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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말 안들으면 몇억 번다, 급매 김의겸·김상곤만 억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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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문 대통령은 지난 2일 김 장관을 불러 부동산 폭등에 대한 특별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집값 불안 등으로 대통령 지지율은 최근 하락세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문 대통령은 지난 2일 김 장관을 불러 부동산 폭등에 대한 특별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집값 불안 등으로 대통령 지지율은 최근 하락세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집값과 전셋값이 최근 동반 폭등하면서 잠시 잊혔던 인물들이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김의겸(57) 전 청와대 대변인과 김상곤(71) 전 교육부 장관 겸 사회부총리. 두 사람은 투기가 사회적 이슈였던 시점에 고위 공직자로서 부동산을 서둘러 처분했는데 결과적으로 억대의 손해를 본 공통점이 있다.
 김 전 대변인은 청와대에 들어간 지 불과 5개월만인 2018년 7월 대출받아 서울 동작구 흑석동 재개발 구역 상가(272㎡)를 25억7000만원에 매입해 논란이 됐다. 재개발 아파트 입주권과 신축 상가까지 받을 수 있는 낡은 상가 건물을 1년 5개월만인 지난해 12월 초 34억5000만원에 급히 팔았다.
 김 전 대변인은 고향인 전북 군산에서 21대 총선 출마를 노렸으나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지 못했고, 열린민주당 비례대표로 출마했으나 당선권 밖으로 밀려났다.
 흑석동 부동산 중개소 몇 곳에 전화를 돌렸더니 투기 의혹을 비판하던 지난해 11월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한 부동산중개소 사장은 "지금은 매물이 없다"면서 "지난해 12월 시세보다 2억 정도 싸게 팔고도 국회의원이 못 됐으니 그 사람(김의겸)만 엄청 억울하겠다"고 말했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해 12월 초 서울 흑석동 재개발 상가를 급히 처분했다.[청와대사진기자단]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해 12월 초 서울 흑석동 재개발 상가를 급히 처분했다.[청와대사진기자단]

김상곤 전 사회부총리는 2018년 3월 서울 대치동 아파트를 시세보다 싸게 급히 처분했다. [연합뉴스]

김상곤 전 사회부총리는 2018년 3월 서울 대치동 아파트를 시세보다 싸게 급히 처분했다. [연합뉴스]

 김상곤 전 부총리는 더 억울할 듯하다. 정부가 다주택자를 겨냥해 '투기 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하자 2018년 3월 성남시 분당 아파트를 남기고 서울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 1단지 아파트(94.49㎡)를 서둘러 팔았다. 당시 시세보다 1억5000만원 낮은 23억7000만원에 처분했는데 최근 같은 평형 아파트는 34억원에 거래돼 10억원 이상 올랐다.
 대치동 부동산 중개소 관계자는 "고위 공직자니까 권력과 재산(아파트) 중에 어쩔 수 없이 하나를 떠밀려 선택했을 거다. 강남 아파트를 팔고 불과 몇 개월 만에 부총리를 그만뒀으니 집값이 폭등한 지금 돌아보면 안타깝게 됐다"고 말했다.
 요직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고 수십억 원의 부동산을 거래할 수 있었던 두 사람은 서민의 눈으로 보면 부러움과 질시의 대상일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동정의 대상'으로 뒤바뀐 현실이 씁쓸하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해 12월 16일 수도권 다주택자 고위직들에게 집을 팔라고 촉구했지만 6개월이 지나도록 대부분 버티고 있는 현상과 대비되기 때문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해 12월 청와대 고위직 소유 부동산값 폭등 실태와 문재인 정부 3년간 땅값 2000조원 폭등 사실을 공개했다. 최근엔 문재인 정부 3년간 서울 집값이 52%(중위가격 기준) 급등했다고 폭로해 파문을 일으켰다. 경실련은 지난 1일 청와대 앞에서 '청와대 다주택 공직자 즉시 교체 촉구' 기자 회견을 열었고, 바로 다음 날 문재인 대통령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불러 대책을 지시했다.
 김헌동(65) 경실련 부동산건설 개혁 본부장은 '부동산 정책 실패의 저격수'로 불린다. 1981년부터 19년간 쌍용건설에서 일하다 2000년부터 경실련에 합류한 시민운동가다. 김대중 정부 시절 외환위기 극복 대책을 주도한 김태동(73) 전 대통령 경제수석의 동생이다.

'부동산 정책 실패의 저격수'로 불리는 김헌동 경실련 부동산건설 개혁 본부장. 장세정 기자

'부동산 정책 실패의 저격수'로 불리는 김헌동 경실련 부동산건설 개혁 본부장. 장세정 기자

김헌동 경실련 부동산건설 개혁 본부장의 친형 김태동(오른쪽) 전 경제수석은 김대중 정부 시절 외환위기 극복 정책을 주도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헌동 경실련 부동산건설 개혁 본부장의 친형 김태동(오른쪽) 전 경제수석은 김대중 정부 시절 외환위기 극복 정책을 주도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경실련 기자회견 하루 뒤 대통령이 특별 대책을 지시했다.
 "10점짜리다. 방향도 형식도 틀렸다. 21차례 오답을 낸 책임을 물어 경질해야 할 장관을 불러서 되지도 않을 대책을 지시한 형식부터 틀렸다. 정확한 원인 진단부터 하고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하는데,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 정권 탓하는 장관이 준비해간 내용을 지시라고 했으니 달라질 게 없다."
 -대통령은 발굴해서라도 주택 공급을 확대하겠다는데.
 "이미 전국에 공급된 주택이 2200만채다. 자기 이름으로 집 가진 사람은 1300만명인데 여러 채를 사재기한 경우가 많다. 이 정부는 다주택 투기꾼들에게 대출을 늘려주고 세금을 깎아줘 투기세력을 오히려 더 키웠다. 기존 전세 대출을 회수하고 임대 소득자에 세금을 제대로 물려야 한다. 신도시 등 신규 공급보다는 다주택자가 보유 주택을 시장에 내놓게 해야 한다. 매물이 쏟아지면 가격은 내려간다."
 -정부가 임대 사업자에 인정한 혜택을 되돌릴 수 있나.
 "법 개정 사항이 아니고 시행령을 손보면 된다. 임대사업 실태부터 조사하고 정책의 부작용을 평가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기초 자료조차 공개하지 않는다. 툭하면 강남 1주택자에 보유세를 올리겠다고 하는데 이건 선의의 피해자만 양산한다. 노무현 정부는 집값 잡는다고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신설했는데도 집값은 급등했다. 종부세를 50% 내린 이명박 정부 때 오히려 집값이 하락했다. 종부세와 집값은 상관성이 없다."

문재인 정부가 지금처럼 집값을 잡지 못하면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실패를 답습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비서실장 시절 문 대통령이 당시 노 대통령과 함께 대화하는 모습. [중앙포토]

문재인 정부가 지금처럼 집값을 잡지 못하면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실패를 답습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비서실장 시절 문 대통령이 당시 노 대통령과 함께 대화하는 모습. [중앙포토]

 -김의겸·김상곤 등 부동산을 서둘러 판 사람만 손해 본 셈이다.
 "김수현(전 정책실장)과 김현미의 말을 안 듣고 버텼으면 몇억은 더 벌었을 것이다. 안 팔고 버티면 결과적으로 불로소득 몇억원 더 생기는 나라가 정상인가. '집을 팔라'는 게 대통령 뜻이라면 비서실장이 전세를 살더라도 강남 집을 팔아야 했는데 이제 와서 강남 아파트는 남기고 고향 집을 팔겠다며 오락가락한다. '어공'이 이러니 '늘공'은 대통령 지시에 코웃음 친다."
 -집값과 전셋값 동시 폭등의 진짜 원인은.
 "코로나19 영향으로 3~4월에 집값이 일시 하락하자 건설 경기 급랭을 우려한 정부가 '집 팔지 말라'는 신호를 시장에 보냈다. 5월 6일 국토부와 서울시가 '용산 미니 신도시' 개발 계획 등을 발표하면서 용산·여의도·마포가 뛰기 시작했다. 6월 5일에는 서울시가 민간자본의 잠실 마이스(MICE) 단지 투자 계획에 대한 적격 조사를 마친 사실이 공개되면서 주변이 들썩였다. 정부가 용산에 불 지르고 잠실에 기름 끼얹은 셈이다. 이처럼 정부가 집값을 폭등시켜놓고 갑자기 6·17 대책을 내놨다."
 -김현미 장관은 전 정권 탓이라고 했다.
 "도대체 3년간 뭐 하다 이제 와서 잠꼬대하듯 전 정권을 탓하나. 박근혜 정부 때 30만채였던 임대 사업용 주택은 문재인 정부 들어 100만채(약 4만명이 소유)가 늘었다. 상위 1%가 보유한 주택은 2008년 35만채였는데 2019년 140만채로 늘었다. 상위 1%의 1인당 보유 주택은 2.8채에서 약 9채로 늘었다. 엄청난 사재기가 있었다는 얘기다. 정부가 집을 사재기하도록 세금 깎아주고 대출을 늘려줬으니 집값이 뛸 수밖에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행사장으로 이동하는 모습. 지난해 12월 노 실장이 청와대 다주택 고위직들의 수도권 보유 주택을 팔라고 했지만 대부분 팔지 않고 버티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행사장으로 이동하는 모습. 지난해 12월 노 실장이 청와대 다주택 고위직들의 수도권 보유 주택을 팔라고 했지만 대부분 팔지 않고 버티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집값을 원상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렇게 쉽게 안 될 거다. 이명박 정부는 4대 강 사업에 22조원을 쏟아부었는데 문재인 정부는 2배가 넘는 50조원을 예비타당성 조사도 면제하고 도시재생 사업에 쏟아 붓는 정책을 강행하고 있다. 지자체들은 눈먼 돈 따내려고 혈안이다. 이런 개발 계획을 취소하면 부동산 시장 안정이 가능하겠지만, 코로나19로 위축된 경기를 부양해야 하니 취소하지 못할 거다. 경기를 부양하면서 동시에 집값을 잡으려 하니 대책이 먹히지 않는다."
 -6·17 대책 이후 3040세대 실수요자들의 불만이 커졌다.
 "평등·공정·정의를 떠들더니 3년간 정책을 정반대로 몰고 왔다. 실수요자에겐 전세자금도 대출 안 해주고 집 한 채 사려고 하면 허가를 받으라고 한다. 정부가 집값 올려놓고 무슨 자격으로 허가받으라는 건가. 10채, 100채씩 사는 사람에겐 규제보다 혜택을 준다. 도대체 이 나라의 주인이 누구냐. 대한민국이 투기꾼의 나라냐."

경실련 관계자들이 청와대 앞에서 집값과 전셋값 폭등을 풍자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장세정 기자

경실련 관계자들이 청와대 앞에서 집값과 전셋값 폭등을 풍자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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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투기가 초래한 한국사회 불평등, 30년 지나도 그대로
 "우리 사회의 경제적 불의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우리의 공동체는 와해 직전의 위기에 처하여 있다. 이 중에서도 부동산 문제의 해결은 가장 시급한 우리의 당면과제이다. 인위적으로 생산될 수 없는 귀중한 국토는 모든 국민의 복지증진을 위하여 생산과 생활에만 사용되어야 함에도 소수의 재산증식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토지 소유의 극심한 편중과 투기화, 그로 인한 지가의 폭등은 국민 생활의 근거인 주택의 원활한 공급을 극도로 곤란하게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거대한 투기소득의 발생 등을 초래함으로써 현재 이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대부분의 경제적 사회적 불안과 부정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1989년 7월 8일 경실련이 발표한 발기문은 지금 읽어도 유효하다. 그만큼 부동산으로 인한 한국사회의 불평등 구조는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동안 경실련은 주택임대차 제도 개선 운동, 토지공개념 도입 촉구, 재벌 업무용 토지 매입 특혜 고발, 부동산실명제 도입 운동, 아파트값 거품 빼기 국민 행동, 4대강 사업 감시 운동, 전·월세 임대료 상한제 도입 촉구 운동 등을 펼쳐왔다.
 한 세대가 흘렀지만, 부동산 투기와 그에 따라 심화한 불평등 구조는 개선되지 못했다. 경제 정의와 경제 민주화 구호는 지금도 요란하지면, 실현은 여전히 요원하다. 정부 보조금을 한 푼도 받지 않는 경실련이 좌파든 우파든 가리지 않고 엉터리 정부 정책에 비판의 날을 세우는 이유일 것이다.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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