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홍미옥의 모바일 그림 세상(73)
언제부턴가 어린이의 장난감·문구, 도서 시장에 어른들이 큰손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른바 키덜트 문화가 소수 계층을 넘어 중장년층에 퍼지는 모양이다. 한참 전부터 불기 시작한 그림책 열풍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림책은 어린이 몫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까지도 그 매력에 빠져들게 하는 건 시간문제다. 아이를 키울 때 읽어주던 그림책을 인생 후반에 다시 펼쳐보니 새로운 세상이 보이더라는 사람도 많다.
인형놀이는 아이만? 어른도 좋아해
초등학생이 가위질을 잘하면 얼마나 잘할까만은 기껏 오려놓은 종이 인형은 여기저기 잘리기도 했고 튼튼치 못한 종이 탓에 인형 목이 뎅강 부러지는 참사는 부지기수였다. 마치 내 몸이 다친 거처럼 안타까워하며 인형 목 뒤에 두툼한 종이나 테이프로 나름 보수를 하는 방법도 터득했다. 개중에 그림 솜씨가 조금이라도 있는 친구는 도화지에 직접 옷을 그려서 놀기도 했는데, 그땐 그런 놀이가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또래의 어른이 한자리에 모였다. 당연하게도 종이 인형 놀이는 몇십 년 만에 해보는 놀이였다. 처음엔 중년의 어른이 이런 취미를 갖는 게 왠지 어색하기만 했다. 마치 처음 해보는 놀이처럼 서툴기도 하고 멋쩍기도 했다. 그동안 깜찍하고 앙증맞던 종이 인형은 도톰하고 질 좋은 재질의 화집으로 변신했다. 뭐, 원래는 어린이용으로 제작되었겠지만 요즘 세상에 그런 구분은 의미도 없을 터이다.
자그만 문구용 가위로 종이 인형을 오리면서어른의 인형 놀이는 시작됐다. 의외인 건 가위질이 만만찮다는 거다. 겨우 종이를 오릴 뿐인데도 말이다. 이제는 손 근육이 맘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동심으로 돌아가는 건 시간문제였다.
누군들 이런 놀이에 담긴 추억이 없을까. 줄줄이 쏟아져 나오는 추억은 도화지 위의 인형 옷만큼이나 다양했다. 어릴 때 읽었던 동화책의 주인공은 거의 종이 인형 옷 입히기에 등장하기도 했으니 자연스레 동화책·그림책으로 주제가 옮겨가기도 했다. 그때 난 인어공주의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았는데 지금에 생각해보니 그럴 만도 했다는 등 동화 속 주인공에 대한 감상이 터져 나왔다. 과연 어른이 되어서 읽는 동화 속 등장인물은 그때와는 매우 달랐다.
색칠하기와 종이인형놀이
그날, 우리 어른은 유치하게 보일지 모르는 종이 인형놀이에 흠뻑 빠져들었음이다. 살짝 속마음을 말하자면 이런 놀이는 ‘손 근육을 움직임으로써 뇌를 자극하고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 더 매력적인 건 어쩔 수 없다.
스마트폰 그림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