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홍미옥의 모바일 그림 세상(72)
4월, 어김없이 봄꽃은 그 자태를 뽐냈다. 마치 이 몸은 어느 날 어디쯤 너희를 찾아갈 테니 맞이할 준비를 하라는 듯 아름답게 봉우리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여느 때 같았으면야 전국의 지자체는 봄축제에 여간 바쁘지 않았을 터이다.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만 보고도 덩달아 들뜨는 이들도 물론 많았을 테고 고을고을 흥겨운 분위기에 취했을 것이다. 매화 축제를 필두로 온갖 꽃축제가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년에 이어 올해도 꽃들은 드러내놓고 이쁨을 뽐내지 못했고 사람들도 맘껏 즐기지 못했다.
쌀쌀한 겨울 내음이 가시기도 전에 주변엔 매화, 산수유, 개나리, 벚꽃, 라일락 등이 피기 시작했다. 겨우내 메말랐던 가지엔 해마다 보면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상큼한 연둣빛 새싹이 돋아났다. 굳이 꽃이 피지 않아도 혹은 떠들썩하게 꽃 축제를 벌이지 않아도 여린 새싹만으로도 사람들은 이미 봄맞이를 하고 있었다. 올해는 좀 나아지려나? 아니면 지긋지긋한 코로나가 또다시 봄을 가로막으려나? 아시다시피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역시 그것과 싸워야 할 형편이다.
꽃길만 걸으세요?
한때 ‘꽃길만 걸으세요’라는 광고문구가 빅 히트를 친 적이 있다. 덕담치고는 더는 기분 좋을 수 없는 말이다. 덕분에 TV를 틀면 온종일 그 말이 들리곤 했다. 그렇게 된다면야 얼마나 좋을까마는….
뭐 안될 것도 없다. 탄탄하고 풍요로운 꽃길 말고 진짜 꽃길을 걸으면 되는 거다. 그 길을 걸어서 건강을 얻는다면 그보다 더 좋은 꽃길은 없을 테니까! 건강한 걷기는 우리의 혈관마다 세포마다 환한 꽃길을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봄을 맞은 한강 변, 유난히 걷는 사람이 많다. 마스크를 단단히 썼음에도 맡아지는 봄 향기는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간간이 보이는 공공 체육시설은 폐쇄된 지 오래다. 출입 금지 푯말과 테이프로 칭칭 동여매진 운동기구는 보기에도 심란하기 그지없다. 평소 운동이라곤 그다지 즐기지 않던 나도 언제부턴가 걷기운동에 나섰다. 일상을 옭아매는 코로나에 대한 반항이랄까? 그러고 보니 원망스럽기만 한 그것도 고마울 때가 있나 보다. 집 밖으로 강변으로 둘레길로 그리고 꽃길로 날 끌어내 주었으니 말이다. 혹여 점점 불어나는 체중도 빠져준다면 이거야말로 금상첨화다.
꽃길 인생은 동네길 걷기부터
건강에 대한 관심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아침 방송의 주메뉴는 무얼 먹어야 노화를 막을 것이냐로 시작해서 어떤 식품이 건강을 지켜줄 것인지를 알리고서야 끝이 난다. 예를 들어 방송에서 장 건강을 지키는 식품에 대해 사례를 들어가며 정성스레 소개한다. 그러면 어김없이 홈쇼핑에서는 장에 좋은 건강식품을 팔고 있다. 짜고 치는 뭣 같아 씁쓸하긴 하지만 그만큼 온 국민의 관심은 ‘건강’이라는 증거다.
‘건강을 위해 좋은 걸 두 가지 먹는 것보다 나쁜 거 한 가지를 줄이는 게 낫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봐도 명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하는 게 있다. 걷기다. 거의 열풍 수준이다. 물론 나도 질세라 걷기 시작했다.
요즘 동네를 걷다 보면 새삼 고마운 게 많다. 지자체별로 걷기 좋은 둘레길을 편리하게 조성해 놓았기 때문이다. 당최 방향감각이라곤 없는 나도 안내판을 따라가면 문제없다. 곳곳에 식물이나 나무들의 이름과 지역의 유래도 꼼꼼하게 설명해 놓아서 심심치가 않다. 걷는 일은 이렇게 잔재미가 수두룩하다.
평소엔 눈여겨보지 않던 동네의 표식이라든지 맨홀 뚜껑의 디자인까지도 눈에 들어온다. 길 언저리에 돋아난 봄나물을 보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특별히 시간을 내지 않아도, 특별한 준비물이 없어도, 선뜻 나설 수 있는 동네 걷기는 아무리 봐도 최고다.
봄볕이 제법 뜨거워진 4월이다. 피고 지는 꽃들과 함께 건강을 위해 일상의 꽃길을 걸어보는 건 어떨까!
스마트폰 그림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