자는 취지다.
확진 8일 만에 떠난 70대 아버지 
 수도권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A씨는 병문안도 작별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아버지를 황망하게 떠나보낸 것이 내내 회한으로 남아 있다. 70대 초반이던 아버지는 몇 년 전 심장질환을 앓았지만 건강했다. 그런데 교회 지인들과 식사한 것이 화근이 됐고 확진된 지 불과 8일만인 8월 말에 별세했다.
 -언제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만났나.
 "7월에 친정에 가서 뵌 것이 살아 계신 상태에서 뵌 마지막 만남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 안 오는 게 효도라고 말씀하셔서 자주 찾아뵙지 않았다. 이렇게 황망하게 가실 줄 알았다면 더 자주 찾아뵀어야 했는데 돌이켜보니 참으로 후회된다."

보건복지부는 중증응급의료센터 57곳을 가동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북 경산시 등 중소도시는 일반 응급실 뿐이다. 고3 정유엽 군 유족은 "일반 응급 환자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장세정 기자

보건복지부는 중증응급의료센터 57곳을 가동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북 경산시 등 중소도시는 일반 응급실 뿐이다. 고3 정유엽 군 유족은 "일반 응급 환자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장세정 기자

 -확진 이후 8일 만에 별세했는데.
 "입원 직후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2~3일 후에 산소호흡기를 쓰고, 4~5일 후에 인공호흡기를 달았다. 단기간에 상태가 악화해 렘데시비르를 써보지도 못했다. 별세 당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오라'는 청천벽력 같은 병원 연락을 받았다."
 -가족이 아버지를 임종했나.
 "중환자실 투명 유리 너머로 심폐소생술을 받는 모습을 봤지만, 그때 아버지는 미동도 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세상을 떠나시자 방호복을 입고 병실에 들어가 마지막 인사를 올렸다. 아버지 혼자 중환자실에 누워 계시다 돌아가셨다고 생각하니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병원 측은 환자 상태에 대해 가족에게 정확히 알리고, 최악의 상태가 되기 전에 먼발치에서라도 볼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방호복을 입은 가족이 마지막 인사를 나누도록 배려해주면 좋겠다."
 -보건 당국의 조치에 문제점은 없었나.
 "확진자와 접촉자 검사는 지금보다 더 신속하게 해야 한다. 기저질환이 있는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감염됐지만, 병실이 없어 하루 뒤에야 입원했다.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져 정말 아찔했다. 확진 판정을 받고도 신속히 입원하지 못해 숨지는 사람이 없도록 하려면 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상황에서 병실을 미리 많이 확보해야 한다."
 -코로나 환자라고 퇴짜 놓는 장례식장이 많다던데.
 "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은 장례식장이 폐쇄된 상태라 별세 당일에는 화장도 빈소 마련도 불가능했다. 다음날 이곳저곳 알아봤지만, 코로나 사망자를 받아준다는 장례식장은 없었다. 결국 빈소를 마련하지 않기로 했다."

수도권의 한 화장장에서 직원들이 방호복을 챙겨 입은채 고인을 화장장 내부로 운구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무관함. [유족 제공]

수도권의 한 화장장에서 직원들이 방호복을 챙겨 입은채 고인을 화장장 내부로 운구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무관함. [유족 제공]

 -화장 과정에서는 어땠나.
 "아버지와 작별할 시간이 너무 없었다. 시청이 제공한 영구차에 가족이 같이 탈 수도 없었고, 염습이나 입관식도 없이 바로 화장장으로 이동했다. 감염을 막기 위해 화장장 업무가 끝난 뒤에야 화장을 진행했다. 방호복을 입더라도 장례 과정을 함께 하고 싶었지만, 밖에서 대기해야 했다. 아버지가 가시는 길이 너무 외로울 것 같아 마음이 쓰려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휴대전화 동영상이라도 찍어주면 좀 위안이 됐을 것 같다."
 -납골당도 코로나 사망자를 기피한다던데.
 "다행히 시립 납골당이라 기피하진 않았지만, 당일에는 가족의 출입을 막아 봉안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직원이 유골함 안치 장면 사진은 보내줬다. 화장해 감염 우려가 없는데도 아버지 모신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정말 속상했다."
 -코로나 시대에 장례 문화를 바꾼다면.
 "코로나 사망자 전용 장례식장·화장장‧납골당을 운영하면 어떨까. 화장하면 감염 우려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안내해서 코로나 사망자도 존엄한 장례식을 치를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누구나 이런 일을 겪을 수 있다. 완치돼 일상으로 복귀하면 차별하지 말고 서로 배려해주면 좋겠다."

마스크 대란 와중에 숨진 고3 아들
 지난 3월 18일 당시 고3이던 정유엽 군은 영남대병원에서 코로나 의심 환자로 여겨져 치료받다 결국 급성폐렴으로 숨졌다. 열이 나서 3월 12일 경산중앙병원 응급실에 갔고 13일 영남대병원으로 옮겨진 지 불과 닷새만이었다.

고 정유엽 군은 고3이엇지만 수능을 치르지 못하고 떠났다. 둘째 형 옆 정 군의 공부방 빈자리가 유달리 커 보인다. 장세정 기자

고 정유엽 군은 고3이엇지만 수능을 치르지 못하고 떠났다. 둘째 형 옆 정 군의 공부방 빈자리가 유달리 커 보인다. 장세정 기자

 정군은 부산에 있는 한국해양대에 진학해 ROTC 코스를 밟은 뒤 해군 장교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코로나 1차 대유행 때라 교실엔 가보지도 못했다. 정군이 떠난 지 8개월째 되던 지난 18일 정군의 부모를 현지에서 만났다.
 부모는 "다음 달 3일 수능이 다가오니 아들이 더 보고 싶다. 기저질환이 없던 젊은이가 죽었는데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핑계대면 이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앞서 정군은 정부의 공적 마스크 5부제 시행 둘째 날이던 3월 10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동네 약국 7곳을 돌아다녔고 이후 고열에 시달렸다. 부모는 정부의 부실한 마스크 정책과 의료 사각지대에서 아들이 희생됐다고 주장했다.
 아버지 정성재(53)씨는 생업을 미루고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하며 동분서주하고 있다. 자그마한 김밥집을 운영하는 어머니 이지연(51)씨는 "경산은 대추 특산지라 여기는 붉은 대추를 꽂아도 당선되다 보니 국민의힘 소속 시의원들이 진상 규명과 대책 마련에 더 소극적"이라고 질타했다.

 -사인이 폐렴인데 왜 조치가 안 됐나.
 "발열이나 기침 증상 등이 있으면 외출을 자제하고 3~4일 집에서 경과를 관찰하며 기다리라는 정부(질병관리청) 지침을 그대로 따랐다. 그런데 집에서 해열제를 먹였지만 12일에도 열이 40도를 넘어 경산중앙병원 응급실로 갔다. 건강보험료 연체 한번 안 했는데 정작 다급하게 치료가 필요할 때는 외면당했다."
 -국민 안심병원으로 지정된 곳이던데.
 "말로만 안심병원이다. 날씨가 추웠지만, 응급실 밖에서 체온을 쟀다. 고열이 있는 위급한 상황이었는데도 '다음날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며 집으로 돌려보냈다. 엑스레이라도 찍어야 했는데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충분히 살릴 기회를 놓쳤다. 13일 오후 병원 측이 갑자기 '오늘 밤 못 넘긴다'고 해서 상급종합병원인 영남대병원으로 가게 됐다. 응급 상황에서 병원 앰뷸런스 이용을 요청했지만 그것조차 거절당했다."
 (이에 대해 경산중앙병원 관계자는 "당시는 전쟁 같은 상황이었다. 그날 응급실에 자리가 없어서 입원시키지 못했지만, 고3 젊은이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해명했다.)

고 정유엽 군이 쓰던 공부 방에 놓여진 다섯 마리 곰 인형과 코로나 마스크. 부모와 3형제를 상징하는데 맨 오른쪽이 유엽 군 인형이었다고 유족이 설명했다. 장세정 기자

고 정유엽 군이 쓰던 공부 방에 놓여진 다섯 마리 곰 인형과 코로나 마스크. 부모와 3형제를 상징하는데 맨 오른쪽이 유엽 군 인형이었다고 유족이 설명했다. 장세정 기자

 -영남대병원에서는 어땠나.
 "처음부터 '99% 이상 코로나를 확신한다'면서 코로나 의심 환자로 분류했다. 13회나 검사해 마지막에 일부 양성 소견이 나왔지만 질병관리청은 검체가 오염됐다며 일반폐렴으로 결론 내렸다. 병원은 사망 진단서를 처음엔 '코로나로 인한 호흡부전'으로 발급했다가 급히 회수하고 급성폐렴으로 고쳤다. CCTV가 폐기됐다니 병원 내부 사정은 잘 모르지만, 코로나로 오인한 상태에서 폐렴 치료 기회를 놓친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중간에 인공호흡기가 빠지는 황당한 사고도 있었다."
 (이에 대해 영남대병원 관계자는 "고3이라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다섯 가지 시약을 모두 동원해 검사했다. 폐렴 가능성도 고려해 쓸 수 있는 약은 다 써가며 살리려고 최선을 다했다. 면역 물질인 사이토카인 과다 분비로 면역체계가 무너져 숨졌다. 불가항력적이었다"고 해명했다.)
 -왜 이런 비극이 벌어졌다고 보나.
 "막을 수 있었는데 못 막았다. 이런 상황에 대비 못 한 의료 시스템 문제다. 일반 응급 환자에 대한 매뉴얼이 제대로 없었다. 발열 환자 동선 분리, 응급실 대응, 상급병원 전원, 응급호송 체계 등 총체적 인재다. 경산에 종합병원이 2곳 있지만, 코로나 검사 기관은 없다. 지금도 지방에서는 열나면 검사 결과 나올 때까지 응급환자는 방치된다. 아직도 사각지대가 남아 있다."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은.
 "대통령이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을 영웅이라고 부르던데 숫자 발표 외에 뭘 했나. 사망자가 나오면 국가가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제2의 정유엽'이 나오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 아들의 죽음이 더 많은 사람을 살리는 방향으로 긍정적 울림을 주면 좋겠다. "
 지난 22일 0시 기준 코로나19 사망자는 505명을 기록했다. 한국사회는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기억해야 한다.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고3 정유엽 군의 어머니는 아들을 잃은 충격을 동네 성당의 도움으로 힘겹게 누르고 있었다. 장세정 기자

고3 정유엽 군의 어머니는 아들을 잃은 충격을 동네 성당의 도움으로 힘겹게 누르고 있었다. 장세정 기자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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